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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목자, 선한 양 / 요 10:1-21

2026년 3월 4일(수)


1.

요한복음에는 ‘나는 ... 이다. I am ...’이라는 예수님의 자기 선언이 일곱 개 나옵니다.

오늘 본문은 세 번째와 네 번째 자기 선언의 말씀입니다.


먼저, 1-6절까지는 예수님과 우리 사이를 ‘목자와 양의 관계’로 비유해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두 가지 종류의 ‘양 우리 sheep pen’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마을 안에 있는 ‘양 우리’요, 또 하나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들판에 있는 ‘양 우리’입니다.


마을 안에 있는 ‘양 우리’는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관리했습니다.

양 우리의 문 앞에는 지키는 문지기가 있었습니다.

이 문지기의 역할은, 목자가 맡긴 양을 돌보고 목자가 오면 양을 내어 주는 일이었습니다.


반면,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들판에 지어진 ‘양 우리’는 돌을 쌓아 담을 만들었는데 문이 따로 있지 않았습니다.

담의 한 부분을 터놓아 입구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밤이 되면 목자는 자기 몸으로 이 입구를 가로 막고 잠을 잤습니다.

자신의 몸이 양 우리의 문이 된 겁니다.


마을 안에 있는 ‘양 우리’는 나무로 만든 좋은 ‘문’이 있고 그 앞에 지키는 문지기가 있지만,

들판에 있는 ‘양 우리’는 목자가 직접 그 ‘문’이 되었던 것입니다.


1-6절까지의 비유의 배경은 ‘마을 안에 있는 양 우리’입니다.

반면, 7-10절까지의 비유의 배경은 ‘들판에 지어진 양 우리’입니다.


예수님은 1-6절까지에 나오는 <목자와 양의 비유>를 통해서, 목자의 세 가지 특징을 말씀 하셨습니다. 첫째, 목자는 양의 우리의 문으로 들어갑니다.

1-2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강도나 도적들은 울타리를 넘습니다. 몰래 양을 훔쳐가기 위해서입니다. 결코 양의 문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3절에 기록된 것처럼, 양의 우리 앞에는 문지기가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목자는 언제나 문으로 들어갑니다. 문지기가 양 우리의 문을 열어줍니다.

그러면 목자가 그 안으로 들어갑니다.


목자이신 예수님의 이런 모습이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잘 나타납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 라


목자이신 예수님은 몰래 들어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면 들어오십니다.


둘째, 목자는 자기 양의 이름을 압니다.

3절,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양 우리에는 동네 사람들의 많은 양들이 한 데 섞여 있습니다.

그런데 그 양들은 저마다 자기 목자의 음성을 압니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의 이름을 알고 불러냅니다.

누가 내 목자인지, 누가 내 양인지 서로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섞여 살고 있지만,

우리는 목자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예수님도 우리의 이름을 알고 불러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양이요,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셋째, 목자는 양들보다 앞서 갑니다.

4절, “자기 양을 다 내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목자는 양들보다 앞서 걸어갑니다.

양들은 인간의 시력을 빗대어 설명하면, 마이너스 10 정도 되는 시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1미터나 2미터 앞에 있는 사물도 제대로 볼 수 없다고 합니다.

반면, 양은 우리 인간이 듣지 못할 정도의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양들은 목자를 따라갈 때 목자를 보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갑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면 우리 안에 들어오시고, 우리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우리 보다 앞서 걸어가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눈을 의지해서 보이는 대로 걸어가지만,

예수님의 양인 우리는 귀에 들리는 주님의 음성을 의지해서 음성을 따라 걸어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13장 1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2.

7-10절까지의 비유 이야기는 ‘들판에 있는 양 우리’를 배경으로 하는 말씀입니다.

7절, ... 나는 양의 문이라

이는 예수님의 세 번째 자기 선언의 말씀입니다.


들판에서 목자는 밤마다 스스로 양의 ‘문’이 되었습니다.

양들은 양의 문이 되는 목자를 통해서 우리 안으로 들어가서 안전하게 밤을 보냅니다.

이때 어둠 속에서 호시탐탐 양들을 노리는 사나운 들짐승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양의 문이 되는 목자가 그 사나운 들짐승들로부터 밤새 양들을 보호하고 지켜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를 지키시는 양의 ‘문’이 되십니다.

마귀는 우리를 공격하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문’이 되어주시는 예수님이 항상 우리를 보호하시고 지켜주십니다.


9절,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들판은 양들에게 풍성함과 죽음의 위험이 동시에 공존하는 곳입니다.

낮에는 들판이 축복의 장소입니다. 들판에 가득한 풀들로 인해 풍성함이 넘치는 곳입니다.

반면, 밤에는 들판이 죽음의 위험으로 가득한 곳입니다.


그러나 양들에게는 양의 문이 되어주는 목자가 있습니다.

그래서 낮에는 우리 밖으로 나아가 풍성하게 꼴을 얻습니다.

반면 저녁이 되면 우리 안에 들어가 편히 쉼을 얻습니다.


우리에게 이 세상은 들판과 같습니다.

우리에게 복과 풍성함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죽음의 위험이 가득한 곳입니다.

그러나 양의 문이 되신 예수님 때문에 죽음의 위험에서 벗어나 구원을 받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통해서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습니다.

신명기 28장 6절에서 이같이 말씀합니다.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양의 문이 되신 예수님을 통해서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 것입니다.


여기서 ‘복’은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동시에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얻는 구원만 주시지 않습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물질적으로 풍성한 복을 얻게 하십니다.


그래서 이같이 말씀하십니다.

10절 하반절,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3.

11-18절까지는 예수님의 네 번째 자기 선언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11, 14절, “나는 선한 목자라


예수님께서 ‘나는 선한 목자다’라고 하신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1절,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5절, “...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8절, “...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예수님이 선한 목자이신 것은, 우리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리신 목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자기 목숨까지 버리신 선한 목자는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오늘 비유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

문지기, 목자 그리고 양’입니다.

‘목자’는 예수님입니다. ‘양’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자들입니다.

또한 여기서 ‘문지기’는 목회자들입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선한 문지기는 오직 목자이신 예수님에게만 양들을 내어줍니다. 바른 복음으로 안내합니다.

또한 선한 양은 목자이신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다른 양들이 있습니다.

16절,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해야 할 일은 ‘우리가 하여야 할 일’입니다.

그 문으로 들어가야만 구원을 받고, 꼴을 얻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예수님의 선한 양이 됩시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누리고, 풍성하게 꼴을 얻는 자들이 됩시다.

나아가 생명을 얻고, 꼴을 얻게 하는 양의 문이 되신 예수님께로 아직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을 이끄는 자들이 됩시다.


4.

오늘은 이렇게 기도합시다.

‘주님, 오직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음성만 듣고 따라가는 선한 양이 되게 하소서.’

‘주님, 오직 양의 문이 되신 예수님 안에만 거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때문에 생명을 고, 들어가도 나가도 풍 성한 꼴을 얻게 하소서.’

‘주님,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을 예수님에게 인도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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