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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드개가 에스더의 결심을 이끌어내다 /에 4:1-17

2025년 5월 16일(금)

1.

유대 민족을 진멸하라는 왕의 포고문이 선포되자, 모르드개를 비롯한 유다인들은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이미 왕의 이름으로 포고문이 선포되었기에, 왕이 아니고는 어느 누구도 그것을 철회할 수 없었습니다. 모르드개와 유다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시간이 되면 꼼짝없이 왕의 포고문대로 진멸을 당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르드개는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통곡” 했습니다(1절). 유다인들도 “크게 애통하며 금식하며 울며 부르짖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에 누웠”습니다(3절).

 

‘자기 옷을 찢는 행위,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는 행위, 금식과 대성통곡하는 행위’... 이런 행위들은 두 가지 경우에 행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죄를 돌이킬 때 행하는 ‘회개’의 행위입니다.

또 하나는, 극심한 고통과 슬픔을 당했을 때 하나님께 긍휼과 은혜를 구하는 ‘간구’의 행위입니다.

 

예컨대, 앗수르 왕 산헤립이 십팔만 오천 명의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히스기야 왕은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 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왕하 19:1-19). 이에 하나님께서 앗수르 진영을 치셔서 하룻밤사이에 십팔만 오천 명의 앗수르 군사들이 모두 송장이 되었습니다(왕하 19:34).

 

요나가 니느웨 성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선포했을 때, 니느웨 백성들이 금식과 베옷을 입고 부르짖었습니다

(욘 3:5-6). 이에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시고 니느웨 성에 대한 진노를 멈추셨습니다(욘 3:9).

 

바벨론 포로로 끌려온 다니엘이 예레미야서를 통해서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 만에 그치게 될 것을 알게 되자,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하나님께 조상들에 대한 회개와 말씀대로 다시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해 간구”합니다(단 9:1-19). 이에 하나님께서 가브리엘 천사를 보내셔서 응답해 주십니다.

 

모르드개와 유다인들은 이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르드개와 유다인들은 민족이 진멸당할 위기 앞에서,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금 식하며 하나님께 울며 부르짖은 것입니다.

 

위기와 어려움이 닥칠 때, 너무나 큰 문제가 다가올 때,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십시오.

내게 닥친 일들이 너무나 크면 클수록, 내 마음을 찢고, 십자가와 말씀을 의지하고, 금식하며 기도하십시오. 그럴 때,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역사하기 시작하십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너무나 큰 어려움과 고통의 시간들이 나를 옥죄며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내 마음의 옷을 찢고, 십자가를 붙들고, 말씀을 덮어쓰고, 금식하며 하나님께 통곡하며 부르짖으십시오.

 

그런데, 사람들이 기도해야 할 때 기도는 하지 않고, 말만 합니다. 그 말들을 들어보십시오.

‘희망이 없는 말, 부정적인 말, 마음을 어둡게 하고 갈라놓게 하는 말들’뿐입니다. 이런 말들을 그치십시오. 이런 말들을 하는 자들과 잠시 떨어지십시오.

말만 무성한 자의 이야기에 귀를 닫으십시오.

그리고 겸손히 십자가 앞에 나아가 내 마음을 찢고, 금식하며 울며 부르짖으십시오.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입니다. 지금도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의 이런 간절한 회개와 간구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2.

유다인들에 대한 진멸계획을 가장 늦게 알게 된 사람은 궁전 안에 있던 왕후 ‘에스더’였습니다.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유다인들을 진멸하라는 왕의 포고문이 선포되었다는 것과 이 일이 하만의 계략이라는 것을 알립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부탁합니다.

8절 하, “... 왕에게 나아가서 그 앞에서 자기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

 

이를 전해들은 에스더가 처음에는 거절합니다.

11절, “왕의 신하들과 왕의 각 지방 백성이 다 알거니와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 규를 내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이것이 당시 왕의 법도였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왕의 부름을 받은 자만 왕 앞에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임을 당했습니다. 단 하나의 예외는, 부름을 받지 않고 왕 앞에 나아간 자에게 왕이 금 규를 내밀 때만 살 수 있었습니다. 에스더는 이런 왕의 법도를 말하며, 자칫 자신이 죽을 수도 있기에 거절한 것입니다.

 

이런 에스더의 말은 맞는 말입니다. 지극히 법과 원칙을 따르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말입니다. 그런데 에스더의 말에는 아주 중요한 것이 빠져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없습니다.

왕의 법과 원칙을 따르는 이성과 합리성은 있지만, 왕의 법과 원칙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없 습니다.

 

현실적이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계산을 잘하는 자들의 치명적인 약점이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계산하지 못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역사하신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 안에 있는 것은 ‘두려움’입니다. 나는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생각’입니다.

자신의 걱정과 두려움, 불안함을 말로 잘 포장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도와주실 것이라는 신뢰는 없습니다.


에스더의 말은 맞는 말이지만, 믿음은 없습니다.

 

그러자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아주 단호하게 이같이 말합니다.

13-14절, “...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 겠느냐...”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놓임과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그 일을 피하거나 거절하면, 하나님의 손은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갑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은 열방에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그 사명을 감당하지 않아서, 결국 하나님의 구원의 촛대는 이방인들에게로 옮겨갔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내게 주신 구원의 사명을 믿음으로 감당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촛대는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 갑니다.

‘놓임과 구원’은 사람의 능력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두려움을 숨긴 합리적인 말이 아니라 믿음으로 행하라’고 아주 강력한 어조로 말하는 것입 니다. 그러자 에스더가 결정을 합니다.

 

16절,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 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말은 사람에게 전염됩니다.

부정적인 말, 수군대고 비난하는 말, 믿음 없는 말, 소망 없는 말을 드는 사람은,

똑같이 부정적인 말을 하고, 수군댐과 비난의 말을 하고, 믿음 없는 말을 하고, 소망 없는 말을 합니다.

 

반대로, 믿음의 말을 들으면 믿음의 말을 합니다. 소망의 말을 들으면 소망의 말을 합니다. 예레미야서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고 믿음의 말을 합니다. 그러자 에스더는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믿음의 말을 합니다. 부정적이고 두려움의 말을 하던 에스더가 믿음의 말을 하게 된 겁니다.

이처럼 믿음의 말은 믿음의 말을 낳습니다.


입만 열면 부정적이고 남을 험담하고 남의 허물을 퍼뜨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기도를 열심히 하고, 성경을 잘 알고, 체험이 많고, 성령의 은사가 많다 할지라도, 거리를 두십시오.

반면, 믿음의 말을 하는 사람, 소망의 말을 하는 사람, 미래와 희망의 말을 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십시오. 사람의 말은 전염됩니다.

 

또한 믿음의 말을 하는 자가 되십시오.

생각 없이, 또는 생각나는 대로 믿음 없는 말을 하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나의 믿음 없는 말 한 마디가, 듣는 다른 사람에게 믿음 없는 말을 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3.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첫 번째, 말이 무성한 자가 아닌 기도가 무성한 자가 되십시오.

말이 무성한 자는 기도가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가 무성한 자는 말이 적어집니다. 말이 무성한 자는 말뿐입니다.

그러나 기도가 무성한 자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삶에 감당하기 어렵고 힘든 일이 다가올 때면,

모르드개와 유다인들처럼 마음의 옷을 찢고, 십자가와 말씀을 붙들고, 금식하며 기도하십시오. 말로는 어느 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움직이게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의 말이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두 번째, 믿음의 말을 하는 자가 되십시오.

에스더는 처음에는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말로 모르드개의 부탁을 거절했습니다.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말은 이치에 맞는 말입니다. 이런 말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사람의 합리성과 상식에 갇혀서 늘 변명과 자기 합리화만 하며 삽니다.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믿음의 말을 하십시오.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하나님이 그 선포된 말씀을 능력으로 이루어가십니다.

 

재보십시오. 계산하십시오. 이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계산 속에 하나님도 계산하십시오.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역사도 함께 계산하십시오. 그것이 믿음입니다.


세 번째, 믿음의 말을 전염시키는 자가 되십시오.

사람의 말은 전염됩니다.

사람이 어떤 말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모르드개의 믿음의 말이, 처음에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말을 하던 에스더로 하여금 믿음의 말과 믿음의 결정을 하 게 만들었습니다.

 

내 자녀들에게 믿음의 말을 하십시오. 내 가족에게 믿음과 소망의 말을 하십시오. 내 지체들에게 믿음과 소망과 평안의 말을 하십시오.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말, 남의 허물을 들춰내거나 퍼뜨리는 말을 멈추십시오. 그런 말을 하고 싶다면, 하나님 앞에 기도로 하십시오.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는 그런 말을 멈추십시오. 믿음의 말, 소망의 말, 평안의 말을 전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의 말씀이요, 소망의 말씀이요, 평안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고, 행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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