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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남을 낫게 여깁시다 / 대하 35:20-27

2025년 10월 30일(목)

1.

요시야에 대한 역대기서의 한 줄 평가는 다음과 같습니다.

대하 34:2,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길로 걸으며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요시야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처음과 끝이 한 결 같이 오직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햇수로 7년 동안 우상을 제거하고 성전과 온 땅을 정결케 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성전 보수를 하다가 발견한 ‘모세가 기록한 여호와의 율법책’을 서기관 사반이 낭독하는 것을 듣자마자 자기 옷을 찢어 회개했습니다.

이때 요시야는 자기 할아버지 므낫세가 불순종해서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다 오고, 아버지 아몬이 불순종해서 신하 들의 반역으로 죽임을 당한 일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서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이었구나’라고 깨달 았습니다. 또한 유다 왕국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요시야는 하나님의 뜻을 더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여선지자 훌다에게 신하들을 보냅니다.

훌다는 불순종했던 유다와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과,

그러나 요시야는 이런 하나님의 심판을 보지 않고 죽게 되리라는 예언을 합니다.

이 예언을 전해들은 요시야는 온 백성들을 예루살렘에 불러 모으고는,

이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오직 성경(율법)에 기록된 말씀대로 온전히 살아가자고 하나님 앞에 서 언약을 맺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유월절 절기를 온전하게 지킵니다.

요시야가 율법에 기록된 대로 얼마나 온전히 유월절을 지켰는지 선지자 사무엘 이후로 이스라엘 왕조에서 이처럼 유월절을 정성스럽게 지킨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요시야는 멸망을 앞두고 있는 유다 왕국에서 마지막으로 환하게 타올랐던 ‘마지막 불꽃’이었습니다.

요시야 사후(BC 609년) 유다는 급격하게 쇠락의 길로 내려가다가 결국 BC 587년에 멸망하게 됩니다.


2.

오늘 본문은 요시야 생의 마지막 해(BC 609년)에 일어난 일입니다.

20절입니다.

이 모든 일 후 곧 요시야가 성전을 정돈하기를 마친 후에 애굽 왕 느고가 유브라데 강가의 갈그미스를 치러 올라왔으므로 요시야가 나가서 방비하였더니


당시 유다의 북쪽에는 앗수르 제국이 힘을 잃어가고 있었고, 바벨론 제국이 점점 힘이 커져가고 있었습니다.

바벨론 제국의 힘이 커지는 것을 견제하고 앗수르를 돕기 위해서 애굽 왕 바로 느고가 유브라데 강가의 갈그미스까 지 군대를 끌고 올라간 것입니다. 갈그미스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120km 떨어진 곳입니다.


애굽 군대가 이곳까지 가기 위해서는 유다 땅을 지나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요시야 왕은 이것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바로 느고가 요시야 왕에게 사신을 보냅니다.

21절입니다.

느고가 요시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이르되 유다 왕이여 내가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내가 오늘 그대를 치려는 것이 아니요 나와 더불어 싸우는 족속을 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사 속히 하라 하셨은즉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거스르지 말라 그대 를 멸하실까 하노라 하니


여러분이 요시야 왕이라면 애굽 왕 바로 느고의 이 말을 믿으시겠습니까?

내가 오늘 그대를 치려는 것이 아니요 나와 더불어 싸우는 족속을 치려는 것이라

바로느고가 이런 말을 했지만 혹시라도 유다 땅을 지나가다가 마음이라도 바꾼다면, 순식간에 유다가 애굽에 의해 짓밟힐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바로 느고가 한 마디를 덧붙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사 속히 하라 하셨은즉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거스르지 말라 그대를 멸하실까 하노라


애굽은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가 아닙니다. 애굽 왕인 바로느고 역시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아닙니다.

애굽에서 왕은 태양신으로 불리는 존재였습니다.

그런 바로 느고가 하나님을 경건하게 믿고 섬기는 요시야 왕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언급하며 자신의 행위의 진실성을 설득하려고 한 것입니다.


요시야 왕은 바로 느고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았습니다.

애굽의 바로 느고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해서 말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사용하는 것이라 생각했을 겁니다.


그래서 요시야 왕은 뜻을 굽히지 않고 결국 애굽 왕과 전쟁을 치룹니다.

22절입니다.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오히려 변장하고 그와 싸우고자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므깃도 골 짜기에 이르러 싸울 때에


성경은 바로 느고가 한 말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었다고 증언합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


저는 이 대목에서 처음에는 마음의 혼란함을 느꼈습니다.

요시야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느고는 이방의 왕이요, 자칭 태양신이라 일컫는 자입니다.

그러니 바로 느고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할 때 그가 하는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기 보다는 하나님의 이 름을 빙자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방인 바로 느고가 한 말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맞다니... 제 마음이 혼란해졌습니다. 요시야도 그랬을 겁니다.


요시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으려고 했는데,

하나님은 왜 요시야에게 직접 말씀하지 않으시고 이방인 느고에게 말씀하셨을까요.

처음에는 혼란스럽다가 깨달아졌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것은 ‘겸손함’을 가르치시기 위해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남보다 말씀을 잘 안다고 생각하거나, 남보다 말씀을 잘 지키며 산다고 생각할 때 사람들이 빠지게 되는 함정은 ‘교 만’입니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는 전혀 믿음도 없고 말씀도 모르는 사람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실 수 있다는 생 각을 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렇게 하실 지라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는데, 어떻게 저런 사람에게 말씀하실 수가 있지?

하나님이 저 사람에게도 말씀하셨다면 나에게도 말씀하시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을 잘 알고,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이 빠지는 교만이라는 함정입니다.


하나님은 마른 지팡이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나귀의 입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비록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바로 느고의 입을 통해서 요시야에게 말씀하신 겁니다.


그러나 요시야는 그것을 무시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교만이라는 함정에 빠진 것입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이, 우리도 더욱 겸손해야 합니다.

교만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늘 깨어서 조심해야 합니다.


3.

요시야는 바로 느고와 전쟁을 벌이다가 화살을 맞아 중상을 입게 됩니다.

예루살렘에 돌아가서 회복되지 못하고 결국 숨을 거둡니다(23-24절).


24절 하 - 25절까지 입니다.

... 그가 죽으니 그의 조상들의 묘실에 장사되니라 온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요시야를 슬퍼하고, 예레미야는 그를 위하여 애가를 지었으 며 모든 노래하는 남자들과 여자들은 요시야를 슬피 노래하니 이스라엘에 규례가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며 그 가사는 애가 중에 기록되었더 라


요시야 왕이 죽게 되자, 온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슬퍼했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를 위해서 애가를 지었고, 사람들은 요시야를 위해 곡하며 노래를 했습니다.

죽은 요시야를 위해서 노래하는 일은 이스라엘에 규례가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을 만큼, 요시야는 죽은 후에도 많은 사람의 마음에 남게 된 좋은 왕이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요시야는 살아 있을 때 온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선한 영향력을 끼친 왕이었는데, 죽은 후에도 백성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친 왕이었습니다.

살아 있을 때도, 죽은 다음에도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요시야 왕이 죽은 다음에도 백성들의 마음에 남아 그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된 것은,

그가 살아 있을 때 철저하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바로 느고 왕을 통해서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전쟁터에서 입은 부상 때문에 죽 음을 당했다 할지라도, 그는 죽어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선한 왕이었습니다.


반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왕이요, 스스로 태양신이라고 자처하는 바로 느고는,

그가 비록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순종하기 위해서 군대를 이끌고 갈그미스를 향해 나아갔다 할지라도, 그의 인생은 결코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따르는 삶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한 번 쓰임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가 살아온 인생이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선인만 사용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때로는 바로 느고처럼 스스로 태양신이라 자처하는 사람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선한 사람들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악한 사람들의 하나님도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악인들이 하나님께 한 번 쓰임 받았다고 해서 그 악인이 선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악인이 많은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한 번 하나님에 의해서 쓰임 받을 뿐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쓰임 받았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누구나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자는 하나님께 쓰임 받은 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좌우로 치우치지 아 니하고 신실하게 살아가는 자입니다.


애굽 왕 바로 느고는 하나님께 한 번 쓰임 받았지만 선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요시야는 일평생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았기 때문에 죽어서도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자가 된 것입니다.


4.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누구나 한두 번 겸손할 수는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일생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방인이요, 자칭 태양신이라 일컫는 바로 느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누가 알았 겠습니까. 그러나 변변치 않아 보이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도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있을 수 있다는 겸손함 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장 3절에서 이같이 말씀합니다.

...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나보다 못한 자는 없다’는 자세입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는 세상에 나보다 못한 자는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누구를 만나든 ‘나 보다 못한 자는 없다’는 마음으로,

‘나 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겸손한 자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그래서 살아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자가 되고, 죽어서도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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