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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의 사랑 노래 /아 8:5-14

2025년 4월 30일(수)

1.

아가서는 연애 소설이 아닌, 사랑을 노래하는 지혜시입니다.

신랑인 솔로몬과 신부인 술람미 여인 간의 뜨겁고 정열적인 사랑을 노래하는 내용입니다.

이는 곧 신랑 되신 예수님과 신부삼은 교회가 어떤 사랑의 관계인지를 비유적으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5절,그의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가?” 

‘누가 주님을 의지하고, 누가 주님께로 달려오는가?’라는 물음입니다.


주를 의지하고 주께로 달려오는 자는, 주를 사랑하는 자일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언제나 주를 의지합니다.

그리고 사랑하기 때문에 늘 주님께로 달려갑니다.


거친 들’이라는 표현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말입니다.

이 세상은 사랑이 없는 ‘거친 들’과 같습니다.

‘거친 들’과 같은 세상에서 우리가 겪는 것은 상처와 아픔, 슬픔과 고통, 고난과 역경입니다.

그리고 이런 ‘거친 들’에서 우리는 온전한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주님이 세상의 ‘거친 들’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온전한 사랑을 베풀어주십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는 신랑이 되어 주시고, 나를 신부 삼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합시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주님을 의지하고, 인생의 거친 들에서 주님께로 달려가는 자들이 됩시다.

이 새벽에도 주님을 사랑하기에,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께로 달려갑시다.


2.

5절하반절부터 7절까지는 신부가 신랑에게 달려가서 사랑을 노래하는 내용입니다.

6절과 7절에서 신부는 신랑의 사랑을 세 가지 비유로 표현합니다.


첫째, 사랑을 도장 새기는 것과 같다고 표현합니다.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마음과 팔에 사랑의 도장을 새겨달라는 노래입니다.


‘도장을 새긴다’는 것은 다른 말로 ‘인친다’는 것입니다.

도장을 새기는 것은 소유권을 의미합니다.

신부가 신랑에게 자기의 마음과 팔에 사랑의 도장을 새겨달라고 노래하는 것은,

내 마음과 몸은 나를 사랑하는 신랑의 것이요, 나도 이제 그 신랑만 사랑하겠다는 절대적인 헌신의 표현입니다.


우리는 모두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에베소서 1장 13절에서 말씀합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복음을 듣고 우리는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었다는 것은, 성령이 우리 안에 인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도장을 내 마음에 새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사랑하는 자요, 예수님의 거룩한 신부가 될 자들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17절에서,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흔적’ 또한 예수님의 사랑의 도장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 마음과 몸에 사랑의 도장을 새겨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것이요, 또한 우리는 오직 예수님만 사랑해야 할 그리스도의 신부들입니다.


둘째, 사랑을 죽음과 질투로 표현합니다.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죽음과 스올’은 사람이 이길 수 없고, 극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이 피할 수도 없고, 막을 수도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죽음과 스올이 다가옵니다.


그런데 죽음을 이기는 것이 있습니다. 스올을 정복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으셨습니다. 삼일 동안 스올에 내려가셨습니다.

그리고 죽은 자들 가운데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셔서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시고, 스올의 권세를 이기신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는 자에게 예수님은 죽음과 스올을 이기는 승리를 주십니다.

요한일서 4장 18절에서 이같이 말씀합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죽음과 스올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줍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에게는 더 이상 죽음과 스올이 두려움을 주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죽음과 스올을 이기게 하시고, 그 두려움을 내쫓아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신부들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됩시다.


셋째, 사랑을 여호와의 불로 표현합니다.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여호와의 불’의 특징은 꺼지지 않는 불이라는 데 있습니다.


성경에서 ‘여호와의 불’은 두 가지를 의미합니다.

첫째는 사랑의 불이요, 둘째는 심판의 불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꺼지지 않는 사랑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심판은 꺼지지 않는 진노입니다.

천국은 꺼지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의 불이 타오르는 곳이라면,

지옥은 꺼지지 않는 하나님의 진노의 불이 타오르는 곳입니다.


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사랑의 불과 심판의 불이 함께 타오르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곳에는 사랑의 불이 타오르고, 어둠의 권세가 임한 곳에는 심판의 불이 타오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랑을 ‘여호와의 불’이라고 한 것은, 꺼지지 않는 ‘사랑의 불’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꺼지지 않는 ‘여호와의 불’과 같습니다.

7절에서 이같이 말씀합니다.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을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바다의 많은 물과 홍수로 세상을 삼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의 불은 끌 수도 없고, 삼킬 수도 없습니다.

또한 그 사랑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예레미야 선지자는 마음에 여호와의 불이 붙은 사람입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왕과 거짓 선지자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레미야에게 온갖 박해와 조롱을 가했습니다.

그들은 예레미야에게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지 말라고 매질도 하고, 협박도 했습니다.

예레미야가 이런 상황에서 이같이 고백합니다.

렘 20: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여호와의 불이 마음에 붙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신랑의 사랑을 노래하는 신부의 마음에 붙은 것은, 꺼지지 않는 여호와의 불과 같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신부가 신랑의 사랑을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첫 번째, 주님의 사랑은 나를 인치신 사랑입니다.

성령께서 내 마음과 몸에 이미 인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도장을 새겨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제 예수님만 사랑해야 할 자들입니다.


로마서 14장 8절에서 말씀합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도 말씀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주님이 내 마음과 몸에 사랑의 도장을 새겨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주님의 사랑은 죽음과 스올을 이기는 사랑입니다.

죽음이 나를 이기지 못합니다. 스올의 권세가 나를 헤치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부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죽음과 스올은 더 이상 내게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5절에서 말씀합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죽음과 스올을 향하여 이렇게 담대하게 맞서십시오.

하나님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주님의 사랑은 꺼지지 않는 여호와의 불과 같은 사랑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무엇으로 끌 수도 없고, 끊을 수도 없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꺼지지 않는 여호와의 불과 같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38-39절에서 말씀합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라도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그러므로 이런 사랑을 베풀어 주신 주님께 감사 기도합시다.

주님의 사랑을 노래하고 전하는 자가 됩시다.

또한 우리가 이런 주님을 더욱 사랑하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나아가, 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을 사랑하기에 눈에 보이는 형제를 서로 사랑하는 자가 되길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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