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이 있는 자가 됩시다. /눅 11:27-36
- Hoon Park

- 2025년 3월 25일
- 5분 분량
1. 가톨릭에서는 마리아를 태어날 때부터 원죄 없이 태어났다고 가르칩니다.
또한 마리아를 하나님의 은총을 가득히 받은 자요,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전하는 중보자로 가르칩니다.
그래서 가톨릭 신자들은 마리아에게 복을 구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그 이유는,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가톨릭의 가르침은 예수님의 뜻과는 너무나 다른 것임을 오늘 본문에서 보게 됩니다.
한 여자가 말씀을 전하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27절,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어느 여인이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일컬어 예수님을 낳았으니 복 있는 여인이라고 칭송한 겁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십니다.
28절,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주님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인맥, 혈연, 신분’ 등이 아닙니다.
주님은 주님과의 ‘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주님과의 관계는 ‘믿음’으로 맺어집니다.
그리고 주님을 따르는 ‘순종’하는 삶을 통해서 주님과의 관계는 더 깊어지고 발전하게 됩니다.
예수님에게는 부모와 네 명의 남동생과 여러 명의 여동생도 있었습니다.
또한, 갈릴리에서 함께 자랐던 고향 친구들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복 있다고 말씀하신 사람은, 그런 혈연이나 지연, 학연 등으로 맺어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마태복음 12장을 보면,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께 어머니와 동생들이 찾아왔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같이 반문하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며 내 동생들이냐”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손을 내밀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마 12:49-50).
구원은 혈통이나, 학연, 지연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모나 동생, 또는 고향 친구라고 해서 저절로 구원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주어집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살아 있는 믿음은 아버지의 뜻대로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6장 47절과 48절에서,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자”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또한 누가복음 8장의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는,
“많은 열매를 맺는 좋은 땅이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8:15).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 사도는 야고보서 1장 22절에서,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과 믿음의 관계를 맺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복 있는 자입니다.
이런 자가 주님의 가족이요, 이런 자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자요, 이런 자가 많은 열매를 맺는 옥토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28절)고 말씀하신 겁니다.
2. 예수님께서 “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그것을 본 일부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했습니다.
“또 더러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니”(16절)
사람들은 관심은 예수님이 아닙니다. 표적과 기적, 능력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사모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이 이 세대의 특징이라고 말씀하십니다.
29절입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12장 39절에서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라고 말씀합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란, 한 마디로 “믿음이 없는 세대”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실 때, 2천 년 전 당시 세대의 특징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요, 믿음이 없는 세대”였습니다.
그로부터 2천년이 지났습니다.
2025년을 살아가는 오늘 이 세대는 어떨까요?
오늘 이 세대도 “악하고 음란한 세대요, 믿음이 없는 세대”와 같습니다.
2천 년 전과 비교했을 때,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 이 시대는 외적이고 육적인 모든 것들이 다 변했습니다.
사회와 정치, 경제와 문화, 법과 제도, 민족과 국가의 영역, 사람들의 의식수준과 지적 능력, 과학기술과 의료기술, 역사와 문명 등 모든 면에서 2천 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영적인 상황입니다.
2천 년 전이나 오늘이나 여전히 “이 세대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요, 믿음이 없는 세대”입니다.
이런 악하고 음란한 세대요, 믿음이 없는 세대의 특징은 한 가지입니다.
진리이신 예수님을 구하지 않습니다.
표적과 능력, 기적과 맘몬을 구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믿음 없는 세대에게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29절하).
예수님께서 요나의 표적을 말씀하신 이유가 30절입니다.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요나는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다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그 요나가 전한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아래 있던 니느웨 성 사람들이 모두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장사 지낸지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십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전한 복음을 믿고 회개하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아래서 벗어나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요나의 표적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예수님입니다.
기적은 구원의 표적이 아닙니다. 어떤 특별한 성령의 은사도 구원의 표적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구원의 표적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예수’입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이름은 ‘예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라는 이름보다 더 존귀하고,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이름은 없습니다.
3. 33-36절까지는 <등불과 눈의 비유>입니다.
등불을 은밀한 곳이나 말 아래 숨겨두는 사람은 없습니다.
등불은 모든 사람이 그 빛을 볼 수 있도록 등경(등잔대) 위에 올려 둡니다. 이것은 상식입니다.
우리의 몸 중에 등불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은 ‘눈’입니다.
그래서 눈이 밝으면 몸이 밝은 곳에 있게 되지만, 눈이 어두우면 몸도 어두운 곳에 있게 됩니다. 이것 역시 상식입니다.
이 두 가지 상식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예수님은 35절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마음에 등이 있습니다.
그 마음의 등에 있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사람이 있고, 꺼져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비유에서 등에 켜져 있는 불, 곧 ‘등불’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자는 마음의 등불이 켜져 있는 자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등에 말씀의 불이 켜져 있는 사람은, 밝은 빛의 길과 생명의 길을 걸어갑니다.
그러나 마음에 말씀이 없는 자, 마음의 등불이 꺼져 있는 자는 어둠의 길, 죽음의 길, 멸망의 길을 걸어갑니다.
그럼, 36절에 기록된 ‘등불의 빛’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등불을 통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비추이는 빛은 예수님이십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세상의 빛이 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는 결코 세상의 빛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빛이 없고, 어둠 밖에 없습니다. 선한 것은 없고, 죄 밖에 없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를 통해서 예수님의 빛을 세상에 비추이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의 등불이 켜져 있을 때, 그 등불의 빛이신 예수님이 나를 통해서 세상에 비추이는 겁니다.
내 영혼의 빛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또한 세상을 밝게 비추이는 빛도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마음에 말씀의 등불이 켜져 있는 자는, 세상에 예수님의 빛을 비추이는 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에 말씀의 등불이 환하게 켜져 있도록, 늘 주님의 말씀을 내 마음에 채우는 자가 됩시다.
28절에서 예수님께서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가 그런 복이 있는 자들이 됩시다.
4.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첫 번째, 예수님과의 관계가 친밀하고 깊어지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예수님과의 관계는 ‘믿음’을 통해서 맺어집니다.
그리고 그 관계가 친밀해지고 깊어지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고 행하는 자가 될 때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외면하거나, 주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자가 주님과 친밀해질 수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고, 행하는 자가 될 때, 주님과 더 친밀함과 깊어짐의 관계를 이루게 됩니다.
그런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이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자요, 많은 열매를 맺는 옥토와 같은 자요, 주님이 인정하시는 주님의 가족이 됩니다.
두 번째, 믿음의 세대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이 세대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입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찾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두드리지 않습니다.
믿음이 있는 세대의 특징은 예수님을 구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세대의 특징은 예수님을 구하지 않습니다.
표적과 기적, 능력과 재물 등만 구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어떻습니까? 내가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믿음 있는 세대가 됩시다.
그래서 내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언제나 어디서나 예수님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가 됩시다.
세 번째, 복 있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 있는 자란,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하는 자입니다.
사람마다 마음에 등불이 있습니다. 그 등불이 환한 사람이 있고, 꺼져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의 등불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등불의 빛은 예수님입니다.
마음에 등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사람은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마음에 등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사람은 세상에 예수님의 빛을 비추이게 됩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밝히시는 빛이요, 예수님은 태양보다 더 밝으신 빛입니다.
이 빛은 어둠과 죽음의 그늘을 물리치고, 생명을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가 됩시다.
내 마음의 등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자가 됩시다.
그래서 나를 통해서 빛이신 예수님이 세상 속에 드러나는 복이 있는 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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