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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예언 2 / 창 49:16-28

6월 2일
4분 분량

2026년 5월 29일(금)


1.

어제는 레아의 소생인 <르우벤-시므온-레위-유다-스불론-잇사갈>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나머지 여섯 아들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어제 본문은 태어난 순서대로 기록된 내용이었지만, 오늘 본문은 그렇지 않습니다.

참고로, 출생 순서대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르우벤-시므온-레위-유다-단-납달리-갓-아셀-잇사갈-스불론-요셉-베냐민’ 순입니다.


먼저 ‘단’에 대한 예언입니다(16-18절)

단이라는 이름은 ‘심판자’라는 뜻입니다.

그 이름처럼 단은 “자기 백성을 심판하는” 자가 됩니다(16절).


그런데 단은 동시에 “길섶의 뱀이요, 샛길의 독사”와 같습니다.

말굽을 물어 말에 탄자가 떨어뜨리게 하는 존재입니다(17절).

한 마디로, 단은 양날의 검과 같은 지파였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삼손입니다.

그는 단 지파 출신으로 사사가 되어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지켜냈지만,

드릴라에 대한 욕정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말았습니다.


또한 사사기 18장에 보면, 이스라엘 지파들 중에 가장 먼저 우상 숭배에 빠진 지파가 ‘단 지파’였습니다.

계시록 7장 5-8절에서는 인침 받은 지파들의 이름이 열거되는 데, 유일하게 ‘단 지파’만 그 명단에서 빠져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이레니우스, 암브로스, 어거스틴, 테오도르 등의 많은 초대 교부들은 단 지파에서 적그리스도가 나올 것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18절)라는 이 말씀은,

단 지파에게 정말 필요한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갓’에 대한 예언입니다(19절).

갓에 대한 예언은 전쟁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갓 지파는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르우벤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와 함께 가장 용맹하게 싸웠던 자들 입니다(대상 5:18).

또한 훗날에는 다윗을 돕는 강한 용사들이 되었습니다(대상 12:8).


역대상 12장 8절을 보면, 갓 사람들의 특징에 대해서 이같이 말씀합니다.

“갓 사람 중에 광야에 있는 요새에 이르러 다윗에게 돌아온 자가 있었으니 다 용사요 싸움에 익숙하여 방패와 창을 능히 쓰는 자라 ...”

갓 지파는 야곱의 예언대로 강한 용사들이 된 것입니다.


다음은 ‘아셀’에 대한 예언입니다(20절).

‘아셀’이라는 이름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아셀 지파가 정착한 곳은 지중해 연안을 끼고 있어서 해상 무역이 활발했고, 그로 인해 매우 풍요롭고 부유했습니다.

해산물과 온갖 수입물품이 넘쳐났습니다(신 33:24).

야곱의 예언대로 기름진 것이 풍성해서 왕의 식탁에 올릴 식재료를 공급하게 되었습니다.


다음은 ‘납달리’에 대한 예언입니다(21절).

‘납달리’는 민첩하고 자유로운 ‘암 사슴’이라고 비유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납달리 지파를 일컬어 “은혜가 풍성하고 여호와의 복이 가득한” 자들이라고 예언했습니다(신 33:23).

사사기 5장을 보면, 사사 드보라 때 납달리 지파는 죽음을 무릅쓰고 목숨을 아끼지 않고 여호와를 위해서 전쟁에 참 여했습니다(삿 5:18).

그들은 하나님께 은혜와 복을 받은 자들답게 하나님을 위해서 목숨을 아끼지 않는 지파가 된 것입니다.


2.

야곱이 마지막으로 예언한 대상은 ‘요셉과 베냐민’입니다.

이 둘은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아내 라헬의 소생이자, 야곱이 특별히 사랑했던 아들들이었습니다.


요셉이 애굽에서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야곱의 양자가 됩니다.

그래서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각각 하나의 지파를 이루게 됩니다.

구약에서는 간혹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를 통칭하여 요셉 지파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계시록 7장 8절에서는,

인침 받은 열두 지파를 언급하면서 ‘에브라임 지파’를 ‘요셉 지파’라고 표현합니다.

그 이유는 에브라임이 요셉의 장자권의 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25-26절에서 이같이 말씀합니다.

“...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이렇게 큰 복을 주신 것은, 단지 요셉 개인만을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과 열방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샘 곁의 무성한 가지가 되어 담을 넘어가는 자가 된 것입니다.

22절입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요셉이 자신의 힘으로 담을 넘어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샘 곁의 무성한 가지’가 되게 하셨고, 마침내 담을 넘어가게 하신 겁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요셉에게 꿈을 꾸게 하셨고,

형들의 미움과 시기를 받아 애굽의 노예로 팔려가게 하셨습니다.

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지하 감옥에 갇혀 지내는 시간도 허락하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연단과 다루심의 시간들을 통해서,

요셉은 마르지 않는 샘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공급을 받는 샘 곁에 심겨진 무성한 가지로 자라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담을 넘어가는 자가 된 것입니다.


이런 요셉은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예수님이야 말로 “샘 곁의 무성한 가지”가 되셔서 율법이라는 담과 이방인이라는 담을 넘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가지에 맺힌 열매가 바로 우리들입니다.


27절은 마지막으로 베냐민에 대한 예언입니다.

야곱은 베냐민을 “물어뜯는 이리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사납고 용맹한 기질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베냐민의 성향이 대적을 향할 때는 이스라엘을 구하는 강한 용사가 되었습니다.


예컨대, 사사 에훗과 초대 왕 사울이 베냐민 출신입니다.

또한 역대상 8장 12절을 보면, 베냐민 자손들을 가리켜 “다 용감한 장사요 활을 잘 쏘는 자”들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사납고 용맹한 성향이 내부를 향할 때는 큰 비극을 낳기도 했습니다.

사사기 19장을 보면, 베냐민 지파가 한 레위 사람의 첩을 집단으로 능욕하여 죽게 만든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베냐민 지파와 다른 열한 지파 간에 아주 비극적인 내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주신 은사와 능력을 누구를 위해 사용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집니다.

하나님과 주의 백성들을 위해서 사용할 때는 하나님 나라와 공동체를 살리는 도구가 됩니다.

그러나 자기 욕정과 욕심을 위해서 사용할 때는 하나님의 공동체와 사람들을 해롭게 만드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3.

28절은 창세기 49장의 결론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야곱의 이 모든 예언은 자녀들을 향한 아버지의 “축복”이었습니다.

물론 시므온과 레위, 잇사갈, 단, 베냐민에 대한 예언은 축복처럼 들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말은 단순한 인간의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것이기에 그 자체로 축복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하나님의 뜻과 의도 역시 선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모두 선합니다.

복에 대한 말씀만 선한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책망의 말씀도, 경고의 말씀도, 징계와 심판의 말씀도 결국은 선합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이 선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중요한 기준 하나를 보여줍니다.

바로 “각 사람의 분량대로” 입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믿음과 인격의 분량대로’ 말씀의 복을 주십니다.

믿음의 분량과 인격의 깊이에 따라 하나님께서 맡기시는 은혜와 사명, 그리고 축복의 내용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과 인격의 분량이 자라나고 커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과 인격’의 분량은 어떻게 자라갈 수 있을까요?

그 힌트가 바로 22절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요셉처럼 샘 곁의 무성한 가지가 되어 담을 넘어가는 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요셉이 그런 사람이 되기까지 걸었던 길은 결코 쉽고 평탄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 길은 철저하게 ‘나는 죽고 오직 주님만 의지하는’ 그런 좁은 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노예로, 억울한 누명을 쓴 죄인의 모습으로 지하감옥에 머물게 하셨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요셉의 자아는 깨어졌고, 그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사람으로 빚어졌습니다.

이처럼, ‘나는 죽고 오직 주님만 사시는’ 좁은 길을 걸어가는 삶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과 인격의 분량도 자라나게 됩 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의 믿음과 인격은 평탄하거나 넓고 쉬운 길에서는 쉽게 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좁고 힘든 길을 걸어갈 때, 때로는 주를 위한 고난과 주를 위한 희생을 감내할 때, 내 믿음의 분량과 인격의 분량이 어느 정도인지가 드러나고, 자라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좁은 길 걷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좁은 길 걷는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자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나는 죽고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시는 자가 되고,

우리 모두가 예수님이라는 샘 곁에 심겨진 무성한 가지가 되어서,

담을 넘어 예수님의 생명을 전하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4.

오늘은 우리가 이같이 기도합시다.

‘주님, 우리가 요셉처럼 예수님의 샘 곁에 심겨진 무성한 가지가 되어 담을 넘어가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우리가 요셉처럼 하나님께 큰 복을 받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우리가 믿음이 깊어지고 인격이 성숙한 자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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