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사게가 조롱하다 / 사 36:1-22
2026년 8월 26일 (목)
1.
이사야서 36-39장까지는, 유다의 히스기야 왕 때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하는 내용입니다.
오늘 살펴볼 36장의 역사적 배경은,
BC 701년 히스기야가 왕이 된 지 14년 째 되던 해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를 침략했을 때입니다.
1절입니다.
"히스기야왕 십 사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을 쳐서 취하니라"
히스기야가 있는 예루살렘 성을 제외한 다른 유다의 모든 견고한 성들이 앗수르에 의해 정복당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예루살렘 성입니다. 머지않아 예루살렘도 함락될지 모르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이게 된 겁니다.
이때 히스기야와 유다의 지도자들은 닥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 두 가지 전략을 세웁니다.
첫째 전략은 애굽을 의지하여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히스기야는 애굽에 사신을 보냅니다.
그 내용은 우리가 이사야서 31장에서 살펴본 바 있습니다.
둘째 전략은 앗수르 왕 산헤립의 마음을 달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여호와의 성전 문과 기둥에 입힌 금까지 벗겨서 산헤립에게 조공으로 보냅니다.
그 내용은 열왕기하 18장 13-1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히스기야가 이 두 가지 전략은 아주 지혜롭게 잘 대처한 일이었습니다.
한쪽으로는 애굽의 도움을 구하면서,
다른 쪽으로는 앗수르 왕의 비위를 맞춰 예루살렘 공격을 막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히스기야가 이런 국가적인 위기 앞에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 대로, 애굽에 사신을 보내고,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보냈던 겁니다.
자신의 방법으로 위기를 돌파하려 했던 겁니다.
인간적으로는 지혜롭게 잘 대처한 일일지 모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어리석은 대처였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내 생각과 판단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세상의 역사는 우리 손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지혜롭게 일처리를 잘 하느냐가 아닙니다.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하느냐, 내가 얼마나 하나님께 기도의 무릎을 꿇느냐에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이 중요한 것을 간과한 것입니다.
2.
앗수르의 산헤립은 히스기야가 보내준 은과 금을 조공으로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랍사게 장군을 대군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보내 성을 포위하게 합니다(2절).
이에 히스기야는 랍사게와 협상을 하기 위해서 사신 세 사람을 보냅니다.
'왕궁 맡은 자(2인자)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사관 요아'였습니다(3절).
그런데 랍사게는 협상하러 나온 유다의 사신들에게 수치와 모욕을 줍니다.
먼저, 유다의 왕 히스기야를 조롱합니다.
4-5절입니다.
"... 네가 의뢰하니 무엇을 의뢰하느냐...
네가 이제 누구를 의뢰하고 나를 반역하느냐"
당시 히스기야 왕은 애굽의 도움을 받으려고 애굽에 사신을 보냈습니다(사 31:1).
이것을 랍사게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6절에서 이같이 말합니다.
"보라 네가 애굽을 믿는도다 그것은 상한 갈대 지팡이와 같은 것이라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손이 찔리리니..."
이방 장수인 랍사게는 지금 히스기야를 조롱하고 있습니다.
'네가 무엇을 의지하고, 누구를 의지하느냐? 네가 믿는 애굽이 너를 구원해줄 것 같으냐?
애굽은 상한 갈대 지팡이요. 그것을 의지하면 오히려 손이 찔릴 것이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믿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앗수르의 위협이 다가왔을 때, 히스기야는 하나님 보다 애굽을 더 믿고 의지했습니다.
그것을 이방인인 랍사게도 알고 이렇게 조롱한 것입니다.
둘째, 유다의 지도자들까지 조롱합니다.
7절입니다.
"혹시...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노라 하리라마는..."
여기서 "혹시"라는 이 단어는, 히스기야와 유대 지도자들에게 더욱 모욕을 주는 표현이었습니다.
이방인인 랍사게는 알았습니다.
히스기야와 유다 지도자들이 "혹시...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노라"고 말한다고 할지라도.
실제 그들이 의지하는 것은 '애굽과 애굽의 병거와 기병'이라는 것을 알았던 겁니다.
그래서 9절 하반절입니다. "... 어찌 애굽을 믿고 병거와 기병을 얻으려 하느냐"
앞에서는 '우리 여호와를 신뢰하노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뒤에서는 '애굽과 애굽의 군사력을 신뢰'합니다. 이것이 히스기야와 유다 지도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 사실을 이방 장수인 랍사게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혹시"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히스기야와 유다 지도자들에 대한 '신앙의 위선'을 조롱한 것입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말을 합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삶에서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지 않습니다.
믿고 의지하는 것은 애굽과 애굽의 군사력입니다.
여기서 애굽은 세상을 상징합니다. 애굽의 군사력은 세상의 힘과 돈을 상징합니다.
이것이 곧 신앙의 위선입니다.
겉은 신앙이 있는 것처럼 그럴듯하게 포장하지만, 실제 삶을 들여다보면 믿음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신앙의 위선은 삶의 위기 상황 속에서 드러납니다.
삶이 힘들어지고, 어려워질 때, 신앙의 사람은 더욱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려고 몸부림칩니다.
그래서 더욱 예배와 기도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위선자들은 삶이 힘들어지고 어려워질 때, 하나님께 더 간절하게 나아가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만 합니다.
그래서 삶의 위기나 어려움은 누구의 신앙이 참 신앙인지, 위선적 신앙인지를 드러나게 합니다.
히스기야와 유다 지도자들은 위선적인 신앙인들이었습니다.
그것을 안 이방인 랍사게가 그들을 조롱한 것입니다.
셋째, 여호와 하나님마저 조롱합니다.
10절입니다.
"내가 이제 올라와서 이 땅을 멸하는 것이 여호와의 뜻이 없음이겠느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올라가 그 땅을 쳐서 멸하라 하셨느니라"
이제 랍사게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까지 들먹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조롱하고 멸시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위선자와 같은 히스기야 왕과 유다 지도자들 때문에.
결국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이방인에게 조롱과 멸시를 받게 된 것입니다.
이는 이사야 30장에서 이사야 선지자가 경고한 대로입니다.
이사야 30장 5절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고 외쳤습니다.
애굽을 의지하는 행위는 결국 "너희의 수치가 되며.. 너희의 수욕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었습니다.
지금 그 경고한 대로 이방인 랍사게를 통하여 히스기야와 유다의 지도자들이 수치와 수욕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마저 조롱과 모욕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앙의 위선자와 같은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당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
유다의 사신들은 랍사게로부터 너무나 모욕적이고 수치스러운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랍사게에게 한 가지를 요청합니다.
11절. "... 우리가 아람 방언을 아오니 청컨대 그 방언으로 당신의 종들에게 말씀하고 성 위에 있는 백성의 듣는 데서 유다 방언으로 말하지 마소서"
그러나 랍사게는 오히려 더 큰 소리로 유다 방언으로 외칩니다.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모든 백성들이 다 들을 수 있도록 외쳤습니다.
13b-16절까지입니다.
"너희는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을 들으라. 왕의 말씀에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미혹되지 말라 그가 능히 너희를 건지지 못할 것이니라.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여호와를 신뢰하게 하려는 것을 따르지 말라 그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반드시 우리를 건지시리니 이 성이 앗수르 왕의 손에 넘어가지 아니하리라 할지라도,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랍사게는 유다 백성들의 마음을 흔들며,
히스기야가 하는 말을 듣지 말고 항복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그는 유다 백성들에게 '너희가 믿는 여호와는 능히 너희를 구원해줄 능력이 없다'라고 조롱합니다.
18-20절입니다.
"혹시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 할지라도 속지 말라 열국의 신들 중에 자기의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 이 열방의 신들 중에 어떤 신이 자기의 나라를 내 손에서 건져냈기에 여호와가 능히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못하시는 일이 없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오. 모르시는 것이 없는 전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는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사탄과 세상은 우리에게 늘 속삭입니다.
'하나님은 너희를 구원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무능하다. 하나님은 여기에 없다'...
이는 사탄과 세상이 우리의 마음을 흔드는 것뿐 아니라,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랍사게의 모욕과 조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21절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잠잠하여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였으니..."
잠잠히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히스기야 왕이 그렇게 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입니다(21b절).
왜 이런 명령을 내렸을까요? 그것은 내일 이어서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의 사신으로 갔던 '엘리아김과 셉나와 요아'는 랍사게의 말을 듣고 돌아올 때,
"자기의 옷을 찢"었습니다.
이는 그만큼 극심한 수치와 슬픔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불신앙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이 이방인에게 수치와 조롱을 받았구나...'
오늘 이 시대도 믿는 자들이 세상으로부터 수치와 조롱을 당합니다.
때론 믿는 자들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이 모욕을 당하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존귀한 이름이 멸시를 당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런 수치와 조롱을 당하는데도, 그 앞에서 다수는 침묵합니다.
이를 슬퍼하고 아파하는 사람은 겨우 소수입니다.
4.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앞에서 세 가지를 생각해 봅시다.
첫째, 나의 신앙은 참 신앙인가? 아니면, 위선적 신앙인가?
둘째, 나로 인해 존귀하신 하나님의 이름이 사람들에게 수치와 모욕을 당하고 있지는 않은가?
셋째, 나는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당하는 것에 침묵하는 자인가? 아니면, 슬픔과 고통을 느끼는 자인가?
그리고 이렇게 기도합시다.
'주님, 내가 위선적인 신앙인이 아니라, 참 신앙인이 되게 하소서'
'주님, 나의 삶을 통해 존귀하신 하나님의 이름이 높여지게 하소서'
'주님, 주님의 이름이 모욕당하는 것에 침묵하는 자가 아니라, 슬픔과 고통을 느낄 줄 아는 자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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