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 요 2:1-12
- Hoon Park

- 2월 9일
- 5분 분량
2026년 2월 4일(수)
1.
요한복음에는 모두 7개의 표적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일 먼저 나오는 이야기가 가나의 혼인잔치 이야기입니다.
1-2절입니다.
"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예수님은 공생애 첫째 날과 둘째 날에는 제자들을 부르시고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셋째 날 세우신 제자들을 데리고 가신 곳이 '가나의 혼인 잔치'였습니다.
예수님이 세우신 제자들과 처음 가신 곳이 '혼인 잔치'였다는 것은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혼인잔치의 비유'(마 22:1-14)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처음 가신 곳이 '혼인잔치'였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신랑이시오, 우리는 예수님의 신부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나의 혼인잔치에 가셨을 때의 상황입니다.
3절 a,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성경에서 '포도주'가 의미하는 것은 '기쁨'입니다.
시편 104편 15절에는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
사사기 9장 13절에서도. "...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내 포도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포도주'는 사람의 육체에 기쁨을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인생에는 우리를 기쁘게 하는 '삶의 포도주들'이 많이 있습니다.
미모나 건강도 기쁨을 줍니다. 돈이나 재물도 기쁨을 줍니다. 운동이나 여행도 기쁨을 줍니다.
좋은 옷과 좋은 가방도 기쁨을 줍니다.
좋은 차와 좋은 집도 기쁨을 줍니다. 맛있는 음식도 기쁨을 줍니다. 맛있는 빵과 커피도 기쁨을
줍니다. 자식과 손주도 기쁨을 줍니다.친구도 기쁨을 줍니다.
이처럼, 이 땅에는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삶의 '포도주'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가나의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기쁨을 주던 것들이 사라졌다는 뜻이요, 더 이상 기쁨이 없어졌다는 뜻입니다.
누구나 나에게 기쁨을 주던 그 포도주가 사라질 때가 옵니다.
나에게 기쁨을 주던 그 포도주가 더 이상 내게 기쁨이 되지 않을 때가 옵니다.
2.
미모도, 건강도, 돈도, 재물도, 운동도, 여행도, 좋은 옷이나 좋은 가방도, 좋은 차와 좋은 집도.
맛있는 음식도, 맛있 는 빵과 커피도, 자식도, 손주도, 친구도 사라질 때가 옵니다.
그래서 전도서 1장 2절의 말씀입니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이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나에게 기쁨이 되던 것들이 사라지거나.
나에게 기쁨이 되던 것들이 더 이상 기쁨이 되지 않을 때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그때 이 세상에 나에게 기쁨을 주던 '삶의 포도주들'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가나의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우리 인생에도 '포도주가 떨어질 날이 온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혼인잔치에 참석했을 때, 때마침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께 말합니다.
3절 b. "...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가나의 혼인잔치 집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 아닙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그 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알고는 예수님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마리아의 모습은 중보 기도자를 떠오르게 합니다.
중보 기도자는 나의 문제를 예수님께 간구하는 자가 아닙니다.
중보 기도자는 다른 사람의 문제를 위해서. 다른 사람의 아픔과 고통을 위해서. 삶에 포도주가 떨어진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께 간구하는 자입니다.
내 주변에 삶의 포도주가 떨어진 자들이 있습니다.
인생의 기쁨도 없고 즐거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들이 우리 주변에 많습니다.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도 기쁨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인생의 포도주가 떨어진 줄 모르고 살아가는 자들도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예수님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씀합니다.
4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에게 "여자여"라고 부르셨습니다.
당시 '여자여 Dear woman'라는 이 칭호는 존경과 사랑을 담아 부르는 존칭어였습니다.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에게 지금 존경과 사랑을 담아서 "여자여 Dear woman"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이 칭호는 요한복음에만 두 번 나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도 그 아래 있던 어머니 마리아에게 "여자여 Dear woman"라고 부르셨습니다(요 19:26).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예수님이 어머니 마리아를 '여자여 Dear woman'라고 불렀다는 사실입니다.
가톨릭에서는 마리아를 교리적으로 '신'의 반열에 올려놓고 섬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두 번이나 어머니 마리아를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라는 의미로 '여자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마리아는 결코 우리가 섬겨야 할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섬겨야 할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인간에 불과 합니다.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씀합니다.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거절이 아닙니다.
아직 때가 안 되었기에 기다려야 된다는 뜻입니다.
모든 일에는 주님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때'를 결정하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때를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계획은 세울 수 있지만, 그 때를 결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 '때'를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 있어서 '믿음'과 함께 중요한 것이 '인내'입니다.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과 함께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 신앙생활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곧 인내요.
믿음이 좋다는 것은 인내를 잘 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를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예수님에게 더 이상 다른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하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5절.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마리아는 때가 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것을 알았던 겁니다.
그리고 그때 순종하면 된다는 것도 안 겁니다.
이것이 중보 기도자의 자세입니다.
중보 기도자는 기도하고, 믿음으로 그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자입니다.
그 때를 기다리면서 '주님이 말씀하시면 무엇이든지 그대로 하겠습니다'라는 순종의 마음을 갖는 자입니다.
3.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6절.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당시에는 '돌 항아리'가 집집마다 입구에 하나씩 놓여 있었습니다.
이는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집에 들어올 때면 누구나 그곳에서 손을 깨끗하게 씻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일반 집과는 달리 혼인 잔치 집이라 여섯 개의 돌 항아리가 놓여 있었던 겁니다.
때가 되자 예수님이 하인들에게 명령을 내리시고, 하인들은 예수님의 명령대로 행했습니다.
7-8절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이 일어난 겁니다.
예수님이 이 기적을 일으키실 때, 물이 포도주로 되라고 명령을 내리신 것이 아닙니다.
하인들에게 물이 포도주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도 아닙니다.
단지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것과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는 말씀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인들은 그 말씀에 순종 했습니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순종할 때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말씀을 이루실 때는 순종하는 자를 통해서 이루십니다.
예수님이 하인들에게 하신 명령은 대단한 명령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나 쉽게 할 수 없는 어려운 명령도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평범하고 단순한 명령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결코 어려운 명령을 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어떤 크고 힘든 명령을 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할 수 있는 평범한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이해할 수 없어도 주님의 말씀이기에 순종하려고 할 때 하나님은 내 삶에 기적을 행하십니다.
교회 와서 말씀을 듣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말씀을 들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들은 대로 순종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9절입니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물이 포도주가 된 기적을 '물 떠온 하인들만 알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포도주를 맛 본 사람들은 물이 포도주가 되었다는 기적을 알지 못합니다.
연회장도, 집주인도, 혼인잔치에 참석한 자들도 포도주를 마시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기적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그런데 '물 떠온 하인들'만 그것이 하나님의 기적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기적이 우리 삶에 일어나도,
그것이 하나님의 기적이라는 것을 모두가 아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에 많은 기적을 행하십니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이 베푸신 기적을 누리며 살아가도, 그것이 하나님의 기적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물 떠온 하인들'처럼, 말씀에 순종하는 자만이 그것이 하나님의 기적이라는 것을 압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되십시오.
기적은 지극히 작은 순종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기도하라'고 하면 기도하면 됩니다. '감사하라'고 하면 감사하면 됩니다. '기뻐하라'고 하면 기뻐하면 됩니다.
작은 순종이 쌓이고 쌓이면 큰 순종이 됩니다.
또한, 마찬가지로 작은 기적이 쌓이고 쌓이면 큰 기적이 됩니다.
순종은 내가 하는 것이지만, 기적은 하나님이 능력으로 행하시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물이 포도주가 된 이 기적 사건을 첫 번째 표적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물이 포도주가 된 이 사건을 통해서 많은 이들이 혼인잔치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우리 인생에 참 기쁨을 주시는 포도주가 되셔서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혼인잔치의 기쁨을 누리게 하실 것을 보여주는 예표입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기쁨을 주는 삶의 포도주들도 필요하지만, 가장 큰 기쁨을 주는 삶의 포도주는 곧 예수님 한 분입니다.
4.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기도합시다.
'주님. 내 인생의 빈 항아리에 믿음과 순종을 채우게 하소서.'
'주님. 내 인생에 늘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게 하소서.'
'주님, 내 인생에 오직 예수님만 참 기쁨이 되게 하소서.'
또한, 인생의 포도주가 떨어진 자들을 위해서 예수님께 “주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습니다"라고 중보기도합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