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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는 것은 말씀입니다 / 요 6:60-71

2월 22일
5분 분량

2026년 2월 20일(금)


1.

요한복음 6장은,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 이유를 2절에 이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른 이유는, 예수님이 병자들을 고치시는 표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큰 무리에게 벳새다 들판에서는 '오병이어 기적'을 베푸십니다.

그러자 그 큰 무리가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왕'을 삼으려고 하는 무리들을 피해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곳에서 겸손히 기도의 무릎을 꿇으셨습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 했던 그 큰 무리들은 다음 날 예수님을 찾으려고 배를 타고 가버나움까지 왔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찾아온 그들에게 더 이상 '기적'을 행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에게 하신 일은 오직 '말씀'을 전하시는 일이었습니다.


27절,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29절. "...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35절. "...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48-51절, "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이상의 내용들은 곧 '복음'의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보고 큰 무리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따라다녔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더 이상 기적을 행하지 않으시고 오직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러자 복음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41절. "... 유대인들이 예수에 대하여 수군거려..." 

52절,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60절,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 대"


예수님이 병자들을 고치시고, 오병이어 '기적'을 행하실 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때는 수군거리는 자들도 없었고, 아무런 다툼도, 아무런 어려움을 토로하는 자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시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가르치시자.

사람들 안에 '수군거림과 다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라며 마음으로부터의 저항도 일어났습니다.


기적은 사람들에게 맹목적으로 따르게 만듭니다.

반면, 말씀은 사람들 안에 저항을 일으키게 만듭니다.

그러나 사람을 살리는 것은 말씀이지, 기적이 아닙니다.

또한 믿음은 기적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서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기적을 쫓아다니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따라 다니는 사람은 적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뿌리를 내려야 할 곳은 기적 위가 아니라, 말씀 위에여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기초를 세워야할 곳도 기적 위가 아니라, 말씀 위에여야 합니다.


2.

예수님이 찾아온 무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63절.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육은 무익하니라" 

육적인 기적을 경험했다 할지라도 영생을 얻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육은 무익합니다.

그러나 "살리는 것은 영이니...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말씀과 복음이 영이요, 생명입니다.

그래서 말씀과 복음만이 사람을 살립니다. 말씀과 복음만이 생명을 얻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유익한 것은 '말씀과 복음'이요.

우리가 붙들고 따라야 할 것도 '말씀과 복음'입니다.

우리를 살리게 하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66절,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기적'을 보았을 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 왔고,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심지어 왕으로 삼으려고까지 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모두 우쭐대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과 복음'을 듣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나갑니다. 심지어 제자들도 떠나갔습니다.


미국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대표적인 분이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이십니다.

그분은 오직 복음만을 전하기 위해 힘썼습니다. 그런 그분도 섬기는 교회에서 쫓겨났습니다.

그 이유는 교인들이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는 반응 때문이었습니다.

섬기는 교회에서 쫓겨난 에드워즈 목사님은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63절)는 예수님의 말씀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기적과 은사는 예수님 앞에 나아가게 할 수는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가 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는 참 제자가 되게 하는 것은 오직 복음을 통해서입니다.

육은 무익합니다. 살리는 것은 영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이르신 말씀, 곧 복음이 영이요. 생명입니다.


오병이어 기적 사건 이후, 6장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살리다'라는 단어입니다.

39절, 40절, 44절, 51절. 54절, 56절(3회), 58절... 모두 9회나 반복됩니다.

또한 '영생, 생명'이라는 단어입니다.

27절, 33절. 35절, 40절, 47절, 48절, 51절(2회), 53절. 54절... 모두 10회나 반복됩니다.


이를 통해서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무엇인지,

예수님의 가장 큰 우선순위와 관심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를 '살리는 것'이요. 우리에게 '영생과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를 살리는 것은 말씀이요. 우리에게 영생과 생명을 주시는 것도 말씀입니다.

기적, 은사, 물질과 건강의 복. 병 고침과 회복 등은 분명 예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는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구원'은, 오직 복음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입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40절)


3.

주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무리들이 떠나갔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서로 수군거렸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물으십니다.

61절,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이르시되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이 수군거리고 마음에 걸림이 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예수님이 그 이유를 이같이 말씀하십니다.

64절,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믿음은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말씀의 종교라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기독교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을 믿는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곧 예수님의 말씀을 붙들고 행하는 것입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이라고 해서 모두 믿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큰 기적을 경험하였다고 해서 모두 믿음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라야 믿음이 있는 자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만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도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66절입니다.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 중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제자들이 떠나가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이 열두 제자들에게도 물으십니다.

67절. "... 너희도 가려느냐"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68-69절,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큰 무리들이 떠나갔습니다.

예수님 지근거리에서 따르던 제자들도 떠나갔습니다.

이제 예수님 곁에 남은 것은 열두 제자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열두 제자들마저도 모두가 믿음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70절을 보면, 예수님은 자신을 팔아넘길 가룟 유다를 일컬어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때까지도 예수님 곁에 남은 열두 제자 중에도 믿지 않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자들은 많아도.

실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얼마나 적은 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4.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육은 무익합니다. 육은 결국 죽습니다.

기적과 은사가 아무리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데 유익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무익합니다.

살리는 것은 영입니다. 영은 생명을 얻게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 곧 복음이 영이요. 우리를 살리는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모해야 할 것은 기적과 은사가 아니라 말씀과 복음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더욱 말씀과 복음을 사모하는 자들이 됩시다.

복음을 수군대거나 복음이 걸림돌이 되는 자들이 되지 않고, 더욱 복음을 알아가고, 복음을 깨달아가고, 복음을 따르는 일에. 무엇보다 복음이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닮아가는 일에 더욱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오늘은 이렇게 기도합시다.

'주님, 기적을 보고 따르는 자가 아닌 말씀을 듣고 따르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내 삶에 기적이 없다 할지라도 말씀을 믿는 믿음을 갖게 하소서'

'주님, 끝까지 주님 곁을 떠나가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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