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지라도 / 창 37:18-36
2026년 5월 8일(금)
1.
2026년 5월 8일(금) 출애굽이라는 하나님의 위대한 구속사를 이루기 위해서, 디딤돌로 택함 받은 사람이 요셉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아버지 야곱에게는 특별한 사랑을 받았지만, 그로 인해 형들에게는 미움과 시기(증오)를 받게 됩니다.
이때 요셉의 나이는 겨우 17세였습니다.
야곱은 세겜에 있는 형들의 안부를 확인하라며 요셉을 보냅니다.
헤브론에서 세겜까지는 80km, 그리고 도단까지는 22km, 총 약 100km가 넘는 먼 거리입니다.
야곱에게는 많은 종들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종을 보내지 않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요셉을 혼자 보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실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던 것과 같습니다.
아들 예수님을 보내야 하나님의 위대한 구속사를 완성할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야곱을 통해서 종이 아니라 가장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직접 보내게 하신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실 출애굽이라는 구속사를 위해서였습니다.
헤브론에서 도단까지 100km가 넘는 그 먼 거리를, 요셉은 순종하여 걸어갔습니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형들의 환영이 아니라 죽이려는 음모였습니다.
18절,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형들은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20절,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 라...”
미움과 증오가 사람을 얼마나 잔인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요셉은 아버지가 너무나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비록 엄마가 다르다 할지라도 자신들의 동생입니다.
그런데 미움과 증오심에 불탄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는 ‘악한 짐승에게 잡혀 먹힌’ 것으로 하자고 서로 입을 맞춥니다.
그러면서 요셉의 꿈에 대해서 비아냥거립니다. ‘네 놈이 꾼 꿈대로 이뤄지나 한 번 보자. 잘도 이뤄지겠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때 침묵하십니다.
그 이유는 요셉이 애굽의 노예로 팔려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이라는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사를 이루기 위해서 요셉이 디딤돌이 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큰 아들 르우벤이 요셉을 죽이려는 음모에 대해서 제동을 겁니다.
21-22절입니다.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이르되 우리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려 함이었더 라”
큰 아들 르우벤(레아의 아들)은 아버지 야곱을 생각했던 겁니다.
동생들은 르우벤의 말대로 요셉을 죽이지 않고 그가 입고 있는 채색 옷만 벗겨서 산 채로 빈 구덩이에 던져 넣었습 니다.
만일 이때 요셉이 죽게 되면, 출애굽이라는 하나님의 구속사는 틀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르우벤을 사용하신 겁니다.
요셉은 산 채로 구덩이에 던져졌습니다.
이때 요셉은 어떻게 했을까요?
구덩이에 던져진 요셉이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에 대해서 오늘 본문에서는 별다른 기록이 없습니다(24-25절).
그런데 창세기 42장 21절을 보면, 이때 요셉이 형들에게 애걸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요셉은 형들에게 살려달라고 간절하게 애걸했습니다.
그러나 형들은 동생 요셉의 괴로움을 보고도 외면했습니다. 그만큼 요셉에 대한 미움과 증오가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미움과 증오는 형제를 괴로움 속에 몰아갑니다. 형제의 괴로움을 보고도 외면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사랑하기는 어려워도 미워하는 것은 쉽습니다.
용납과 이해하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려도, 마음에 담을 쌓는 것은 빠릅니다.
내 안에 미움과 증오가 아닌, 사랑과 용납의 마음이 자리 잡도록 늘 마음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2.
르우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이스마엘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넷째 아들인 유다가 요셉을 팔아넘기자는 제안을 합니다.
결국 요셉은 은 이십에 팔려 애굽의 노예로 끌려갑니다.
29절을 보면 르우벤이 돌아와서 구덩이 안을 보았을 때, 요셉은 이미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려간 뒤였습니다.
르우벤은 어디 갔다 온 걸까요?
그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르우벤이 없을 때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요셉은 팔아 넘겨집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 있어서는 결코 우연이 없습니다.
만일 르우벤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요셉은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려가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르우벤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자리에 없었던 겁니다.
마침 그때 지나가던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요셉은 팔려서 애굽으로 끌려갑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에는 우연이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다만 그 때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뿐입니다.
당시 요셉은 이해하지 못했을 겁니다.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려가면서 형들에게 살려달라고 울면서 애걸했을 겁니다. 하나님께도 울면서 기도했을 겁니다.
‘왜 형들이 자신을 팔아 넘겼는지, 여기에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겁니다.
다만 형들에게 버림받고, 하나님께도 버림받은 것처럼 느꼈을 겁니다.
그런데, 훗날에 가서야 요셉은 한 가지를 깨닫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창 43: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때로 하나님께서 침묵하고 계시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때로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선하신 뜻을 가지고 일하고 계십니다.
3.
형들은 동생 요셉을 미워하고 증오했습니다. 그래서 은 이십 냥을 받고 팔아넘기는 죄를 범했습니다.
또한 아버지 야곱에게는 요셉이 들짐승에게 잡혀 먹힌 것처럼 서로 입을 맞추어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처럼 죄는 계속해서 또 다른 죄를 낳는 법입니다.
야곱은 요셉이 입고 있던 찢겨진 채색 옷을 보고는 슬피 웁니다.
34절,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이때 야곱은 얼마나 스스로를 자책했을까요?
‘모든 것이 다 내 잘못이다’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어린 요셉을 보내지 않고, 차라리 종을 보냈더라면 ...’이라고 후회했을 겁니다.
“오래도록”이라는 한 단어가 야곱의 고통의 깊이와, 이후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깨닫게 합니다.
부모는 자식을 마음에 묻는다고 말합니다.
야곱은 훗날 요셉을 만나기 전까지, 자식을 잃은 것에 대한 자책감과 애통함을 가지고 살았을 겁니다.
한편, 이스마엘 상인에게 팔려간 요셉은 애굽에서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노예로 팔려갑니다.
하나님의 구원사를 이루시기 위한 초석 하나가 이렇게 세워진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나의 삶 속에도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겁니다.
때로 억울하고, 원망스럽고, 야속할 만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때로는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깊은 인생의 구덩이에 던져지는 것 같은 순간도 있을 수 있습니다.
나에게 왜 그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때 아무리 하나님께 간절하게 부르짖어도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고 버리신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합니다.
그 모든 일은 결코 우연처럼 다가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이와 같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
그러므로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은 상황과 환경이 아닙니다.
믿음의 눈을 들어 그 상황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 환경 너머에 평안, 미래와 희망을 주실 하나님의 계획을 믿어야 합니다.
상황과 환경만 바라보면 낙심하고, 절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면, 힘을 얻게 되고 소망을 얻게 되고 그 속에서 뜻을 이뤄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 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더욱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오늘도 내가 만날 사람들과 내게 닥칠 모든 일들 너머에,
절대 주권 속에서 나를 향한 선한 뜻을 가지시고 나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4.
오늘은 이같이 기도합시다.
‘주님,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자가 되게 하소서.
미움과 시기와 증오가 우리 안에 자리 잡지 못하게 하시고, 사랑과 용납의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주님,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소서.
때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 놓일 때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믿고 살아가게 하소서.’
‘주님, 나의 삶에서 경험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되게 하소서.
고난, 역경, 배신, 사기, 상처, 아픔, 괴로움 등...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되 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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