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됩시다 / 요 7:53-8:20
- Hoon Park

- 3월 1일
- 4분 분량
2026년 2월 25일(수)
1.
초막절이 끝나자 사람들은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감람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감람산은 예수님에게 기도하는 장소였습니다.
초막절이 마친 후 예수님은 기도하러 감람산에 올라가셨을 겁니다.
다음날 아침, 산에서 내려오셔서 다시 성전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을 알아본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앉으셔서 그들을 가르치셨습니다. 바로 그 때였습니다.
마치 준비된 각본처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인 하나를 예수님께로 끌고 왔습니다.
그 목적은, “고발한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6절)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을 고발하기 위한 명분을 얻기 위해서 함정을 판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인을 풀어주라고 하면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율법을 어긴 죄로 산헤드린에 고발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예수님이 율법대로 여인에게 돌을 들어 치라고 하면, 율법은 지키는 것이 되지만 당시 로마법을 어기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로마법을 어긴 죄로 로마 총독에게 고발할 수 있었습니다.
진퇴양난의 시험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감람산에서 밤새 기도하고 내려오셨는데,
예수님 앞에 펼쳐진 일은 ‘시험’이요, ‘함정’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기도하셨기 때문에 이런 시험이 찾아온 걸까요?
아니면 이런 시험이 올 것을 아셨기에 예수님이 미리 기도하셨던 걸까요?’
예수님은 사탄의 시험이 올 것을 아셨기에 미리 기도로 준비하신 겁니다.
사탄은 늘 우리를 시험하는 자입니다.
늘 우리의 믿음을 떨어뜨리려고 온갖 궤계를 부리는 자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두렵게 만들고, 낙심하게 만들어서, 우리가 더 기도하지 못하게 하고,
우리가 더 주와 말씀을 붙들지 못하게 하는 자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예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어서, 결국 우리가 구원을 잃어버리게 만들려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이런 궤계를 너무나 잘 아십니다.
사탄은 멀리 있는 사람을 통해서 나를 시험하지 않습니다.
내 가까이 있는 사람을 통해서 시험 합니다.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을 통해서 시험 합니다.
이방인들을 통해서 예수님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잘 알고 성경을 잘 아는 서기관과 바리새인, 제사장 같은 종교 지도자들을 통해서 시험합니다.
예수님은 사탄이 늘 시험하고 유혹하는 자라는 것을 아셨기에,
언제나 기도로 준비하는 삶을 사신 겁니다.
기도로 준비되지 않고서는 사탄의 시험과 유혹을 이겨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기도가 쌓여져 있는 사람, 기도의 내공이 있는 사람은,
사탄이 삶 속에서 아무리 넘어뜨리려고 시험해도 결코 넘어지지 않습니다.
2.
예수님을 시험하려던 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7절,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러자 예수님의 말씀 앞에 보인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9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낀 사람들이 모두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나갔습니다.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은 그 죄가 드러난 죄인이라면,
그 여인을 향하여 돌을 든 자들은 아직 죄가 드러나지 않은 죄인일 뿐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실체에 대해서 이같이 말씀합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1)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우리 중에 죄인 아닌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그 죄가 드러난 사람과 아직 그 죄가 드러나지 않은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라는 비유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자기 의를 드러낸 바리새인은 불의한 자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죄를 고백한 세리는 의로운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은 세리를 보며 이렇게 감사했습니다.
“...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눅 18:11)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큰 불의요, 죄악이었습니다.
반면, 세리는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회개했습니다(눅 18:13).
하나님 앞에서 내가 죄인이라고 여기는 자만이 회개할 줄 압니다.
하나님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간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의롭다고 여기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의로운 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의한 자입니다.
하나님 앞에는 우리가 내세울 그 어떤 작은 의도 없습니다. 공로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늘 죄인일 뿐입니다.
은혜 받은 죄인이요, 의롭다함을 받은 죄인이요, 구원을 받은 죄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일컬어, “죄인 중의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정죄의 돌, 비난의 돌, 비판과 판단의 돌, 미움의 돌, 증오의 돌을 손에 들고 살아갑니다.
너무도 쉽게 그 돌을 던지며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7절)
하나님은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고 용납하라고 말씀하셨지, 서로 정죄하고 심판하라고 말씀하신 적은 없습니다. 선악간의 심판자는 오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똑같은 죄인으로서 서로 사랑하고 용납하고 위해서 기도해주는 것뿐입니다.
선악간의 판단과 심판은 오직 의로우신 하나님만이 하실 일입니다.
3.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낀 사람들이 모두 떠나 갔습니다.
예수님이 여자 외에는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그 여인에게 물으십니다.
10절, “...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그 여인이 대답합니다.
11절 상반절, “주여 없나이다”
사탄은 언제나 우리를 참소하는 자입니다.
우리의 죄를 고발하는 자요, 정죄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죄책감과 죄의식을 갖게 만듭니다.
‘너 같은 죄를 지은 자가 주를 위해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냐?
너 같은 죄를 가진 자가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을 받아 주시겠냐?’
우리 마음 안에 언제나 사탄은 우리를 참소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참소하는 사탄’ 앞에 서 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 앞에 서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할 것은 오직 예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그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11절 하반절,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여기서 강조점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정죄하지 않는 분이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때가 되면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해서 예수님이 심판하실 날이 옵니다.
그날이 올 때까지는 예수님도 정죄하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잠시 보류하십니다.
그러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죄로부터 돌이키고 하나님께 회개하며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죄를 범하지 않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12절입니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죄를 범하지 않는 삶입니다.
예수님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죄를 범하며 살아갑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죄를 지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결코 어둠에 다니지 않습니다. 죄 가운데 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를 따르는 자가 되지 맙시다. 빛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됩시다.
그래서 우리 모두 결국 생명의 빛을 얻는 자들이 됩시다.
4.
오늘은 이렇게 기도합시다.
‘주님, 늘 깨어 기도로 준비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정죄와 미움의 돌을 내려놓고 늘 용서와 사랑을 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빛이신 예수님을 늘 따르는 자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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