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 요 19:28-30
- Hoon Park

- 4월 5일
- 5분 분량
고난주간 성금요일 4/3/26
1.
오늘 본문 28절입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여기서 요한이 강조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라는 구절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겪고 계셨습니다.
‘내가 목마르다’는 외침은 단순히 예수님의 고통만을 표현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시편 69편 3절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자신의 그 고통을,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내가 목마르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셨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신 겁니다.
우리는 삶의 고난이나 고통이 찾아오면, 쉽게 말씀을 놓아버립니다.
그래서 걱정하고, 염려하고, 불안해하고, 두려워합니다. 나아가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고난과 고통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셨고, 붙드셨습니다.
내 인생이 고통스럽고 힘들 때 내 생각과 감정을 붙들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십시오.
내 생각과 내 감정을 토로하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내 생각과 내 감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그 말씀을 붙들고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우리의 삶 가운데 이루어 가십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시편 69편 3절에 기록된 말씀대로 “내가 목마르다”라고 외치셨습니다.
그리고 시편 69편 21절에 기록된 말씀대로 우슬초에 적신 신 포도주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 이루었다”는 말씀을 하신 후에 숨을 거두셨습니다(30절).
2.
“다 이루었다”는 말씀은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이면서 동시에 성경 전체의 결론입니다.
헬라어로는 “테텔레스타이, τετέλεσται” 라는 단어인데, 성경시대에는 대략 3가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첫째는, 사명을 완수했을 때 사용하는 용어였습니다.
예컨대, 종들이 일을 마친 후 주인에게 ‘테텔레스타이’라고 말했습니다.
‘주인께서 맡기신 일을 다 끝냈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라고 하신 말씀에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다 끝내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둘째는, 제사장들이 사용하는 용어였습니다.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드릴 희생제물을 검사하고 온전한 것으로 판명되었을 때 ‘테텔레스타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드릴 희생제물이 ‘온전하다, 흠이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해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흠 없는, 온전한’ 제물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아 주셨고, 이로 인해 우리의 죄는 완전히 씻기게 되었습니다.
셋째는, 경제적(상업적)으로 사용되는 용어였습니다.
빚진 사람이 자신의 빚을 모두 다 갚았을 때 ‘테텔레스타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빚을 다 탕감했다’는 뜻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서 우리가 지불해야할 죄 값을 완전히 다 갚으셨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우리는 희생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다 이루었다 = 테텔레스타이”라는 말씀을,
예수님께서 “성경을 응하게 하는 일”을 “다 이루었다”라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여기서 성경은 구약의 ‘율법과 예언’을 의미합니다.
“다 이루었다”는 말씀은, 예수님은 ‘율법의 완성자요, 예언의 성취자시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다 이루었다”는 말씀은,
단순히 “맡은 사명을 다 끝냈다, 흠(죄)이 없다, 다 탕감(구속)했다”라는 뜻을 넘어서,
아버지께서 성경에 약속하신 말씀대로 이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는 공개적인 선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다 이루어집니다. 그 말씀을 완성하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안에 거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만 우리에게 율법이 완성되고, 예언의 말씀이 성취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바르게 읽는다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고 연구하면서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도 많습니다.
대표적인 사람들이 유대교인들입니다.
인도의 위대한 성인이라 일컫는 ‘마하트마 간디’도 성경을 읽고 따랐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말씀을 너무 나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인간적으로 존경은 했지만, 그리스도로 믿지는 않았습니다.
율법과 예언, 곧 성경의 핵심은 ‘사랑과 구원’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완전해지고,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이 완성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율법을 믿고 예언을 믿는다 할지라도 결코 구원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안에 거할 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같이 선포하십니다.
“다 이루었다”
예수님 안에서만 성경에서 약속하신 대로 죄 사함의 은혜와 구원의 은혜가 온전히 이루어집니다.
3.
예수님은 아침 9시에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리고 오후 3시에 운명하셨습니다.
팔레스타인의 뜨거운 태양이 내리 쬐는 가운데 예수님은 6시간 동안 십자가에 달려 고통스럽게 천천히 죽어 가십니 다.
그 십자가 위에서 일곱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을 <가상칠언>이라고 부릅니다.
첫 번째 말씀은 누가복음 23장 34절입니다.
“...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조롱하고 멸시하고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매달고, 그것도 모자라 예수님이 입고 있던 겉옷과 속옷을 제비뽑아 나눠가 지는 자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아버지께 ‘용서해달라’는 간구를 하신 겁니다.
내가 예수님이라면, 이런 기도를 할 수 있을까요?
두 번째 말씀은 누가복음 23장 43절입니다.
“...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십자가에서 조차 예수님은 죽어가는 강도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은 미움 보다는 사랑을, 원망보다는 용서를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목적은 단 한 영혼이라도 살리시는 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단 한 영혼이라도 살리시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그런데 나는 인간적인 이유들로 인해 놓치고 살아가는 영혼이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봅시다.
셋 번째 말씀은 요한복음 19장 26-27절입니다.
“...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 ...”
예수님에게는 네 명의 남동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모친 마리아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제자 요한에게 맡기신 겁니다.
육신의 부모가 같아야만 가족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마 12:50)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아버지의 뜻이 이뤄지는 십자가 아래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이 됩니다.
성도들은 예수님이 맺어주신 가족입니다.
그런데 나는 성도들을 가족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지요.
네 번째 말씀은 마태복음 27장 46절입니다.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십자가는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하게 버림받는 곳입니다.
예수님에게는 육체적인 고통보다 하나님께 버림받는 고통이 더 큰 고통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버림받는 고통을 받지 않도록, 나를 대신해서 그 고통을 대신 겪으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나를 대신해서 버림받는 고통을 감내하신 주님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을까요?
다섯 번째 말씀은 요한복음 19장 28절입니다.
“... 내가 목마르다...”
사실 우리야 말로 영혼의 목마름이 있는 자들입니다.
내 영혼의 목마름은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해결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게 하시는 생수의 근원이십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영혼의 목마름을 다른 데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나는 내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께 날마다 나아가고 있는지요.
여섯 번째 말씀은 요한복음 19장 30절입니다.
“... 다 이루었다 ...”
예수님은 성경대로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가 되어야 할 이유입니다.
예수님 안에서만 성경이 약속한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 안에서만 성경이 약속한 축복과 은혜를 받습니다.
예수님 안에서만 성경이 약속한 말씀대로 이뤄집니다.
예수님이 다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나는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일곱 번째 말씀은 누가복음 23장 46절입니다.
“...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예수님은 마지막까지 아버지에게 의탁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마지막까지 의탁해야 할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성금요일인 오늘 하루, 예수님을 묵상하며 아버지께 온전히 나를 의탁하며 살아가는 자가 됩시다.
4.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성금요일 이 새벽에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우리를 위해 고통당하시고,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이루신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또한 십자가에서 하신 주님의 일곱 말씀들을 마음에 되새겨봅니다.
주님,
우리는 고난 앞에서 쉽게 흔들리고,
말씀보다 감정과 현실을 붙들며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 십자가 앞에서 다시 결단하기를 원합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삶을 살게 하시고,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주님께서 이루신 그 구원의 은혜가 우리의 삶 속에서 날마다 실제가 되게 하시고,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삶의 자리 가운데 흘러가게 하소서.
십자가 위에서 끝까지 사랑하시고,
끝까지 순종하시고,
끝까지 말씀을 다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살아가게 하소서.
내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자가 되어,
나는 죽고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시는 자가 되게 하소서.
오늘 하루도 주님께 우리의 삶을 맡겨드립니다.
우리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의탁합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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