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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드개와 하만 /에 2:19-3:6

2025년 5월 14일(수)

1.

에스더서의 배경은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 왕’ 시대입니다.

히브리어 표기로는 ‘아하수에로’이지만, 영어 표기로는 ‘크세르크세스 Xerxes’입니다.

에스더서는 아하수에로 왕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에스라서는 아하수에로의 아들인 ‘아닥사스다’ 왕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에스더서는 성경 중에서 종교적 언어가 사용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예컨대, ‘여호와’ 또는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습니다.

또한, ‘율법이나 예배, 기도’ 등의 용어도 사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에스더서는 정경 논란이 많았습니다.


에스더서는 비록 종교적 언어는 사용되지 않았지만,

‘금식, 옷을 찢는 행위, 진멸전쟁 등’과 같은 종교적 상징적 행동 등을 통해서,

유다인들(에스더와 모르드개 포함)이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구원을 받게 된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스더서는 하나님께서 에스더와 모르드개를 통해서 유다 민족을 구원하시는 이야기입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유대인들은 ‘부림절 Purim’이라는 명절을 오늘날에도 지키고 있습니다.


에스더서는 정경논란이 많았지만, AD 397년 ‘카르타고 회의’에서 정경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이유는,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과 특별한 은혜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에스더서에서 두 가지를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는, 언제나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도우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 삶의 어려움과 위기, 고난과 역경 속에서 우리를 구해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과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이 두 가지를 에스더서를 통해서 발견해 봅시다.


2.

‘모르드개’는 베냐민 지파 사람입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의 여고냐 왕(유다 19대 왕인 여호야긴 왕)과 함께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올 때,

함께 사로잡혀 왔습니다(2장 5-6절).


‘에스더’는 본명이 ‘하닷사’입니다. 모르드개의 삼촌의 딸입니다. 모르드개와는 사촌지간인 셈입니다.

그런데 에스더는 부모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바벨론 포로로 사로잡혀 오는 과정에서 부모를 잃었을 겁니다.

모르드개는 너무나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에스더를 자신의 수양딸로 삼았습니다(2:7).


아하수에로 왕이 왕후 ‘와스디’를 폐위 시켰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왕후로 에스더가 간택이 됩니다.

모르드개는 페르시아 궁전에서 일을 맡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모르드개는 왕 곁을 지키는 두 내시 빅단과 데레스가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민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모르드개는 왕후 에스더에게 이 사실을 알립니다. 그래서 왕을 암살하려는 시도를 막게 됩니다.

이 내용이 21-24절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본문의 내용에서 두 가지를 주목해 봅시다.

첫째,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모르드개가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궁궐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모르드개가 왕 곁을 지키는 두 내시가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민다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모르드개는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요?


이것은 ‘우연’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르드개로 하여금 알게 하신 겁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모르드개와 함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이 모르는 일들을 내가 알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남이 모르는 일들을 내가 알게 될 때,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야 합니다.


둘째,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서로를 세워주려고 합니다.

22절 상반절을 보면,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알게 된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가서 알립니다.

그 이유는 왕후가 된 에스더로 하여금 아하수에로 왕의 신임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모르드개는 얼마든지 자신이 큰 공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에스더를 세워주려고, 자신이 알게 된 그 사실을 넘겨준 겁니다.


그런데 22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왕에게 아뢴지라

에스더는 왕 앞에서 이 일이 모르드개의 공로가 되게 했습니다.


결국 23절 하반절을 보면, 이 일과 관련해서 에스더뿐만 아니라 모르드개의 이름까지 ‘궁중일기’에 기록되게 됩니다.

이는 머지않아 유대민족을 말살하려고 음모를 꾸민 하만의 계략으로부터 벗어나 왕의 신임을 얻게 되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서로를 세워줍니다. 결국, 둘 다 궁중일기에 기록됩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법칙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법칙은 자기를 드러내고 자기를 높이려는 것이 아니라, 남을 드러내고 남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 나라에서는 큰 자요, 높아지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서로를 세워주고 서로를 높여주는 곳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곳은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불완전한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를 먼저 깨닫고 경험한 자가 하나님 나라의 법칙을 따라 살아갑니다.


먼저 은혜 받고, 먼저 깨달은 자가 남을 세워주고 높여주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때 나는 이렇게 하는 데, 왜 다른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는가라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먼저 깨닫는 자가 더 힘이 드는 법입니다.

십자가를 먼저 깨닫는 자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 기억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3.

3장 1-6절까지의 내용은 모르드개에게 화가 난 하만이 음모를 꾸미게 된 이야기입니다.

하만은 아하수에로 왕의 총애를 받는 신하였습니다.

1절 하반절을 보면 아하수에로 왕이 하만을 “모든 대신 위에 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부통령’이요, 한국에서는 ‘국무총리’에 해당되는 직위에 있던 자가 ‘하만’입니다.

하만이 궁궐에 들어올 때면, 모든 신하들이 하만에게 무릎을 꿇어 절했습니다.

그 이유는 3절 하반절을 보면, “왕의 명령”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르드개’는 하만에게 무릎을 꿇어 절하지 않았습니다.

주변에 있던 왕의 신하들이 모르드개에게 이것은 왕의 명령이니 하만에게 무릎을 꿇어 절할 것을 권했습니다.

4절입니다. “날마다 권하되 모르드개가 듣지 아니하고 자기는 유다인임을 알렸더니...


왕의 신하들이 날마다 권하는 데도 모르드개가 듣지 않은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자기는 유다인임을 알렸다’는 것은, 자신은 여호와 신앙을 따르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자 4절 하반절입니다.

... 그들이 모르드개의 일이 어찌 되나 보고자 하여 하만에게 전하였더라

왕의 신하들이 자기들의 권면을 듣지 않는 모르드개가 얼마나 밉고 싫었겠습니까?

그래서 하만에게 모르드개를 일러바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하만은 크게 분노합니다.

이 일로 인해 하만은 모르드개와 그의 민족인 유다인들을 모두 멸하려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 내용이 5-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도 우리가 두 가지를 주목해 봅시다.

첫째는, 모르드개는 왕의 명령보다 여호와 신앙을 따르는 자였다는 점입니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에서 왕의 명령을 어긴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그런데도 모르드개는 왕의 명령보다 여호와의 신앙을 지켰습니다.


이점에서 모르드개는 다니엘과 비슷합니다.

다니엘도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여호와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하루 세 번 정해진 시간에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기도했었습니다.

모르드개와 다니엘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들의 ‘직업과 생명’까지 내건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여호와 신앙’이 자신들의 우선순위에 있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다니고 봉사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집이나 일터에서 복음 방송을 듣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우선순위가 되는 사람은 적습니다.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고, 말씀을 따르려는 자들은 너무나 적습니다.

왕의 명령보다 여호와의 신앙을 지키고 따랐던 모르드개의 모습은, 오늘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게 합니다.


둘째는, 신앙을 지키며 살 때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은 내 가까이 있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모르드개의 신앙을 못마땅하게 여긴 사람들은 주변에 함께 일하는 왕의 신하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권면했습니다. 그런데도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자, 하만에게 일러바친 겁니다.


신앙을 지키고, 말씀을 따르려고 할 때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내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려고 하고, 기도하며 말씀을 따라 살려고 할 때, 영적 시험과 영적 공격은 멀리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옵니다.


이때 기억하십시오.

나를 쓰러뜨리고, 넘어뜨리려는 자들보다 나를 붙들어 주시는 보이지 않는 여호와의 손이 더 큰 능력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을 보며 실족하지 마십시오.

보이지 않는 여호와의 손이 언제나 나를 붙들어 주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4.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첫 번째, 먼저 남을 세워주고 높여주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서로를 세워주고 높여주려고 했습니다.

결국 이 때문에 둘은 서로 높임을 받는 자들이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법칙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 나라가 임한 마음은 아닙니다.

적어도 내 마음은 하나님 나라가 임한 마음이라면, 나부터라도 먼저 남을 세워주고 높여주는 자가 됩시다.

내가 먼저 은혜 받은 자요, 먼저 하나님 나라를 깨달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왜 나만 그래야 하냐고 생각하지 맙시다.

겸손히 나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흘러가길 기도합시다.


두 번째, 여호와 신앙을 지키며 말씀을 따르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왕의 명령보다 여호와 신앙을 따르며 지켰던 모르드개와 다니엘과 같은 신앙의 선배들이 많습니다.

비록 내 주변에는 이런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나 한 사람이라도 이런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세 번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나를 붙들어 주시길 기도합시다.

왕의 신하들이 처음에는 모르드개를 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날마다 권면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모르드개를 미워하고 싫어합니다. 그래서 하만에게 일러 바쳐서 위험에 빠지게 합니다.

내 곁에서 나를 위해서 권면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나를 미워하고 싫어해서 결국 나를 실족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 사람을 보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사람이 나를 붙들어주거나, 나를 이끌어 주거나, 나를 도와주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나를 붙들어 주시고, 나를 이끌어 주시고, 나를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언제나 나를 붙들어주시길 기도합시다. 또한 오늘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나를 붙들어 주시길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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