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경주하는 것입니다 /빌 3:12-21
- Hoon Park

- 2025년 6월 2일
- 5분 분량
2025년 5월 29일(목)
1.
12-14절까지는 바울이 신앙의 삶을 경주하는 것으로 비유해서 말씀하는 내용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세 가지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첫째, 신앙인은 끝까지 달려가는 경주자입니다.
12절입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경주자는 결승선을 통과할 때까지 달려가는 자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모두 신앙의 결승선을 통과할 때까지 경주하는 자들입니다.
오직 우리가 예수께 잡힌바 되어 끝까지 믿음으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에 대해서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이라는 것은, 예수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예수 외에는 우리가 구원 받을만한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
결코, 다른 이름으로 또는 율법과 행위로 구원 받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구원의 확신입니다.
그러나, ‘이미 내가 구원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구나 결승선을 통과해봐야 압니다.
구원 앞에서는 우리가 겸손해야 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신앙의 경주를 마칠 때까지 겸손하게 믿음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의 작사자인 존 뉴톤(John Newton) 목사님이 우리가 천국에 가면 세 가지를 놀라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첫째는 생각지 못한 사람이 천국에 있다는 것이요,
둘째는 천국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그곳에 없다는 것이요,
셋째는 나 같은 죄인이 천국에 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구원의 확신입니다.
그러나 그 구원은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닙니다.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믿음으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끝까지 겸손하게 믿음으로 달려가는 신앙의 경주자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둘째, 신앙의 경주에 있어서 명심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13절입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아직은 내게 구원이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뒤(과거)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눅 9:62)
사람들은 ‘뒤’를 돌아봅니다.
사람들이 돌아보는 ‘뒤’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자신의 잘못된 과거입니다.
이는 복음 없이 살아간 과거요, 믿음 없이 살아간 과거를 의미합니다.
또 하나는, 반대로 자신의 찬란한 과거입니다.
이는 복음에 불타올랐던 과거요, 믿음의 열정이 넘쳤던 과거입니다.
내 과거가 어떠한 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입니다.
나의 과거가 믿음 없이 살아간 과거이든, 반대로 믿음의 열정이 넘쳤던 과거이든 간에,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끝까지 달려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경주자들이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미 얻었다고 교만하지 마십시오.
내가 과거에 열심이었다고 자만하지 마십시오.
뒤를 돌아보지 마십시오.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십시오.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은 손에 쟁기를 잡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자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셋째, 우리가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14절입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푯대’란, 우리가 달려가야 할 분명한 ‘목표점’입니다.
목표가 없는 인생은 시간의 지배를 받습니다. 시간을 낭비하고 시간을 허비합니다. 되는 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목표가 있는 인생은 시간을 다스립니다. 시간을 계획하고, 시간을 들여 목표를 이루어갑니다.
신앙에도 분명한 목표가 있습니다.
그 목표점에 이르렀을 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주십니다.
그 부름의 상이 ‘의의 면류관’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신앙의 경주를 잘 마치고, 의의 면류관을 받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 7-8절에서 이같이 고백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결승선에 들어가는 순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목표를 향하여 포기하지 않고 달려가는 것입니다.
나를 위하여 예비 된 부름의 상, 곧 의의 면류관을 받을 때까지 나의 믿음을 지키며 달려갑시다.
2.
바울은 열심히 신앙의 경주자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말합니다.
17절,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신앙의 경주는 바울처럼 위대한 사도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역시 바울을 본받아 신앙의 경주자가 되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신앙의 경주자가 되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에게 눈물을 흘리게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18절,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바울이 지금 흘리는 이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기쁨의 눈물이 아닙니다. 감사의 눈물이 아닙니다.
이는 슬픔의 눈물입니다.
믿음으로 의의 면류관을 향하여 끝까지 달려가야 할 빌립보 교인들 중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처럼 행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원수’란, 복음을 대적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교회 안에서 복음을 부정하거나 복음을 축소하려는 자들입니다.
‘오직 믿음, 오직 말씀, 오직 예수’가 아닙니다.
여기에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것을 섞어 버립니다.
이들은 세상적인 것을 복음보다 앞세우는 ‘세속주의 자들’이요,
율법과 육체의 할례를 믿음보다 더 중요시하는 ‘유대주의자들(율법주의자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드러내고, 예수를 존귀케 하고, 예수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자신)을 드러내고, 사람(자신)을 존귀케 하고, 사람(자신)을 높입니다.
이들은 십자가 앞에서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자가 아닙니다.
나는 살고 예수 없이 살아가는 자들이요, 예수를 대적하는 자들이요, 예수 중심을 무너뜨리는 자들이요,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문제는 빌립보 교회 안에 이런 성도들이 있는데,
바울이 그들에게 여러 번 말하였는데도 여전히 변하지 않고 십자가의 원수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19절,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 ”
모두가 다 신앙의 경주를 하는 동일한 경기장에 서 있습니다.
지금은 같은 빌립보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경주를 마친 후에는,
어떤 이들은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신앙의 경주를 하여서 의의 면류관을 받지만,
어떤 이들은 십자가의 원수처럼 생활하다가 결국 멸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 것입니다.
20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자들입니다.
복음을 왜곡하는 자들이나 복음을 축소시키는 자들을 용납하지 마십시오.
복음에 세속적이거나 인간적인 것을 섞는 자들을 멀리하십시오.
하늘의 시민권은 ‘오직 복음, 오직 예수, 오직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주어집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자들입니다.
3.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첫 번째, 끝까지 달려가는 신앙의 경주자가 됩시다.
경주자는 분명한 목표가 있습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수많은 훈련을 합니다.
그리고 경기장에 들어서면 경주자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오직 앞만 보고 끝까지 달려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좋은 신앙의 경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분명한 신앙의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그 목표를 위하여 수많은 신앙의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바라보며 끝까지 믿음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나 자신에게 스스로 물어봅시다.
나는 신앙의 목표가 분명합니까?
나는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어떤 훈련을 하고 있습니까?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바라보며 끝까지 믿음으로 달려가고 있습니까?
나에게 부족하거나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좋은 신앙의 경주자가 되기를 기도하며 노력하는 자가 됩시다.
두 번째, 하늘에서 시민권을 받는 자들이 됩시다.
이미 얻은 것이 아닙니다. 온전히 이룬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이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는 자들입니다.
‘오직 예수, 오직 복음,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마지막 Finish line에서 의의 면류관과 함께 하늘의 시민권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복음을 왜곡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복음을 축소시키는 자들이 있습니다.
복음을 세속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을 섞어서 복음을 희석시키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도 복음을 말하고, 예수를 말하고, 믿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왜곡하거나, 축소하거나, 희석시키는 자들은 예수를 대적하는 십자가의 원수들입니다.
이런 이들에게 속지 마십시오. 이들에게 현혹되지 마십시오.
하늘의 시민권은 ‘오직 예수, 오직 복음,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얻게 됩니다.
우리 모두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마지막에 의의 면류관과 함께 하늘의 시민권을 받는 자들이 됩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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