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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사랑하는 자가 되십시오 /아 3:1-11

2025년 4월 25일(목)

1.

아가서의 저자가 ‘솔로몬’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아가서 1장 1절에서 “솔로몬의 아가라”고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가서의 표면적인 내용은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 간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입니다.

반면, 이면적인 내용은 신랑 되신 예수님과 신부 삼은 교회(우리 자신) 와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입니다.


3장은 <신부의 노래>입니다.

1-5절까지는 결혼식을 앞둔 신부가 꿈을 꾸는 내용이요,

6-11절까지는 결혼식이 이뤄지는 내용입니다.


1절입니다.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찾았노라 찾아도 찾아내지 못하였노라

결혼식을 하루 앞둔 상황에서, 신부가 ‘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꿈 속에서 신부가 신랑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불러도 신랑은 응답이 없고, 찾아도 보이지 않는 겁니다.


2절입니다.

이에 내가 일어나서 성 안을 돌아다니며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거리에서나 큰 길에서 찾으리라 하고 찾으나 만나지 못하였노라

고대에 여성들이 밤에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은 법적으로나 관례적으로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신부는 고대의 법과 관례를 무시하고, 또한 위험을 무릎쓰고 신랑을 찾아 밤거리를 헤맵니다.


3절입니다.

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을 만나서 묻기를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너희가 보았느냐 하고

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을 만나면 숨거나 피해야 합니다.

지금 여인이 사회법과 관례를 어기고 밤거리를 거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부는 숨거나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묻습니다.

내 사랑하는 자를 너희가 보았느냐


순찰하는 자들은 이 여인에 대해서 ‘정신 나간 여자’로 여겼을지 모릅니다.

사실 이 여인은 정신이 나갔습니다(?).

결혼을 앞둔 신랑이 사라진 상황인데 제 정신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일 것입니다.

사라진 신랑을 찾아 헤매는 여인의 모습은 너무나 간절합니다.

신랑을 찾아서 어두운 밤거리를 정신없이 헤매고 다니는 신부의 모습은 너무나 애절합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신랑을 찾았습니다.


4절입니다.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그를 붙잡고 내 어머니 집으로, 나를 잉태한 이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

한 밤 중, 성 안 어딘가에서 신부는 드디어 신랑을 만났습니다.

신랑을 만나자 마자 신부는 “그를 붙잡”습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이 비유로 들려주신 <잃은 양의 비유>를 생각나게 합니다.

목자는 잃은 양을 찾기 위해 들판을 찾아다닙니다.

그러다가 겨우 잃은 양을 발견한 겁니다. 목자는 양에게 달려가 꼭 끌어안았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지 양을 어깨에 메고 돌아와서 이웃을 불러 잔치를 벌입니다(누가 15:5-6).


지금 한 밤중에 잃어버린 신랑을 찾은 신부의 마음도 그러했습니다.

그를 붙잡고”라는 표현에서, 신랑을 찾은 신부의 기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신부는 찾은 신랑을 자기 어머니의 집으로 데리고 갈 때까지,

혹시라도 또 잃어버릴까봐 붙잡은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여기까지 꿈을 꾸다가 신부가 잠에서 깨어납니다.

5절입니다.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을 두고 너희에게 부탁한다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

신부는 꿈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지만, 신랑은 다른 방에서 깊이 잠들고 있었습니다.

집 안에는 내일 있을 결혼식 준비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이에 신부는 잠이 든 신랑이 깨어나지 않도록 주변 사람들에게 주의를 줍니다.

너희에게 부탁한다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


결혼식을 하루 앞둔 신부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꿈을 통해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2.

1-5절까지의 말씀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교훈은, 1절과 2절에서 깨닫게 됩니다.

1절을 보면, 신부가 신랑을 어디에서 찾고 있습니까? ‘침상에서’입니다.

그런데 신랑을 불러도 응답이 없고 신랑을 찾지 못한 겁니다. 신랑이 보이지 않는 겁니다.

그러자 신부가 어떻게 합니까?

2절에 “이에 내가 일어나서...” 찾기 시작합니다.


혹, 지금 ‘침상에 누워서’ 새벽기도를 드리는 분이 있습니까?

침상에 누워서는 신랑 되신 예수님을 찾을 수 없습니다.

침상에서 일어나십시오. 침대에서 내려오십시오. 겸손히 기도의 무릎을 꿇으십시오.


잠언서 8장 17절에서 말씀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여기서 ‘간절히’로 번역한 히브리어는 ‘새벽에’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이 구절은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를 새벽에 찾는 자들이요, 그들이 나의 사랑을 입고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는 뜻입니다.


신부가 침상에서 일어나 신랑을 찾아 간절히 찾아다니듯이,

우리도 새벽에 침상에서 일어나 신랑되신 예수님을 간절히 찾는 자가 됩시다.

주님은 찾는 자를 만나 주십니다. 구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두드리는 자에게 열어 주십니다.


둘째 교훈은, 네 번이나 반복하고 있는 구절을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네 번이나 반복하고 있는 구절은 무엇일까요?

신부가 신랑을 일컬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라고 말하는 구절입니다.

1-4절까지 각 구절마다 한 번씩 모두 네 번 반복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하는 사랑이 있고, 머리로 하는 사랑이 있습니다.

마음으로 하는 사랑은 몸이 움직입니다. 그러나 머리로 하는 사랑은 입만 움직입니다.

마음으로 하는 사랑은 침상에서 일어나 찾아 헤맵니다.

그러나 머리로 하는 사랑은 침상에 누워 입으로만 찾습니다.


참 사랑은 어떤 사랑이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다 압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은 마음으로 하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셨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우리를 살리시려고 죽은 자들 가운데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몸으로 움직이는 사랑이셨습니다.


오늘 신랑을 찾아 헤매는 신부 역시 마음으로 하는 사랑이요, 몸으로 움직이는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신랑이신 예수님을 향한 신부인 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요?

마음으로 하는 사랑입니까? 머리로 하는 사랑입니까?

몸으로 움직이는 사랑입니까? 입만 움직이는 사랑입니까?

우리 자신을 스스로 돌아봅시다.


3.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첫 번째, 깨어 있는 그리스도의 신부가 됩시다.

이제 곧 신랑이신 예수님이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오시면 혼인잔치에 참석해서 예수님의 신부가 될 사람들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혼인잔치에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신부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신랑이 오기를 기다리는 지혜로운 처녀들은 등과 기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처녀들은 졸고만 있었습니다. 그런 어느 새벽에 갑자기 신랑이 왔습니다.

이때 혼인잔치에 참석한 자들은 등과 기름을 준비하고 있었던 지혜로운 처녀들뿐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준비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준비할까요? 신랑 되신 예수님이 오시기를 깨어 기도로 준비하는 것입니다.

침상에서 일어나 기도의 무릎을 꿇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목적은 하나입니다.

신랑이신 예수님이 오실 때, 혼인잔치에서 그리스도의 거룩한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신랑이신 예수님이 언제 오실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도둑처럼 우리에게 오실 것입니다.

우리가 깨어 기도로 준비하는 자가 되어 예수님이 오실 때 혼인잔치에서 주님의 거룩한 신부가 됩시다.


두 번째, 신랑이신 예수님을 마음으로 사랑하는 신부가 됩시다.

머리로 하는 사랑은 입으로만 사랑 고백을 합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하는 사랑은 몸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행합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닙니다.

사랑은 다짐과 결단, 그리고 의지와 노력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야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겠다는 다짐과 결단, 의지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믿음이 큰 자는 사랑이 큰 자입니다.

사랑이 큰 자는 행함이 큰 자입니다.

그래서 믿음과 사랑, 행함은 서로 분리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마음으로 사랑하는 신부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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