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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함에 흠이 없도록 기도합니다 /살전 2:17-3:13

2025년 9월 3일(수)


1. 하나님이 막으실 때가 있고, 사탄이 막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사탄이 막았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17-18절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 번 두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때 세워진 교회입니다.

데살로니가에 교회가 세워지고 얼마 안 되서 바울은 박해를 피해서 급히 그곳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데살로니가 교회는 마치 젖도 안 뗀 아이와 같은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다시 찾아가려고 두 번이나 시도했습니다. 그때마다 길이 막혔습니다.

그 이유를,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라고 말합니다.


반면,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아시아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때는 ‘성령’이 바울의 걸음을 막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 일행은 마게도냐의 첫 성인 빌립보를 거쳐 데살로니가에 갔던 겁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바울 일행이 데살로니가에 방문하지 못하도록 두 번이나 ‘사탄이 막았도다’라고 말합니다.


아시아로 가려던 발걸음을 막으신 것은 성령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에 다시 가려던 발걸음을 막은 것은 사탄입니다.

이처럼, 성령이 우리의 길을 막으실 때가 있고, 반대로 사탄이 우리의 길을 막을 때도 있습니다.

대게 사람들은 성령이 막으시는 것인지, 아니면 사탄이 막는 것인지를 분별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성령이 막으시는 것인지, 사탄이 막는 것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성령이 막으실 때는 대게 두 가지 경우입니다.


첫째는, 불의하거나 부정한 경우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에 맞지 않는 것은 성령이 막으십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시오, 정결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불의하거나 부정한 것을 행하려고 할 때면 성령께서 막으십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경우입니다.

바울이 아시아로 가려고 했을 때 성령이 막으신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마게도냐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성령이 막으실 때는 내 마음을 사용하십니다.

예컨대, 기도할 때 마음에 평안이 없거나, 불편하거나, 확신이 없을 때는 성령이 막으시는 것입니다.

그때는 하려던 일들을 잠시 멈추고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반면, 사탄이 막을 때는 분명한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그 일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요, 하나님의 뜻을 가로 막으려는 자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려고 할 때면, 그 걸음을 가로 막습니다.


사탄은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가려고 했던 것을 막았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막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진리의 말씀으로 데살로니가 교회를 든든하게 세워가시는 것은 막지 못했습니다.

사탄은 사람은 막아도, 하나님은 막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사람이 세워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워 가십니다.

하나님이 바울을 데살로니가에 보내셔서 처음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박해로 인해 바울은 아직 젖먹이에 불과한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놓고 떠나가야 했지만,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믿음의 본이 되는 자들이 되게 하셨고, 믿음의 소문이 나는 자들이 되게 하셨 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세워 가시고, 교회를 견고하게 하십니다.


2.

교회가 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19-20절,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그것이 헛되지 않아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이라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향하여 예수께서 강림하실 때,

‘너희가 우리의 소망과 기쁨이요, 자랑의 면류관이요, 우리의 영광과 기쁨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향해서 ‘너희가 내 열매다’라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단지 씨를 뿌렸을 뿐이요, 자라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 교회를 자신의 열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맺으신 하나님의 열매이기 때문입 입니다.


선교 현장이나 목회 현장에서 우리는 단지 복음을 전하고 가르칠 뿐입니다.

자라게 하시고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맺게 하신 그 열매가 주께서 강림하실 때는,

복음을 전하고 가르친 자들에게 있어서 ‘소망이요, 기쁨이요, 자랑의 면류관이요, 영광’이 됩니다.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몫이지만,

복음의 씨를 뿌리고 가르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강림하시는 그날까지,

우리가 할 일은 묵묵히 믿음으로 복음의 씨를 뿌리며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 앞에서 우리의 ‘소망이요, 기쁨이요, 자랑의 면류관이요,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3.

데살로니가 전서 3장은 궁핍과 환난 속에서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격려하고, 감사하며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많은 환난을 받았습니다.

바울이 아덴(아테네)에서 머물고 있을 때, 데살로니가 교회가 환난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디모데를 보낸 것입니다.

3:2,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디모데를 보낸 목적이 있습니다.

3:2b-3, “이는 너희를 굳건하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아무도 이 여러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라...

이는 한 마디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굳건하게 믿음에 서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디모데가 데살로니가에 갔다가 돌아와서는 바울에게 이런 말을 전해줍니다.

6절입니다.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신앙의 초신자인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궁핍과 환난 속에서도 굳게 믿음을 지키며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기쁜 소 식을 디모데를 통해서 바울이 전해들은 것입니다.

이때 바울이 얼마나 마음이 기뻤겠습니까?

그 기쁨이 7-8절에서 다음과 같이 드러납니다.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많은 궁핍과 환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킨 데살로니가 교회 때문에 위로를 받았다, 이제는 우리가 살 것 같다’라 는 표현 속에 바울의 기쁨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바울의 기쁨은 곧 주님의 기쁨을 대변합니다.


9-13절까지는 바울이 이런 데살로니가 교인들에 대한 소식을 듣고는 너무 기쁘고 감사해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 내용입니다.

크게 세 가지를 기도합니다.

첫째 믿음을 위해서입니다.

10절,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 하려 함이라

궁핍과 환난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킨 데살로니가 교회였지만 믿음이 온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가서 믿음이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자 열심히 간구했습니다.


믿음이 부족한 것을 채워주기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정죄와 비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이 부족한 것은 정죄와 비난 받을 일은 아닙니다. 그들의 부족한 믿음이 채워지도록 기도해야 할 일입니다.


둘째 사랑을 위해서입니다.

12절,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데살로니가 교회가 아직 궁핍함과 환난에서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궁핍과 환난 속에서도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고, 나아가 모든 사람에 대해서까지 사랑함으로 그 사랑이 흘러넘치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믿음은 하늘을 향하는 것이지만, 사랑은 땅을 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채워져야 할 것은 믿음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향하여 흘러 넘쳐야 할 것은 사랑입니다.

그 믿음과 사랑이 가득한 곳이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우리의 믿음을 채워주는 곳이요, 십자가는 우리의 사랑이 흘러넘치게 하는 곳입니다.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위해서입니다.

13절,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예수님은 강림을 기다렸습니다.

바울은 그때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길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흠이 없는 거룩함이란 ‘믿음’과 ‘사랑’을 의미합니다.

구원은 ‘믿음’을 통해서 받습니다. 그리고 구원 받은 사람의 표징은 ‘사랑’으로 드러납니다.


건강한 믿음과 병든 믿음이 있습니다.

건강한 믿음은 사랑으로 표현됩니다. 서로 사랑하고, 모든 사람을 향하여 사랑을 하는 것이 건강한 믿음입니다.

그러나 병든 믿음은 사랑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해서는 굳건한 믿음이 있지만, 형제를 향해서는 사랑이 없는 것은 그 믿음이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위하여,

주께서 강림하실 때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성도들이 모두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길 기도한 것입니다.


4.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첫 번째, 어떤 길(일)이 막혔을 때 기도합시다.

하나님이 막으실 때가 있고, 사탄이 막을 때도 있습니다.

이것을 분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막으신 것이라면 그것을 중단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탄이 막은 것이라면 중단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에 어떤 일이 막힐 때, 하나님이 막으신 것인지 사탄이 막은 것인지를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서 분별하게 하십니다.


두 번째, 복음의 씨를 뿌립시다.

씨를 뿌리는 것은 우리의 몫이지만, 자라고 열매를 맺는 것은 하나님의 몫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씨를 뿌려서 자라고 열매 맺게 된 것을 우리의 ‘소망이요, 기쁨이요, 자랑의 면류관이요, 영광’이 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씨를 뿌리는 자들이 됩시다.


세 번째, 교회를 위해 기도합시다.

교회에 세워져야 할 것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위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옆으로는 사람에 대한 사랑을 드러냅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하나님을 향해서는 ‘믿음’이요, 사람을 향해서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과 삶에 세워져야 할 것도 ‘십자가’입니다.


주님의 몸인 교회의 지체들로서 우리 모두,

예수님이 강림하실 때에 거룩함이 흠 없이 보전되도록 늘 십자가를 붙들고 살아가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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