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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수님의 양입니다 / 요 10:22-33

최종 수정일: 3월 29일

2026년 3월 5일(목) 1.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세 절기는 유월절, 오순절(칠칠절), 초막절(장막절)입니다.

이 외에도 부림절과 수전절이 있습니다.


‘부림절’은, 페르시아 왕후 에스더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몰살하려고 계략을 꾸민 하만으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을 구 원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수전절’은, 예루살렘 성전을 새롭게 수리하고 단장한 것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수전절’을 이스라엘에서는 ‘하누카 Hanukkah’라고 부릅니다.

역사적 배경은 주전 2세기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4세가 이스라엘을 지배할 때입니다.

BC 167년에 안티오쿠스 4세가 예루살렘 성전을 강제로 빼앗고는 하나님께 매일 드리는 성전 제사를 폐지했습니다.

그리고 성전 제단에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는 그것을 숭배하게 했습니다.

또한 유대인들의 할례 예식과 안식일 규례를 금하는 칙령을 공포하고, 유대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돼지를 잡아 성전 제단에 바치도록 하고, 그것을 유대인들에게 먹으라고 강요했습니다.

이를 지키지 않는 유대인들에게는 모진 고문과 십자가 처형을 했습니다.


이때 제사장 맛다디아가 자신의 다섯 아들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특히 맛다디아의 셋째 아들인 마카비가 매우 용맹했는데, 그를 중심으로 혁명군이 결성되었습니다.

결국 주전 164년에 시리아로부터 예루살렘 성전을 탈환하게 됩니다.

이를 ‘마카비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성전을 탈환한 후, 마카비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성전 등대에 불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성전 안에 있는 더러운 우상들을 깨부수고, 버리고, 성전 안을 깨끗이 닦고 재건했습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매년 유대력 ‘기슬르월 25일’마다 8일 동안 ‘수전절’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이 기간에는 예루살렘 성전 뿐만 아니라, 모든 관공서와 유대인들의 가정 안에는 8일 내내 촛대에 불을 밝혀둡니다.

그래서 수전절은 ‘빛의 절기’라고도 부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이 ‘수전절’에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신 이야기입니다.

‘빛의 절기’인 수전절에 예수님께서 성전에 올라가셨다는 것은 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만이 성전을 비추는 참 빛이시오,

예수님의 빛이 비춰질 때만 비로소 성전이 성전답게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 수전절에 성전 안 솔로몬 행각을 거닐고 계셨습니다.

그때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물었습니다.

24절,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유대인들이 이런 질문을 한 것은, ‘예수는 결코 그리스도일리 없다’는 생각으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30절에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는 말씀을 통해서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밝히시자, 유대인들은 돌을 들어 예수님을 치려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유대인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6-27절,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 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니라


예수님은 ‘내 양’이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세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내 양은 나를 믿는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 ‘내 양은 나를 따른다’.

‘믿음 - 들음 - 따름’... 이것이 예수님의 양의 세 가지 특징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양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여기에서 “그들은 나를 따르니라”는 말씀을 좀 더 깊이 생각해봅시다.

예수님을 따르는 데는 세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을 따르는 ‘양의 단계’입니다.

이 단계는 믿음이 자라는 단계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음성을 듣고, 따름’을 통해서 은혜를 경험하고 믿음이 자라가는 단계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을 섬기는 ‘종의 단계’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양의 단계에서 이제 주님을 위해 섬기는 종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은혜만 받는 자리에서 이제 주를 위해 사역하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셋째는, 예수님의 ‘군사로서의 단계’입니다.

종의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함께 싸우는 주의 군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 단계는 진리의 말씀을 전하고, 중보 사역을 감당하며,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되는 삶을 사는 단계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세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이 세 가지 단계는 내적 성숙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외적 사역의 자리가 확장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양의 자리, 섬기는 종의 자리, 군사의 자리에서 맡겨진 일을 감당하며 주님을 따릅니다.


그런데 이런 외적 사역의 확장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내적 성숙함을 갖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외적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사역의 지경이 확장되는 것이요,

내적으로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숙함이 깊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일에는 사역의 확장과 인격의 성숙함이라는 균형이 필요합니다.


3.

예수님의 양의 세 가지 특징은 ‘믿음 - 들음 - 따름’으로 요약됩니다.

이런 예수님의 양들에게 예수님이 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28절,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주님은 자기 양에게 영생을 주십니다. 영원히 멸망하지 않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손에서 그들을 빼앗을 자가 없습니다.


주님의 손은 강하고 능한 손입니다.

28절, “...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절, “...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주님 손 안에 있는 우리를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손은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돌보시고, 인도하시는 손입니다.


본문에는 이런 주님의 손과 대조되는 또 다른 손이 나옵니다.

31절,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이들은 주님의 양들이 아닙니다.

이들은 주님을 믿고, 듣고, 따르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의 손에 언제나 돌을 들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치기 위해서요, 나아가 예수님을 따르는 양들까지 치기 위함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양들은 결코 손에 돌을 들고 있지 않아도 됩니다.

손에 돌을 들고 있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나의 목자 되신 주님 손 안에 내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손이 능력으로 나를 붙들어 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계실 때는 하나님 아버지의 손 안에 있는 삶을 사셨습니다. 유대인들이 돌을 들어 예수님을 치려하자,


39절을 보면 예수님은 그들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

예수님을 붙들고 있는 손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유보다 크신 여호와 하나님의 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손 보다 더 큰 손은 없고, 하나님의 손 보다 더 능력 있는 손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하나님의 손은 예수님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끝까지 붙잡아 주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의 생명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나를 붙들어주면,

죽음마저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예수님이 친히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겁니다.


결론적으로 주님의 손이 붙들고 있는 사람은,

영생을 주십니다. 영원히 멸망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습니다.


4.

주님의 양이 아닌 사람들은 자신들의 손에 ‘돌’을 들고 삽니다.

반면, 주님의 양들은 오직 주님의 손만을 의지하며 삽니다.


우리는 주님의 양입니다.

우리 손에 들어야 할 것은 돌이 아닙니다.

우리 손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손을 들어 경배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수전절에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성전을 밝히시는 참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은 참 빛이신 예수님을 모신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참 빛이신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시고 살 때, 내 마음이 주님의 성전다워집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성전으로서 우리가 할 일은,

세상과 사람을 향한 ‘돌’을 드는 것이 아닌,

세상과 사람을 위해 ‘기도’를 드리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청하건대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노라”(삼하 24:14) 아멘.


오늘은 이렇게 기도합시다.

‘주님, 오직 예수님만 믿고 예수님의 음성만 듣고 예수님만 따르는 주의 양이 되게 하소서.’

‘주님, 주님을 따르는 자로 사역의 확장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숙한 양이 되게 하소서.’

‘주님, 손에 돌을 드는 자가 아닌, 주님의 손을 의지하여 사는 자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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