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을 받는자가 적습니까? 눅 13:22-35
- Hoon Park

- 2025년 3월 25일
- 5분 분량
1. 어떤 사람이 와서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23절)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택한 백성’으로 삼으신 자들입니다.
신명기 7장 6-7절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민으로 택하신 자들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구원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유대인이 예수님께 “구원을 받는 자가 적습니까”라는 질문을 한 겁니다.
이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24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택함 받은 백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 받기를 원하는 자는 많습니다.
그러나 구원 받는 자는 적고, 구원 받지 못하는 자가 많다는 말씀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말씀이 택함 받은 백성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데 있습니다.
‘구원’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과 구원’은 믿는 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지, 믿지 않는 사람들은 사실 관심조차 없습니다.
예수님은 택함 받은 백성들 중에, 소위 교회 다니며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
‘구원을 구하여도 구원 받지 못하는 자가 많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2022년에 전 세계 인구가 80억 명을 돌파했습니다.
2024년 기준으로 전 세계 기독교 인구는 약 26억 명입니다.
그런데 26억 명이 기독교 인구로 분류되었다고 해서 그들 모두가 ‘구원 받는 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구원에 대한 약속의 말씀은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 말씀이 성취되지는 않았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가나안에 들어가리라는 약속의 말씀은 받았지만, 그들이 모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구원에 대한 약속의 말씀을 받았다고 해서 모두가 다 구원 받는 자가되는 것은 아닙니다.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2.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구원 받는 자’가 될 수 있습니까?
24절 상반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7장 13-14절에서는 이같이 말씀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여기서 ‘좁은 문’과 ‘좁은 길’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요 10:9) “내가 곧 길이요...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예수님만이 구원으로 들어가는 ‘문’이요, 구원으로 인도하는 ‘길’이 되십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이 ‘좁은 문’이요, ‘좁은 길’일까요?
그것은 내 자아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게 주어진 사명과 말씀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말씀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또한 마태복음 16장 24절에서 말씀합니다.
“...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내가 먼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시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를 부인하고, ‘말씀과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자가 되는 것이 어렵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말씀과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좁은 문’이요, ‘좁은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좁은 길을 걸어가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는 삶, 나 자신을 부인하는 삶,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시는 삶은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말씀과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도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힘쓰라”!!!
보혜사이신 성령의 도움을 구하며 힘써야 합니다.
힘쓰지 않고 저절로 되는 것은 없습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기도 응답은 기도하는 자의 것입니다.
축복은 말씀에 순종하는 자의 것입니다.
우리가 힘쓰려고 할 때 성령이 도우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 힘도 쓰지 않으려고 할 때는 성령도 뒷짐 지고 계십니다.
3. 25-30절까지는, 구원의 문이 한 번 닫히면 결코 열리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25-27절까지입니다.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그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의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
아직은 구원의 문이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구원의 문이 닫히는 날이 옵니다.
구원의 문은 항상 열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닫으실 때가 옵니다.
하나님이 닫으시면 그 문은 결코 다시 열리지 않습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구원의 문이 아직 내 앞에 열려 있을 때,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는 자가 되도록 더욱 ‘힘쓰라’는 겁니다. 귀 있는 자는 들을 것입니다.
29과 30절입니다.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문맥상 ‘먼저 된 자’는 먼저 택함 받은 백성인 이스라엘입니다.
‘나중 될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 받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런데, 훗날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중 된 자가 처음 되고 처음 된 자가 나중된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누가 먼저 교회를 다녔는가, 누가 먼저 은혜 체험을 했는가, 누가 먼저 직분을 받았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힘쓰는 자’가 되고 있는 가입니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될 자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구원에 대한 이런 말씀을 하실 때, 어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와서는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라고 알려줍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3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예수님은 사람의 위협적인 말을 들어도 조금도 위축되지 않으시고, “내가 갈 길을 가야겠다”고 묵묵히 그 십자가 길을 걸어가신 분입니다.
그럼, 우리에게 ‘내가 갈 길’은 어디겠습니까?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좁은 길이 ‘내가 갈 길’입니다.
그 길은 십자가에 나를 못 박히고,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시는 길입니다.
예수님이 내게 주신 사명과 말씀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입니다.
그 길이 ‘내가 갈 길’이요, 그 길에 구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을 한결 같은 믿음으로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은 적습니다.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오늘 이 말씀에 들을 귀 있는 자들이 됩시다.
우리 모두 구원에 이르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좁은 길을 걸어가는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됩시다.
4.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첫 번째, 예수님을 신뢰하는 자가 됩시다.
믿음은 신앙고백의 차원이 있고, 신뢰의 차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신앙고백하는 믿음을 통해서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의 삶은 신뢰하는 믿음을 통해서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신앙고백은 하면서, 정작 예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약속의 말씀을 받았다고 해서 저절로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는 말씀처럼, 우리가 매일 매일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두 번째, 예수님을 따르는 일에 힘쓰는 자가 됩시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좁은 문, 좁은 길을 걸어가는 삶입니다.
십자가에 자기를 못 박는 자가 되고,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시는 자가 되는 삶입니다.
내 마음에 던지신 말씀과 사명의 불을 꺼뜨리지 않고, 그 말씀과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입니다.
처음 된 자가 나중 된 자가 될 수도 있고, 나중 된 자가 처음 된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처음 된 자는 계속해서 처음 된 자가 되도록, 나중 된 자는 지금부터라도 처음 된 자가 되도록, 예수님을 따르는 일에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일에 힘쓸 때, 성령이 우리를 도우십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지혜와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이를 위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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