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죄, 그러나 은혜로 바꾸시는 하나님 / 창 20:1-18
- Hoon Park

- 2월 2일
- 5분 분량
최종 수정일: 2월 10일
2026년 1월 29일(목)
1.
20장부터는 다시 아브라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이 헤브론을 떠나 이방 땅인 그랄 지역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그랄 땅은 훗날 블레셋의 주요 거점 지역입니다.
아브라함이 왜 갑자기 헤브론을 떠나 이방 땅인 그랄 지역으로 거처를 옮겼을까요?
이에 대한 답은 뒤에서 다루게 될 것입니다.
그랄에 거하게 된 아브라함은 두려움 때문에 거짓말을 합니다.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랄 왕인 아비멜렉은 사라를 후궁으로 삼으려고 데리고 갔습니다.
아브라함이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이고 거짓말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처음 정착했을 때, 기근이 심해져서 애굽에 내려갔다가 동일한 거짓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로부터 24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연륜도 깊어지고 신앙적으로도 많이 성장한 것 같은 데.
아브라함은 또 다시 동일한 상황에 처하자 동일한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내가 경험하는 실패들, 그 중에 많은 것들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전에 했던 실패를 또 다시 반복하고 되풀이 하는 것이 많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신앙적인 경륜이 쌓여가도 여전히 과거의 다듬어지지 않은 삶의 모습을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내 안에 잘못된 습관들이 시간이 지나도 고쳐지기는커녕, 계속해서 반복됩니다.
이 때문에 나를 힘들게 하고 나를 넘어지게 만듭니다.
어떤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돈'이라는 욕심에 사로 잡혀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다혈질적인 성격'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말'로 상처주고, '말'로 비난하고, '말'로 험담하는 죄를 끊어내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아브라함은 거짓말이라는 똑같은 죄를 24년이 지났어도 반복했습니다.
24년 전에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는,
가나안에 기근이 심하게 들어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아브라함이 내려갔었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거처를 옮길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니 헤브론에 살던 아브라함이 그랄로 거처를 옮긴 것은 분명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갑자기 이방 땅 그랄 지역으로 내려가게 하신 것일까요?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다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거짓말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두려움의 상황에 처하면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이 부분을 다루시기 위해서 이방 땅 그랄로 보내신 것입니다.
2.
3-7절까지는 사라를 데리고 간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사라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이삭을 낳을 여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의 꿈속에 나타나셔서 사라가 아브라함의 아내요. 사라를 건드리면 "네가 죽으리니" (3절)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리고 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 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여기서 주목해 볼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지자"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선지자'라는 단어가 여기서 처음 사용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로 부르신 최초의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선지자로서 주어진 사명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너를 위하여 기도하면 네가 살지만, 네가 돌려보내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일반적으로 선지자란, 하나님을 대신해서 말씀을 대언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선지자는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해주는' 중보 기도자를 의미합니다.
선지자는 말씀만 대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하여 기도해주는' 중보 기도자인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세상의 선지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위해 중보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바르게 대언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게 중보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 선지자는 하나님과 친밀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 아비멜렉에게 아브라함과 사라의 정체를 드러내셨습니다.
그러자, 다음 날 아침 일찍이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부릅니다.
9-10절입니다.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느냐 내가 무슨 죄를 네게 범하였기에 네가 나와 내 나라가 큰 죄에 빠질 뻔하게 하였느냐 네가 합당하지 아니한 일을 내게 행하였도다 하고, 아비멜렉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뜻으로 이렇게 하였느냐"
이방인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심하게 책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믿음의 조상이요, 하나님의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한 거짓말이라는 죄 때문에, 이방인 아비멜렉에게 책망을 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때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에게 혼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방인들을 채찍으로 삼아 하나님의 백성들을 정신 차리게 하시기도 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자주 보게 될 모습이기도 합니다.
아비멜렉의 책망을 받은 아브라함이 답변합니다.
11-13절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이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또 그는 정말로 나의 이복 누이로서 내 아내가 되었음이니라. 하나님이 나를 내 아버지의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 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
아브라함이 자신이 거짓말하게 된 이유를 밝힙니다. 그것은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안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말씀을 따라 고향 친척 본토 아비 집을 떠나 가나안 땅까지 왔습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두려움의 상황에 처하면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 믿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기도도 열심히 하고 하나님을 체험한 일도 많은 데도,
두려움, 걱정, 염려, 근심을 달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두려움, 걱정, 염려, 근심'의 상황 앞에서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늘 두려워합니다. 늘 걱정합니다. 늘 염려합니다. 늘 근심합니다.
두려움, 걱정, 염려, 근심이 습관이 된 채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그랄 땅에 가게 하셔서 이 부분을 다루신 것입니다.
3.
아브라함의 변명을 들은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호의를 베풉니다.
14-16절까지입니다.
"아비멜렉이 양과 소와 종들을 이끌어 아브라함에게 주고 그의 아내 사라도 그에게 돌려보내고,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내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네가 보기에 좋은 대로 거주하라 하고, 사라에게 이르되 내가 은 천 개를 네 오라비에게 주어서 그것을 너와 함께한 여러 사람 앞에서 네 수치를 가리게 하였노니 네 일이 다 해결되었느니라"
자칫 아브라함 때문에 아비멜렉과 그의 온 가족이 큰 화를 당할 뻔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아브라함을 위해서 호의를 베푸는 것입니다.
두려움 때문에 거짓말을 한 아브라함에게 아비멜렉이 이렇게 호의를 베푸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결코 아브라함 때문이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와 함께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우리가 은혜 받을만해서 은혜 받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은혜 받을 만하기 때문에 은혜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도 은혜를 받고 사람에게도 은혜를 받는 것은,
우리가 은혜 받을 만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셔서.
하나님께도 은혜를 받고 사람에게도 은혜를 받는 자가 되길 기도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두려움 앞에서 쉽게 거짓말을 하는 자입니다.
반면, 아비멜렉은 그런 아브라함을 하나님 때문에 용서하고 오히려 많은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아브라함 보다 아비멜렉이 더 훌륭해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은 아비멜렉이 아니라,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단지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이나 세상에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믿음의 사람은 인격적으로 훌륭하지 않아도 되고, 세상의 법을 어기며 살아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은 믿음의 사람답게 오히려 더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세상의 법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그랄 땅까지 보내셔서 이 부분을 다루고 계신 것입니다.
마지막 17절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셨으니"
아브라함은 중보 기도하는 선지자로서의 주어진 소명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아비멜렉의 집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닫혀 있던 아비멜렉의 집의 태의 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을 사용하셔서 아비멜렉의 집에 복을 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두려움이 많은 자입니다. 두려움 앞에서 쉽게 거짓말하는 습관을 가진 자였습니다.
그의 거짓말 때문에 자칫 아비멜렉의 집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뻔 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아비멜렉으로부터 은혜를 받게 하셨고,
또한 아브라함의 기도를 통하여 아비멜렉의 집이 복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은혜와 복의 선순환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4.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기도합시다.
'주님, 내 삶에 습관적으로 범하는 거짓말을 반복하지 않게 하소서. 진실만을 말하게 하소서.'
'주님, 내 삶에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은혜와 복의 선순환이 이뤄지게 하소서.'
'주님, 아브라함처럼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중보자로 살게 하소서. 나의 기도가 다른 사람에게 복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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