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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도 복을 주십니다 / 창 24:1-27

2026년 4월 11일(토)


1.

오늘 본문 24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절,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이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140세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나이가 많아 늙었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란에 살던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삶 자체가 복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오해해서는 안 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범사에 복을 받았다고 해서, 그의 삶에 고난과 역경이 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고난과 역경이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문제나 실패 없는 인생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는 고난과 역경, 문제나 실패마저 복의 통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자였습니다.

비록 그가 나이 많아 늙었다 할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은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런 복을 받은 비결은 하나입니다. ‘믿음’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 나이가 많아지고 늙어간다 할지라도,

아브라함처럼 범사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자가 되길 소망합니다.

기력이 쇠해지더라도 믿음만큼은 쇠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단단해지길 소망합니다.


오늘 24장은, 나이 많아 늙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이 있었습니다.

이때 이삭의 나이는 40세였습니다(창 25:20).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이 있었습니다.

자손에 대한 약속과 그 자손들이 가나안을 유업으로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언약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때까지 이삭은 아직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삭의 배우자를 얻기 위해서,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을 부릅니다.

그 종에게 아브라함이 아주 중요한 사명을 맡깁니다.

아들 이삭의 아내가 될 처자를 구해오라는 것입니다.


이삭의 아내가 될 자격 조건으로 아브라함이 내세운 것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3-4절입니다.

내가 너에게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7절에서 한 번 더 이것을 강조합니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이삭의 아내가 될 여인을 가나안에서 구하지 말고, 아브라함의 고향에 있는 친척들 중에서 구해오라는 것입니다.

가나안은 우상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반면, 아브라함의 고향 하란에 사는 아브라함의 친척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우상을 섬기는 자가 아닌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자 가운데 아들 이삭의 아내를 택하여 데려 오라고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결혼의 조건으로 ‘믿음’을 택한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결혼의 조건으로 ‘사랑’을 택합니다.

어떤 이들은 결혼의 조건으로 상대의 ‘재력’이나, 상대의 ‘미래’를 보고 택합니다.

이런 것들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결혼의 조건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2.

아브라함이 임무를 부여 받은 종에게 이같이 말합니다.

7절, “그(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하나님께서 알아서 인도하실 것이니,

너는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말고 순종만 하면 된다는 말입니다.


그 종은 아브라함의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고 그렇게 하겠다는 맹세를 합니다.

이런 행위는 고대 중동 사회에서 맹세할 때 행하던 풍습이었습니다.

성경에서는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고 맹세하는 이야기가 두 번 나옵니다.

오늘 본문과, 창세기 47장에서도 나옵니다.

야곱이 애굽 땅에서 숨을 거두기 전에 아들 요셉을 부릅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자신의 허벅지 아래 손을 넣고서, 야곱이 죽으면 애굽에 장사하지 않고 가나안 땅에 장사할 것을 맹 세하게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맹세를 하고 길을 떠납니다.

10절을 보면, 그가 ‘나홀의 성’에 도착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두 동생이 있었는데, 나홀과 하란입니다(창 11:27).

막내 동생 하란은 이른 나이에 숨을 거둬서,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날 때 하란의 아들 롯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래서 고향 땅에 남은 것은 동생 나홀과 그의 가족들이었습니다.

지금 아브라함의 종이 찾아간 곳은 ‘나홀의 성’입니다.

‘나홀의 성’이란, 아브라함의 동생인 나홀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마을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낙타를 이끌고 나홀의 성 밖 우물곁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그 우물 곁에서 아브라함의 종이 하나님께 기도를 올립니다.

12절입니다.

그가 이르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는’기도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추상적으로 ‘은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기도합니다.

13-14절입니다.

성 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으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 곁에 서 있다가,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말미암아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아브라함의 종이 하나님께 일종의 징표를 구하는 기도를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징표를 구하는 기도를 했던 사람 중에, 우리가 잘 아는 사람은 기드온입니다.

사사기 6장을 보면,

기드온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분별할 수 있는 징표를 구하는 기도를 세 번이나 드렸습니다.


징표를 구하는 기도는 아무나 하는 기도는 아닙니다.

아무나 할 수도 없고, 아무나 하지 못하는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는 오직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만이 드릴 수 있는 기도입니다.

다시 말해, 아브라함의 종은 하나님께 징표를 구하는 기도를 할 정도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 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어떻게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살았을까요?

그것은 주인 아브라함을 통해서일 겁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종은 하나님께 기도할 때마다,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주인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갖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나아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친밀한 관계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 ‘기도의 삶’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3.

아브라함의 종이 기도가 끝나자마자,

물을 길러 나온 여인들 중에 그 종과 타고 온 낙타들에게 물을 마시우게 하는 소녀가 하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그 소녀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봅니다.

21절입니다.

그 사람이 그를 묵묵히 주목하며 여호와께서 과연 평탄한 길을 주신 여부를 알고자 하더니

하나님이 이끄시는 일은 대체로 평탄하고 순조롭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끄시는 일이 아닌 것은 힘들고 막히고 답답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라면,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마음에 분명한 확신과 평안이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에 분명한 확신과 평안이 없는 길을 가고 있다면,

그 길은 하나님이 이끄시는 길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지금 하나님이 이끌어 가고 계신다는 분명한 확신과 평안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그 소녀에게 누구의 딸인지를 물어봅니다(23절).

그 소녀는 “나는 밀가가 나홀에게서 낳은 아들 브두엘의 딸이니이다”라고 대답합니다(24절).

이 소녀는 아브라함의 동생 집안 사람이요, 이름은 리브가입니다.


이를 알게 된 종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26-27절입니다.

이에 그 사람이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고, 이르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하니라

그 주인의 그 종입니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에게서 이같은 위대한 믿음의 종이 나온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 그 종은 이삭의 아내 될 여인 리브가를 데리고 가나안으로 돌아옵니다.

창세기 24장은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이야기로 끝을 맺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25장은, 아브라함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이 믿음의 가정을 이루는 것을 보고, 눈을 감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복을 받은 자였습니다.

특히 나이 많아 늙었어도 범사에 하나님께 복을 받았습니다.

그가 노년에 받은 가장 큰 복은 바로 인복(人福)입니다.

아브라함이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이런 종을 만난 것도, 리브가를 아들 이삭의 아내로 맞이한 것도 인복입니다.

어떤 이는 늙어갈수록 주변에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주변에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이 인복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인복을 주십니다.

인복은 타고 나는 것이 아닙니다. 인복은 내가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인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입니다.

인복을 얻기 위해서는, 내가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바로 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비롯한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설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돕는 사람들을 복으로 붙여 주셨습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복을 받고 싶다면, 먼저 내가 좋은 사람이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좋은 중보자를 만나는 복을 받고 싶다면, 먼저 내가 좋은 중보자가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좋은 믿음의 사람을 만나는 복을 받고 싶다면, 먼저 내가 좋은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이런 인복(人福)이 주어지기를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본문 1절에 기록된,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는 말씀처럼,

저와 여러분도 나이가 많아 늙어갈수록 오히려 하나님께 범사에 복을 받는 복의 사람이 되고,

나이 많아 늙어갈수록 주변에 좋은 믿음의 사람이 있는 인복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4.

오늘은 이같이 기도합시다.

‘주님, 나이가 많아 늙어갈수록 여호와께 범사에 복을 받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나를 돕는 자가 많아지는 인복을 받게 하소서. 또한 내가 누군가에게 돕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하나님을 믿는 자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자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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