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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예언 1 / 창 49:1-15

6월 1일
5분 분량

2026년 5월 28일(목)


1.

야곱은 열조들에게 돌아갈 때가 되자,

자신을 찾아온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자신의 양자로 삼아 축복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열두 아들들을 모두 불러 모읍니다.


그 자리에서 야곱은 마지막으로 아들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해줍니다.

1절, “...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성경에서 예언자는 단지 미래에 일어날 일을 말해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성경적인 의미에서 예언자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예언은 인간의 신비한 능력이나 통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 말씀하신 것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언자는 곧 대언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

열두 아들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 대언해주는 예언자의 역할을 감당한 것입니다.


따라서 창세기 49장은 단순히 야곱이 아들들에게 남긴 유언이나 축복과 저주 선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통해 열두 아들들과 그 후손들에게 장차 이루어질 일을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즉, 창세기 49장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선포되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2.

오늘 본문은 <르우벤-시므온-레위-유다-스불론-잇사갈>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들은 모두 레아를 통해서 얻은 아들들입니다.

각 사람에 대한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봅시다.


첫째, 르우벤에 대한 예언입니다(3-4절).

르우벤은 장자로서 위풍(위엄)이 월등하고 권능(힘,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물이 끓는 것처럼 욕정을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첩인 빌하와 동침하는 죄를 범했습니 다. 그 결과 르우벤은 장자권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야곱은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창세기 35장 22절에 보면, 르우벤이 빌하와 동침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빌하의 소생은 단과 납달리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어머니를 범한 르우벤을 더 이상 맏형으로 인정하지 않았을 겁니다.

비록 윤리 체계가 완전히 정립되지 않은 고대 사회라 할지라도,

아버지의 아내요, 자신들의 어머니를 범한 자를 결코 용납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 사건 이후, 르우벤은 형제들 안에서 실질적인 맏형으로서의 위치를 잃게 됩니다.

창세기 37장을 보면,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했을 때 르우벤은 그를 죽이지 말고 구덩이에 던져놓자고 제안합니다.

나중에 아버지 야곱에게 데려가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르우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형제들은 요셉을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아넘깁니다.


그 결정을 한 것은 유다의 제안 때문이었습니다.

창세기 37장 27절을 보면, “그의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형제들 사이에 실제적인 장남의 역할을 한 사람은 르우벤이 아니라 유다였음을 보여 줍니다.


야곱 역시 르우벤 보다는 유다를 더 신뢰했습니다.

애굽에 베냐민을 데려가야 했을 때,

르우벤은 자신의 두 아들의 생명을 담보로 베냐민을 데려가게 해달라고 말했습니다(42:37).

그러나 야곱은 르우벤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유다가 자신과 자신의 아들들의 생명을 담보로 베냐민을 책임지겠다고 했을 때는(43:9),

야곱이 유다의 말을 듣고 베냐민을 보내줍니다.


이처럼 르우벤은 육체적인 힘과 능력은 탁월했지만, 삶 자체는 탁월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끓어오르는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범한 죄 때문에 장자권을 박탈당하게 된 겁니다.

훗날 가나안에 정착했을 때,

르우벤 지파는 요단강 서편 가나안 땅에 정착하지 않고 요단강 동편에 정착하게 됩니다.

장자권을 박탈당한 르우벤은 중심에서 멀어지게 된 겁니다.


둘째, 시므온과 레위에 대한 예언입니다(5-7절).

여동생 디나가 세겜 사람에게 겁탈 당한 사건으로 인해,

시므온과 레위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세겜 사람들을 학살하는 사건을 일으킵니다.

이 일은 아버지 야곱과는 무관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6절)라고 말합니다.


결국 이 일로 인해 시므온과 레위에게는 다음과 같은 예언이 선포됩니다.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 다”(7절)


르우벤은 끓어오르는 욕정을 절제하지 못한 것 때문에 장자권을 박탈당했다면,

시므온과 레위는 분노를 다스리지 못한 것 때문에 장자의 자리를 이어받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저주 받을 것이요... 저주 받을 것이라”는 말씀은,

시므온과 레위가 이제 저주 받은 인생이 될 것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지금처럼 살아간다면 저주를 받게 될 것이니,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서 돌이키고 하나님을 잘 믿고 살라는 경고의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과 고라신, 그리고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을 향해서 “화(저주, 재앙) 있을 진저”라고 말씀하신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단순한 저주의 선언이 아니라, 회개를 촉구하는 경고였습니다.


훗날 출애굽 이후,

레위지파는 시내산 앞에서 일어난 금송아지 사건 때, 여호와의 편에 서서 우상숭배한 백성들을 처단했습니다(출 32:26-29).

그 결과 레위 지파는 하나님께 속한 지파로 구별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반면, 시므온 지파는 바알브올 사건에서 모압 여인들과 음행하고 우상을 섬기다가 몰살을 당합니다(민 25장). 이후 실시된 2차 인구조사에서 시므온 지파는 1차 인구 조사 때보다 무려 37,100명이 감소합니다(민 26장).

또한 모세는 이 사건이 얼마나 화가 났던지 각 지파들에 대해서 축복할 때, 시므온 지파만 제외시켰습니다(신 33장).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

레위 지파는 하나님께 속한 지파로서 이스라엘 전역에 구별된 48개 성읍에 흩어져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합니다.

반면, 시므온 지파는 유다 지파 안에 종속된 형태로 머물다가,

남북이 나뉠 때 북쪽으로 흡수되어 흩어지게 됩니다.


같은 ‘흩어짐’의 예언이었지만,

시므온은 저주로 나타났고 레위는 축복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 차이를 만들어낸 중심에는 오직 ‘여호와 신앙’이 있었습니다.


셋째, 유다에 대한 예언입니다(8-12절).

유다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실제적인 장남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그래서 유다에게는 수사자와 암사자 같이 어느 누구도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주어집니다.

또한 ‘규’와 ‘통치자의 지팡이’로 상징되는 왕권의 약속도 주어집니다.


그러나 그 통치는 “실로가 오시기까지”라는 제한을 가집니다.

유다의 역할은 궁극적으로 ‘실로’ 곧 그리스도가 오시는 길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훗날 유다 지파는 예루살렘(기브온)을 중심으로 한 남유다 왕국의 중심이 됩니다.

북이스라엘은 끊임없는 반역과 쿠데타로 왕조가 반뀌었지만, 남유다는 오직 다윗의 자손들에 의해서만 왕권이 계승 됩니다.

그리고 그 계보를 따라서 마침내 “실로”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십니다.

그래서 유다는 “형제의 찬송”이 되었지만, 그리스도는 “온 열방의 찬송”이 되십니다.


넷째, 스불론과 잇사갈에 대한 예언입니다(13-15절).

스불론에 대해서는 해변에 거주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모세역시 신명기 33장 19절에서 스불론이 바다의 풍부한 것을 향유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훗날 스불론은 바다와는 상관없는 육지와 육지 사이에 정착합니다(수 19:10-16).

그러나 그들은 “밖으로 나감을 기뻐”(신 33:18)하는 기질 때문에, 두로와 시돈과 활발한 해상 무역을 하게 됩니다.


반면, 잇사갈은 스불론의 형입니다.

잇사갈은 “장막에 머무는 것을 좋아”(신 33:19)하는 기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잇사갈을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 비유합니다.

이는 ‘게으름 때문에 일하기 싫어서 앉아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결국 잇사갈은 “압제 아래에서 짐을 메고 섬기는 자”가 된다고 말씀합니다(15절).


3.

아버지 야곱의 장자권을 물려받을 가능성이 가장 컸던 장자 르우벤은,

끓어오르는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아버지 첩 빌하를 범한 죄로 인해 탈락하게 됩니다.

그 다음 순서였던 시므온과 레위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살인을 범한 죄 때문에 장자의 자리를 이어받지 못하게 됩 니다.


이처럼 ‘음욕’과 ‘분노’는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는 사탄의 강력한 무기입니다.

노아 시대에 물의 심판이 임한 것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땅의 여인들을 향한 음욕에 사로잡혔기 때문이요,

소돔과 고모라 성이 불의 심판을 받은 것도 동성애라는 음욕 때문입니다.


또한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분노를 이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약 1:20)고 말씀했습니다.

사탄은 우리 안에 ‘음욕’과 ‘분노’를 불러 일으켜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게 만듭니다.


오늘 본문은,

‘음욕’을 이기지 못한 르우벤과, ‘분노’를 다스리지 못한 시므온과 레위가,

결국 하나님의 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길이 되지 못했음을 보여 줍니다.


오직 자기 자신이 죽어야만 예수님이라는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내 자아가 죽어야만 비로소 예수님이 드러나실 수 있습니다.

음욕’과 ‘분노’는 여전히 내 자아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 안에 음욕과 분노를 일어나게 해서,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반대로,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음욕과 분노를 다스리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도록 역사하십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 속에, 성령이 함께 하셔서 ‘음욕’과 ‘분노’를 다스려 주시고,

내 자아는 죽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드러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4.

오늘은 우리가 이같이 기도합시다.

‘주님, 우리 안에 끓어오르는 욕정을 이기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우리 안에 분노를 다스리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우리가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자가 되게 하소서’

그래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마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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