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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아야 합니다. /삿 11장 1-11절

9월 27일
9분 분량

2026년 9월 24일(목)

 

1.

열두 사사 중에서 도덕적, 신앙적, 인격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드러난 세 사람이 있습니다.

‘기드온, 입다, 삼손’입니다.

11장과 12장은 사사 ‘입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입다는 길르앗 사람의 아들이었는데, 그의 모친은 기생(창기)이었습니다(1절).

그는 기생의 소생이라는 이유 때문에 배다른 형제들로부터 집에서 쫓겨났습니다(2절).

이때 길르앗 성읍의 장로들도 입다를 쫓아내는 일에 동참을 했습니다(7절).

 

이처럼 입다는 창기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배다른 형제들과 길르앗 성읍의 장로들(어른들)에게서 사랑받지 못하고 미움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뿐만 아니라, 성읍에서도 쫓겨난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장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기골이 장대하고 아주 힘이 센 자였다는 것입니다.

1절에 “길르앗 사람 입다는 큰 용사였으니”라고 기록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입다는 길르앗의 성읍에서 쫓겨나서 돕 땅에 정착했습니다.

그곳에서 그가 어울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3절입니다. “…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 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

‘잡류’란 불량배들과 건달배들을 의미합니다.

 

기생의 소생이라는 이유로 배다른 형제들과 성읍 장로들에게까지 미움을 받아 쫓겨난 입다는,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세서 불량배들의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입다는 그 불량배들과 함께 길르앗 주변의 성과 마을들을 약탈하며 지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18년 동안 괴롭히던 암몬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다급한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러자 길르앗의 장로들이 입다를 찾아갑니다.

자신들이 쫓아낸 입다를 찾아가서 도움을 구한 것입니다.

입다가 힘이 센 용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입다는 불량배들의 우두머리입니다. 늘 약탈을 일삼고 살아가는 자였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에 위기가 닥치자, 길르앗 장로들이 내놓은 해법은 불량배들의 우두머리라 할지라도 힘 센 입다를 찾아가 도움을 구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길르앗 장로들이 ‘하나님’께 먼저 기도하였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이는 첫 단추를 잘못 꿴 것입니다.

결국 이 때문에 당장 눈앞에 보이는 문제는 해결됩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 큰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위기나 어려움에 처했을 때 신앙의 첫 단추를 바르게 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첫 단추는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결정하고 행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부르짖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먼저 의지하는 것은 첫 단추를 잘못 꿰는 것과 같습니다.

 

2.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찾아가서 제안을 합니다.

6절입니다.

“입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암몬 자손과 싸우려 하니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제안한 것은 ‘우리의 장관이 되어달라’는 것입니다.

암몬과의 전쟁을 이끄는 군대의 총 지휘관의 자리를 제안한 것입니다.

 

앞서 사사기 10장 18절을 보면,

암몬과 맞서 싸우려는 자는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입다에게 제안한 것은 길르앗을 다스리는 ‘머리 곧 통치자’가 아니라, 임시로 군대 총 지휘관이 되어 달라고 한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도움을 청하러 입다를 찾아가기는 했지만,

길르앗 장로들의 마음에는 입다를 그들의 머리(통치자)로는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던 겁니다.

우선 급한 불이라도 끄자는 심정으로,

암몬과의 전쟁에서 입다에게 임시로 군 지휘관의 지위만 주려고 했던 겁니다.

 

입다는 그 제안을 거절합니다.

7절입니다.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하니라”

 

그러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두 번째 제안을 합니다.

8절입니다.

“그러므로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이제 우리가 당신을 찾아온 것은 우리와 함께 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하려 함이니 그리하면 당신이 우리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매”

처음에는 군대 총 지휘관의 자리를 제안했다가 거절당하자, 이번에는 길르앗의 통치자의 자리를 제안한 것입니다.

 

길르앗 장로들이 지금 얼마나 인간적인 결정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이들은 백성의 어른이요, 지도자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위기를 모면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자신들의 생각만을 앞세웠습니다.

 

입다는 길르앗 장로들의 두 번째 제안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 더 그 사실을 확인합니다.

9절입니다.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할 때에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넘겨주시면 내가 과연 너희의 머리가 되겠느냐 하니”

 

여호와라는 이름을 걸고 과연 길르앗의 머리가 되는 것인지를 확인한 것입니다.

그러자 길르앗 장로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합니다.

10절입니다.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여호와는 우리 사이의 증인이시니 당신의 말대로 우리가 그렇게 행하리이다 하니라”

 

그런데 이번에도 길르앗 장로들은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생각에 옳은 대로 이런 맹세까지 한 것입니다.

이것이 훗날 자신들에게 커다란 올무가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겁니다.

 

결국 입다는 그들의 제안을 수용합니다.

11절입니다.

“이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를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아뢰니라”

 

미스바에서 입다는 길르앗의 ‘머리와 장관’이 됩니다.

통치자와 군 지휘관의 자리를 둘 다 갖게 된 것입니다.

 

3.

사람들에게 반복되는 두 가지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첫째는, 동일한 죄를 반복한다는 데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주신 평안과 풍요로움 속에서,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이방 민족의 우상을 숭배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이방민족을 채찍으로 삼아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면,

이스라엘은 그때서야 돌이켜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사를 보내셔서 구원해주시고, 다시 평안과 풍요로움의 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다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그것도 이전보다 더 크게 타락을 합니다.

 

이렇게 동일한 죄를 반복하는 이스라엘에 대해서,

오죽하면 하나님께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리라”(10:13)고 하셨겠습니까.

 

이처럼, 사람은 동일한 죄를 반복합니다.

회개하고 뉘우친 죄를 또 다시 반복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삶의 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시 이전의 죄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입니다.

 

내 삶에 반복되는 죄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끊어내야 합니다.

그런데 내 힘으로는 끊어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의 능력과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죄는 내 힘으로 정복되는 것이 아니라, 죄는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반복되는 두 번째 어리석음의 모습은,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암몬이 길르앗에 진을 치고 공격하려고 할 때,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입다를 통치자와 군 지휘관으로 세울 때,

길르앗의 장로들은 단 한 번도 하나님께 구하지도, 묻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자신들의 소견에 옳은 대로 결정하고, 행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당장 눈앞의 불은 끌 수 있었지만, 이는 훗날 돌이킬 수 없는 큰 비극의 요인이 됩니다.

 

첫 단추를 바르게 꿰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내 생각에는 좋아 보이고, 내 소견에는 옳아 보이는 것도,

내 생각과 내 소견에 옳은 대로 결정하고 행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첫 단추를 잘못 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어리석어서 늘 첫 단추를 잘못 뀁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생각에 옳은 대로 결정하고, 행한 뒤에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순서가 잘못된 것입니다. 첫 단추를 잘못 꿴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루를 예배와 기도로 시작하는 것은,

하루의 첫 단추를 바르게 꿰는 일입니다.

 

오늘 하루가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 지기를 기도합시다.

오늘 우리가 결정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다면, 먼저 겸손히 하나님께 기도의 무릎을 꿇읍시다.

첫 단추를 바르게 꿰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4.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첫째, 내 삶에 반복되는 죄를 끊어내어야 합니다.

내 힘과 능력만으로는 끊어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과 말씀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성령과 말씀의 능력으로 내 삶에 반복되는 죄를 끊어낼 수 있게 해달라고 간구합시다.

 

둘째,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할 때 언제나 기도와 말씀보다 앞서지 마십시오.

내 삶의 주인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먼저 내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그 다음, 결정하고 행하십시오.

이것이 첫 단추를 바르게 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이렇게 기도합시다.

‘주님, 내 삶에 반복되는 죄를 끊게 하소서.’

‘주님, 기도와 말씀보다 앞서지 않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오늘 내 삶의 첫 단추를 바르게 꿰고 살아가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이 방식도 잘 적어 두었으니, 다음에는 PDF만 올려주시면 같은 형식으로 바로 만들어 드릴게요.

  잘못 된 부분이 있다

깨진 표시 문제 분석 중.

죄송합니다. 빈 줄 자리에 " "라는 글자가 그대로 보인 거죠? 그 표시가 이 화면에서는 빈 줄로 바뀌지 않고 글자로 남았어요. 이번에는 그 자리를 보이지 않는 공백 한 칸으로 바꿔서, 붙여넣으면 깨끗한 빈 줄만 생기도록 다시 만들었습니다.

제목 칸: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아야 합니다.

삿 11:1-11

2026년 9월 24일(목)

 

1.

열두 사사 중에서 도덕적, 신앙적, 인격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드러난 세 사람이 있습니다.

‘기드온, 입다, 삼손’입니다.

11장과 12장은 사사 ‘입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입다는 길르앗 사람의 아들이었는데, 그의 모친은 기생(창기)이었습니다(1절).

그는 기생의 소생이라는 이유 때문에 배다른 형제들로부터 집에서 쫓겨났습니다(2절).

이때 길르앗 성읍의 장로들도 입다를 쫓아내는 일에 동참을 했습니다(7절).

 

이처럼 입다는 창기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배다른 형제들과 길르앗 성읍의 장로들(어른들)에게서 사랑받지 못하고 미움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뿐만 아니라, 성읍에서도 쫓겨난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장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기골이 장대하고 아주 힘이 센 자였다는 것입니다.

1절에 “길르앗 사람 입다는 큰 용사였으니”라고 기록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입다는 길르앗의 성읍에서 쫓겨나서 돕 땅에 정착했습니다.

그곳에서 그가 어울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3절입니다. “…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 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

‘잡류’란 불량배들과 건달배들을 의미합니다.

 

기생의 소생이라는 이유로 배다른 형제들과 성읍 장로들에게까지 미움을 받아 쫓겨난 입다는,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세서 불량배들의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입다는 그 불량배들과 함께 길르앗 주변의 성과 마을들을 약탈하며 지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18년 동안 괴롭히던 암몬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다급한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러자 길르앗의 장로들이 입다를 찾아갑니다.

자신들이 쫓아낸 입다를 찾아가서 도움을 구한 것입니다.

입다가 힘이 센 용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입다는 불량배들의 우두머리입니다. 늘 약탈을 일삼고 살아가는 자였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에 위기가 닥치자, 길르앗 장로들이 내놓은 해법은 불량배들의 우두머리라 할지라도 힘 센 입다를 찾아가 도움을 구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길르앗 장로들이 ‘하나님’께 먼저 기도하였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이는 첫 단추를 잘못 꿴 것입니다.

결국 이 때문에 당장 눈앞에 보이는 문제는 해결됩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 큰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위기나 어려움에 처했을 때 신앙의 첫 단추를 바르게 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첫 단추는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결정하고 행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부르짖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먼저 의지하는 것은 첫 단추를 잘못 꿰는 것과 같습니다.

 

2.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찾아가서 제안을 합니다.

6절입니다.

“입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암몬 자손과 싸우려 하니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제안한 것은 ‘우리의 장관이 되어달라’는 것입니다.

암몬과의 전쟁을 이끄는 군대의 총 지휘관의 자리를 제안한 것입니다.

 

앞서 사사기 10장 18절을 보면,

암몬과 맞서 싸우려는 자는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입다에게 제안한 것은 길르앗을 다스리는 ‘머리 곧 통치자’가 아니라, 임시로 군대 총 지휘관이 되어 달라고 한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도움을 청하러 입다를 찾아가기는 했지만,

길르앗 장로들의 마음에는 입다를 그들의 머리(통치자)로는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던 겁니다.

우선 급한 불이라도 끄자는 심정으로,

암몬과의 전쟁에서 입다에게 임시로 군 지휘관의 지위만 주려고 했던 겁니다.

 

입다는 그 제안을 거절합니다.

7절입니다.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하니라”

 

그러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두 번째 제안을 합니다.

8절입니다.

“그러므로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이제 우리가 당신을 찾아온 것은 우리와 함께 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하려 함이니 그리하면 당신이 우리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매”

처음에는 군대 총 지휘관의 자리를 제안했다가 거절당하자, 이번에는 길르앗의 통치자의 자리를 제안한 것입니다.

 

길르앗 장로들이 지금 얼마나 인간적인 결정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이들은 백성의 어른이요, 지도자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위기를 모면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자신들의 생각만을 앞세웠습니다.

 

입다는 길르앗 장로들의 두 번째 제안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 더 그 사실을 확인합니다.

9절입니다.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할 때에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넘겨주시면 내가 과연 너희의 머리가 되겠느냐 하니”

 

여호와라는 이름을 걸고 과연 길르앗의 머리가 되는 것인지를 확인한 것입니다.

그러자 길르앗 장로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합니다.

10절입니다.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여호와는 우리 사이의 증인이시니 당신의 말대로 우리가 그렇게 행하리이다 하니라”

 

그런데 이번에도 길르앗 장로들은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생각에 옳은 대로 이런 맹세까지 한 것입니다.

이것이 훗날 자신들에게 커다란 올무가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겁니다.

 

결국 입다는 그들의 제안을 수용합니다.

11절입니다.

“이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를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아뢰니라”

 

미스바에서 입다는 길르앗의 ‘머리와 장관’이 됩니다.

통치자와 군 지휘관의 자리를 둘 다 갖게 된 것입니다.

 

3.

사람들에게 반복되는 두 가지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첫째는, 동일한 죄를 반복한다는 데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주신 평안과 풍요로움 속에서,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이방 민족의 우상을 숭배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이방민족을 채찍으로 삼아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면,

이스라엘은 그때서야 돌이켜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사를 보내셔서 구원해주시고, 다시 평안과 풍요로움의 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다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그것도 이전보다 더 크게 타락을 합니다.

 

이렇게 동일한 죄를 반복하는 이스라엘에 대해서,

오죽하면 하나님께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리라”(10:13)고 하셨겠습니까.

 

이처럼, 사람은 동일한 죄를 반복합니다.

회개하고 뉘우친 죄를 또 다시 반복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삶의 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시 이전의 죄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입니다.

 

내 삶에 반복되는 죄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끊어내야 합니다.

그런데 내 힘으로는 끊어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의 능력과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죄는 내 힘으로 정복되는 것이 아니라, 죄는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반복되는 두 번째 어리석음의 모습은,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암몬이 길르앗에 진을 치고 공격하려고 할 때,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입다를 통치자와 군 지휘관으로 세울 때,

길르앗의 장로들은 단 한 번도 하나님께 구하지도, 묻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자신들의 소견에 옳은 대로 결정하고, 행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당장 눈앞의 불은 끌 수 있었지만, 이는 훗날 돌이킬 수 없는 큰 비극의 요인이 됩니다.

 

첫 단추를 바르게 꿰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내 생각에는 좋아 보이고, 내 소견에는 옳아 보이는 것도,

내 생각과 내 소견에 옳은 대로 결정하고 행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첫 단추를 잘못 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어리석어서 늘 첫 단추를 잘못 뀁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생각에 옳은 대로 결정하고, 행한 뒤에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순서가 잘못된 것입니다. 첫 단추를 잘못 꿴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루를 예배와 기도로 시작하는 것은,

하루의 첫 단추를 바르게 꿰는 일입니다.

 

오늘 하루가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 지기를 기도합시다.

오늘 우리가 결정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다면, 먼저 겸손히 하나님께 기도의 무릎을 꿇읍시다.

첫 단추를 바르게 꿰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4.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첫째, 내 삶에 반복되는 죄를 끊어내어야 합니다.

내 힘과 능력만으로는 끊어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과 말씀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성령과 말씀의 능력으로 내 삶에 반복되는 죄를 끊어낼 수 있게 해달라고 간구합시다.

 

둘째,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할 때 언제나 기도와 말씀보다 앞서지 마십시오.

내 삶의 주인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먼저 내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그 다음, 결정하고 행하십시오.

이것이 첫 단추를 바르게 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이렇게 기도합시다.

‘주님, 내 삶에 반복되는 죄를 끊게 하소서.’

‘주님, 기도와 말씀보다 앞서지 않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오늘 내 삶의 첫 단추를 바르게 꿰고 살아가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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