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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날에 숨김 받는 자가 됩시다 /습 1:14-2:3

2025년 9월 11일(목)

1.

스바냐 1장 7절부터 2장 3절까지는 ‘여호와의 날’에 대한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날’은 선지서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입니다.


스바냐서에서 ‘여호와의 날’은 이중적인 의미입니다.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날이요, 또한 심판이 끝난 후 회복이 주어지는 날입니다.

스바냐서 전반부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후반부는 하나님의 회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전반부에서는 ‘여호와의 날’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날이라면,

후반부에서는 ‘여호와의 날’이 하나님의 회복이 주어지는 날로 묘사가 됩니다.


1장 7절에서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다”고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날’을 8절에서는 ‘여호와의 희생의 날’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희생 제물을 잡는 날’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희생제물’이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모세오경에서 말씀하는 ‘헤렘’입니다.

‘헤렘’은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다, 진멸하다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서 처음 여리고성을 공격할 때,

하나님께서 내리신 명령은 여리고 성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라는 것이었습니다.

수 6:17, “이 성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되...

18,너희는 온전히 바치고 ...


‘온전히 바치라’는 것은 ‘진멸하라’는 뜻이요, 이 때 쓰여진 단어가 ‘헤렘’입니다.

여호수아와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여리고성에 있는 것 중에 하나도 남기지 않고, 온전히 진멸했습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는 ‘헤렘’을 한 것입니다.


스바냐 1장 8절에서 여호와의 날을 ‘희생의 날’이라고 하시는 것은,

그날에 이 땅에 모든 것들을 진멸하여 하나님께 바치는 ‘헤렘’을 의미합니다.


15-16절에서는 ‘여호와의 날’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폐와 패망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나팔을 불어 경고하며 견 고한 성읍들을 치며 높은 망대를 치는 날이로다


한 마디로 여호와의 날은 심판과 멸망의 날입니다.

심판과 멸망을 의미하는 여호와의 날에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역사적인 의미와 종말론적 의미입니다.

역사적으로는 바벨론에 의해 유다와 예루살렘이 멸망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고,

종말론적으로는 악의 세력이 완전히 멸망하는 날을 의미합니다.


역사적으로는 여호와의 날이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BC 587년에 남유다와 예루살렘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 종말론적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미완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여호와의 날’은 다가오고 있는 날입니다.


2.

17절은 여호와의 날이 임하는 이유를 이같이 말씀합니다.

... 이는 그들이 나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하나님은 처음과 마지막이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처음이시다’는 것은 창조주라는 의미요,

‘하나님이 마지막이시다’는 것은 심판주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처음에 창조하신 분이요, 마지막에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날에 심판하시는 분이시지만,

이때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자들이 있고, 그 심판 날에 하나님이 숨기시는 자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자들은 ‘여호와께 범죄한 자들’입니다.

이들 중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 중에서도 여호와께 범죄한 자들이 있습니다.

어제 살펴본 것처럼, 혼합주의 신앙인들입니다.

이들을 일컬어 2장 1절에서는 “수치를 모르는 백성”이라고 말씀합니다.


‘수치’로 번역한 히브리어 단어는 ‘카사프’인데, 본 뜻은 ‘갈망하다, 사모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수치를 모르는 백성들’이란,

원문대로 직역하면 ‘하나님(말씀, 계명)을 갈망하지 않는 자들이요, 사모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하나님(말씀, 계명)을 갈망하고 사모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범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갈망하지 않고, 사모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말씀, 계명)을 갈망하고 사모하는 자들은 무엇이 수치인 지를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말씀, 계명)을 갈망하지 않고 사모하지 않는 자들은 무엇이 수치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에서 이런 자들을 일컬어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마 7:22-23).

이들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역할을 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도 행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일은 열심히 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사모하지도 갈망하지도 않은 것입니다.


‘수치를 모르는 백성’, 곧 예수님이 말씀하신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여호와께 범죄한 자들입니다.

마지막 여호와의 날에 심판을 받게 될 자들입니다.


사람은 교만합니다.

이 교만은 하나님에 대해서는 말씀에 불순종하게 만들고,

사람에 대해서는 정죄와 판단, 분노와 비난을 쏟아 붓게 만듭니다.

사람이 죄를 짓는 것, 사람이 불법을 행하는 것, 사람이 수치를 모르는 것, 이는 모두 마음의 교만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17장 9절에서 우리 마음에 대해 이같이 말씀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자신이 얼마나 교만한 지,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거짓되고 부패되어 있는지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잠언 4장 23절에서 말씀합니다.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그러므로 자기 마음을 살피고, 자기 마음을 지키는 자가 되십시오.

내 마음의 교만을 꺾고, 겸손하게 자기 자신을 살피는 자가 되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불법을 행하지 않는 자요, 수치를 아는 자가 됩시다.

이를 위해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갈망하는 자가 됩시다.


3.

여호와의 날에 여호와께 범죄한 자들은 모두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은 여호와의 날에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시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택한 백성들이 여호와의 날에 아무도 심판 받지 않는 데 있습니다.


2장 3절입니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 을 얻으리라


신앙의 핵심은 ‘관계성’에 있습니다.

교만은 관계성을 깨뜨립니다.

그러나 겸손은 관계성을 유지합니다. 교만은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합니다. 그러나 겸손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래서 교만한 자는 불법을 행하는 자요, 수치를 모르는 자입니다.

반면, 겸손한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자요, 수치를 아는 자입니다.

겸손한 자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자입니다.


여호와의 날에 있을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하나님께서 겸손한 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1장 6절에서 혼합주의 신앙의 특징 중의 하나가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고 구하지도 아니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반대로 겸손한 자들에게, ‘너희는 여호와를 찾고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여호와의 날에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가 임할 때, 모두가 심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교만한 자는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겸손한 자, 늘 하나님을 찾으며 구하는 자는 여호와의 분노가 내리는 그 날에 숨김을 얻습니다.


스바냐의 이름은 ‘여호와께서 숨기신다’는 의미입니다.

스바냐를 통해서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은,

하나님은 이 말씀을 듣는 자들이 악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자가 되고,

겸손하게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자가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악인이라 할지라도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자가 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겔 33:11).


4.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첫 번째, 수치를 아는 자들이 됩시다.

여호와의 날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사람들을 일컬어 ‘수치를 모르는 백성’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원적인 뜻은 ‘하나님을 갈망하지 않는 자, 사모하지 않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수치(부끄러움)’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갈망하지 않고 사모하지 않는 것, 하나님을 찾지도 구하지도 않는 것이 ‘수치(부끄러움)’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일컬어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들은 마음에 교만한 자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자요,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수치를 아는 자’란, 하나님을 갈망하고 사모하는 자입니다.

말씀 위에 집을 짓는 자요, 마음이 겸손한 자입니다.

이들은 ‘스바냐’ 곧 여호와께서 심판의 날에 숨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수치를 모르는 백성이 아니라, 수치를 아는 자가 됩시다.


두 번째, 믿음의 형제들을 위해 더욱 중보를 합시다.

주님의 마음은 여호와의 날에 모두가 심판을 받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악인이라 할지라도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자가 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심판 받는 것을 조금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하나님은 택하신 자녀들이 여호와의 날에 심판을 받지 않고 숨김을 받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위해서 더욱 중보를 합시다.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는 자가 되기를 중보합시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받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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