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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게 하시고, 살아나게 하소서 /시 119:17-32

2025년 5월 2일(금)

1.

오늘은 시편 119편 17-32절까지의 내용입니다.

히브리어 알파벳으로는 ‘김멜( ג)과 달렛( ד)’에 해당하는 연입니다.


17-24절까지 세 번째 연의 주제는 ‘눈을 열어 보게 하소서’입니다.

18절입니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하나님의 말씀은 감추어져 있습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학식이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성경을 읽을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는 못하고, 말씀의 보화를 발견할 수는 없습니다.


목사와 신학자는 성경에 대한 지식을 많이 알 수는 있습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 많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잘 깨닫고, 말씀의 보화를 더 잘 발견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식인이나 지성인뿐만 아니라, 심지어 목사와 신학자에게도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

래서 늘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겸손하게 이렇게 간구해야 합니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교인들 중에 ‘영안(영적인 눈)’이 열리기를 기도하기도 합니다.

왜 영안이 열리기를 기도할까요?

두 가지 이유입니다.

첫째 이유는, 영안이 열리면 영적인 실체인 천사나 귀신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유는, 영안이 열리면 앞날(미래)을 내다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런데 이것은 성경적인 ‘영안’은 아닙니다. 다소 신비주의적이고, 미신적이고, 무속적인 ‘영안’입니다.

점쟁이나 무속인들은 이런 ‘영안’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강조하는 ‘영안’은 다릅니다.

성경에서 강조하는 영안이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성경을 볼 때 그 안에서 말씀의 보화를 깨닫고 보는 눈입니다.

둘째, 사람을 볼 때 그에게서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바라보는 눈입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바울이나 일부 예언자들에게 하신 것처럼 영적인 세계를 보게도 하십니다.

또한 앞날에 일어날 일들을 하나님께서 대언하게도 하십니다.

이런 경우는 특별한 사명을 가진 소수에게만 잠시 허락된 것들입니다.


성도로서 우리에게 열려야 할 ‘영안’이란 신비주의적이고 무속적인 영안이 아닙니다.

무당들을 보십시오. 저들은 귀신을 봅니다. 저들은 잘 맞지 않는 미래를 예언합니다.

그러나 저들은 성경에서 말씀을 깨닫는 눈은 없습니다.

또한 저들은 사람들 안에 있는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바라보는 눈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성경이 말씀하는 ‘영안’이 열려야 합니다.

우리에게 열려야 할 ‘영안’은 말씀을 보고 깨닫는 눈이요,

사람을 보고 그 안에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바라보는 눈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왜 성경을 읽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걸까요?

21절입니다.

교만하여 저주를 받으며...

성경을 읽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교만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앞에서 겸손하지 않습니다.


성경 앞에서는 누구나 늘,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성경을 백 번 읽었다 할지라도, 성경을 다 암송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앞에서는 늘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눈을 열어 보게 하십니다.


24절입니다.

“주의 증거들은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충고자니이다”

영안이 열려 주의 말씀을 보는 자가 될 때, 주의 말씀들은 나의 즐거움이 됩니다.

또한 나를 가르치고 인도하는 충고자 곧 스승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2. 25-32절까지 네 번째 연의 주제는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입니다.

25절입니다.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라는 구절과,

28절에 기록된 “나의 영혼이 눌림으로 말미암아 녹사오니”라는 구절은 우리의 실체를 드러냅니다.


인간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입니다.

한국 성경은 ‘흙’이라고 번역하지만 실은 ‘먼지’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옳습니다.

인간은 ‘먼지’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는 인간의 근원은 먼지처럼 별 볼일 없고 무가치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태어날 때는 차별이 있습니다.

누구는 신분이 좋은 집, 부유한 집에서 태어납니다.

그러나 다른 누구는 신분이 천한 집, 아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납니다.

그러나 죽을 때는 차별이 없습니다.

이 땅에서 신분이 높은 사람이거나 부유한 사람이라고 해서 죽어서 황금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다 먼지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먼지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인 우리에게 기쁨의 소식이 있습니다.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25절)

28절 하반절에서는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별 볼 일 없고 무가치한 먼지로 돌아갈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나를 다시 살아나게 하고, 나를 세워 주십니다.

무엇을 통해서요? 주의 말씀을 통해서 입니다.

주의 말씀이 없으면 내 영혼은 진토에 붙은 것과 같고, 눌림으로 인해 영혼이 녹는 것 같은 아픔과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말씀이 나를 살아나게 하십니다. 주의 말씀이 나를 세워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마른 뼈로 가득한 골짜기에서 에스겔에게 이렇게 대언하게 하십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겔 37:4)

그러자 주 여호와께서 생기를 들어가게 하셔서 살아나게 하십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겔 37:5)


주의 말씀이 선포될 때, 하나님이 생기를 들어가게 하십니다.

생기는 성령입니다.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 성령이 역사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통해서 성령이 우리를 살리십니다. 말씀을 통해서 성령이 우리를 세우십니다.


나를 살리고, 세우는 것은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내 자녀를 살리고, 세우는 것도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내 가정을 살리고, 세우는 것도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우리 공동체를 살리고, 세우는 것도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이 나라와 열방을 살리고, 세우는 것도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0장 32절에서 말씀합니다.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간구해야 합니다.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25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28절)


3.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첫 번째, 성경적인 영안이 열리기를 기도합시다.

신비주의적이고 무속적인 ‘영안’은 귀신이나 천사를 보는 눈이요, 앞날을 내다보는 눈입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영안’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눈이요, 사람에게서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바라보는 눈입니다.


말씀을 보는 눈, 영혼을 바라보는 눈... 우리에게 이런 영안이 열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렇게 기도합시다.

내 눈을 열어서 성경 속에서 주의 말씀을 보게 하소서

내 눈을 열어서 사람 안에서 영혼을 바라보게 하소서


두 번째, 주와 말씀에게 부탁하는 기도를 합시다.

에스겔이 주의 말씀을 선포할 때 주의 생기가 들어가 마른 뼈들이 되살아난 것처럼,

주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 성령이 역사하여 마른 뼈와 같은 인생들이 다시 살아나고 세워집니다.

우리를 다시 살리시고, 든든하게 세우게 하는 것은 주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합시다.

주의 말씀대로 나(가정, 공동체, 나라...)를 살아나게 하소서

주의 말씀대로 나(가정, 공동체, 나라...)를 세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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