영원한 가치를 얻는 자가 됩시다 /눅 23:44-56
- Hoon Park

- 2025년 4월 19일
- 5분 분량
2025년 4월 19일(토)
1.
고난주간 토요일 새벽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통상 십자가에 달린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그 뜨거운 햇볕 아래서 서서히 탈수 증세를 보이다가 결국 숨을 거둡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채찍질로 인해 살점이 뜯겨진 곳과 대못이 박힌 손과 발에 피가 흘러 내려서 더욱 극심한 탈수 증세가 나타났을 겁니다.
깊은 상처와 극심한 탈수 증세로 인해서 1분 1초가 너무나 힘들게 고통을 겪고 계신 예수님,
그 아들 예수님을 바라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44절을 보면, 세 시간이 지난 제 육시(12시)쯤 부터 제 구시(오후 3시)까지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계속 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계속 임하였다’는 것은,
더 이상 아들의 고통을 바라보실 수 없는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죄 없으신 아들 예수님이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것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도 고통스러우셨을 겁니다.
그 하나님의 마음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계속 임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오후 3시가 되었습니다.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가운데가 찢어집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기도하십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46절)
이 말씀을 하신 후, 예수님은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때 마태복음 27장 51절을 보면,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숨을 거두실 때 성소의 휘장은 위로부터 아래까지 가운데로 찢어졌고,
땅은 진동하고 바위가 터진 겁니다.
이런 현상들에 대한 신학적 의미가 무엇인가를 논하는 것은 차치하고,
여기에서도 우리가 깊게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아들 예수님이 고통 속에서 숨을 거두시는 것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성소 휘장이 찢어진 것처럼 찢어지는 마음이셨고,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지는 것처럼 하나님의 마음도 그러하셨던 겁니다.
‘어둠, (휘장이) 찢어짐, (바위가) 터짐’...
십자가에서 죽으신 아들 예수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단어들입니다.
2.
그 모든 일을 사람들이 보았습니다.
한 백부장은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47절)라는 고백을 합니다.
그러나 구경하러 모인 무리들은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치며 돌아” 갔습니다(48절).
십자가 앞에서는 이렇게 둘로 나뉘게 됩니다.
십자가에서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다만 가슴을 치며 돌아가는 자들은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명확하게 둘로 구분하는 기준이 됩니다.
구원 받는 자와 구원 받지 못하는 자입니다.
우리 모두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이루신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구원자로 고백하는 자들이 됩시다.
오후 6시가 되면, 안식일이 시작됩니다.
그 전에 예수님의 장례식을 치러야 했습니다.
통상 가난한 자들과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 처형을 당한 자나 저주받은 자들의 시신은,
기드론 골짜기에 있는 공동묘지 속에 내던져졌습니다.
말이 공동묘지지 골짜기에 시신을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신도 그렇게 될 판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숨겨진 제자가 나타납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입니다.
그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요구해서는,
자신이 준비한 세마포로 싸서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장사를 지냈습니다.
50절과 51절에서 이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산헤드린 공회 의원이었습니다.
그는 선하고 의로운 자요,
예수님을 사형키로 결정한 산헤드린 공회에서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였습니다.
그가 죽으신 예수님을 위해서 ‘세마포와 장사한 적 없는 바위 무덤’을 예수님께 드린 겁니다.
이탈리아 토리노 대성당에는 ‘예수님의 세마포’가 보관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감싼 이 세마포에는 예수님의 형상과 핏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서, 한때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보물 1호로 평가되기도 했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장사 지낸 바위 무덤에는 오늘날 ‘예루살렘 성묘 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예수님을 싼 ‘세마포’와 예수님의 시신을 누인 ‘바위 무덤’은,
오늘날 수많은 성도들이 찾아와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기억하는 성물과 성소가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한 가지를 생각해 봅시다.
만일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그 세마포와 바위 무덤을 예수님을 위해 드리지 않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용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세마포와 바위 무덤은 세상 어느 누구도 관심 갖지 않고 역사 속에서 의미 없이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 세마포와 바위 무덤을 죽으신 예수님을 위해서 내어드렸습니다.
그 세마포와 바위 무덤은 더 이상 의미 없이 역사 속에서 사라지는 허무한 것들이 아니라,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억하는 영원한 가치를 얻는 성물이요, 성소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수많은 세마포가 사용되었고, 수많은 돌무덤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예수님과 함께 기억되는 것은, 그리고 앞으로도 기억될 것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님을 위해 드린 그 세마포와 그 바위 무덤뿐입니다.
이처럼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주를 위해서 드려지고 사용될 때,
그것은 예수님 안에서 영원한 가치를 갖게 됩니다.
내가 지금 아무리 값진 것을 소유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들이 나 자신만을 위한 것들이라면,
그것은 언젠가는 허무하게 사라질 내일의 쓰레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값진 것이라 할지라도,
영원한 가치를 얻지 못하는 것들은 결국 미래의 언젠가 버려지는 쓰레기가 될 뿐입니다.
반면, 아무리 평범하고 별 값어치가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주님께 드려질 때 그것은 주님 때문에 영원한 가치를 얻게 됩니다.
내가 주께 드리는 내 소유, 내 재능, 내 시간, 내 열심만큼 주님 안에서 영원한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자신의 ‘세마포와 바위 무덤’을 예수님께 드렸을 때 이런 가치를 얻었다면,
예수님께 드려진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본문 49절과 55절을 보면,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라는 표현이 언급됩니다.
24장 10절을 보면,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와 또 다른 여자들”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도망을 쳤습니다.
그러나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라온 이 여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숨지실 때까지 그 곁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지켰습니다.
그 여인들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세마포에 싸서 장사 지낸 바위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고 돌아갔습니다.
이 여인들이 아니었다면 예수님의 무덤은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무덤을 알 수 없었다면, 예수님의 부활하심의 이야기는 증거 없는 거짓 이야기처럼 되었을 겁 니다.
그 여인들은 안식일에는 율법대로 움직일 수 없어서,
안식일 다음 날 이른 새벽이 되자마자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과 향유를 바르기 위해 무덤을 찾아 갑니다.
그곳에서 그 여인들은 최초의 부활의 증인이 되는 영광을 얻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귀신들린 창녀였습니다.
‘요안나’는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였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의 좌편과 우편에 자기 아들들을 앉게 해달라고 청탁했었습니다.
그 외에 이름없는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여인들이 최초의 부활의 증인이 되는 영광을 얻은 것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께 그들의 마음을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여인들의 이름은 부활의 증인으로 성경에 기록되어 영원토록 기억되는 이름이 된 것입니다.
4.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첫 번째,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우리 때문에 채찍을 맞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너무나 끔찍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우리를 위해서 참아 내셨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둠이요, 찢겨짐이요, 터짐이었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도 무능해서 참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살리시려고,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 끔찍한 고통의 시간들을 참아내신 겁니다.
주님이 지신 그 고통의 무게는 곧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보면, 우리는 감사할 것 밖에 없습니다.
누가 나 같은 자를 위해서 그런 고통을 대신 질 수 있겠습니까?
누가 나 같은 자를 위해서 그런 사랑을 줄 수 있겠습니까?
감사합시다.
그 감사의 마음으로 내일 부활 주일 예배를 준비합시다.
두 번째, 예수님께 드려지는 자가 됩시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자신의 세마포와 바위 무덤을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여인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그 때문에 요셉과 여인들의 이름은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기억될 이름이요,
요셉이 드린 세마포와 바위 무덤은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가치를 얻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위해서,
우리 자신을 드리는 자가 됩시다.
내게 있는 것은 언젠가는 버려질 미래의 쓰레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주님께 드려진 것만이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가치를 얻게 됩니다.
우리 모두 미래의 쓰레기를 안고 살아가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가치를 얻는 자로 살아갑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