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추어진 죄를 다루시는 하나님 / 창 42:1-17
2026년 5월 15일(금)
1.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은 7년의 풍년 동안 다가올 7년의 흉년을 대비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요셉은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두 아들에게 ‘므낫세’와 ‘에브라임’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므낫세’는 ‘잊음’이라는 뜻인데, 하나님이 과거의 모든 고난을 잊게 하셨다는 감사의 고백입니다.
‘에브라임’은 ‘번성’이라는 뜻인데, 하나님이 현재에 이렇게 번성하게 하셨다는 감사의 고백입니다.
이 두 이름은, 성도의 삶을 예표적으로 보여줍니다.
성도는 먼저 ‘고난’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 고난을 통과한 후에 주어지는 것이 ‘번영(영광)’입니다.
마치 십자가라는 고난 후에 부활의 영광이 있는 것처럼,
우리가 고난을 통과할 때,
그 고난은 므낫세 곧 ‘잊음’이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에브라임 곧 ‘번성, 번영, 영광’이 주어집니다.
애굽에 7년 풍년이 지나고, 7년 흉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흉년은 애굽뿐만 아니라, 가나안까지 닥친 대재앙이었습니다.
요셉은 그동안 대비한 대로, 먼저 애굽 백성들에게 모든 창고를 열어 곡식을 팔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식량을 살 수 있도록 국경을 열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해서, 야곱의 가족이 애굽으로 옮겨질 만반의 준비를 마치셨습니다.
1절입니다.
“그 때에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 아들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바라보고만 있느냐”
애굽에 가면 양식을 살 수 있다는 소식이 가나안 헤브론에 있는 야곱의 집까지 들려왔습니다.
그 소식을 전해 듣고도 야곱의 아들들은 서로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아들들에게 애굽에 가서 곡식을 사오라고 말합니다(2절).
야곱의 아들들에게 애굽은 양심에 거리낌을 느끼게 하는 곳입니다.
20년 전, 동생 요셉을 애굽의 노예로 팔아넘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곱의 아들들은 서로를 바라만 볼 뿐 어느 누구도 선뜻 애굽에 내려가 양식을 사오겠다는 말을 못하고 있었 던 겁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아버지 야곱은 아들들에게 애굽에 내려가서 곡식을 사오라고 말한 것입니다.
41장까지는 하나님께서 요셉을 다루신 이야기 입니다.
그러나 42장에서는 이제 야곱의 다른 아들들을 다루시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야곱의 아들들은 장차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는 열두 지파의 조상들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조상들이 되어야 하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루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아들들에 대해서 가장 먼저 다루신 것은, 그들이 오랜 세월 숨기고 살았던 죄의 문제입니다.
그들 안에 숨겨진 죄의 문제를 마주하게 하십니다.
애굽으로 내려가는 그들의 발걸음은 무척 무거웠을 겁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양식을 사러 애굽에 내려간 것은 아버지 야곱의 명령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미 결혼을 해서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가장이었기 때문입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로 발걸음을 향하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다루시고자 하는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아들들을 다루시고자, 그들의 발걸음을 애굽으로 향하게 하신 겁니다.
2.
곡식을 사러 애굽으로 내려간 10명의 아들들은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 앞에 서게 됩니다.
요셉이 노예로 팔려간 것은 17세 때였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 것은 30세였습니다.
그로부터 7년 동안 애굽에는 풍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8년차에 7년 흉년이 시작되었습니다.
7년 대흉년이 시작되는 해에 요셉의 나이는 38세였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아들들이 양식을 사러 가나안에 내려간 것은 7년 대흉년의 2년 차입니다.
창세기 45장 6절을 보면,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이를 통해서 7년 대 흉년 중에서 2년째에 요셉과 형들이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때 요셉의 나이는 39세요,
요셉과 형들은 햇수로 22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6-7절입니다.
“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곡식을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요셉이 보고 형들인 줄을 아나 모르는 체 하고 엄한 소리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곡물을 사려고 가나 안에서 왔나이다”
요셉의 형들은 애굽의 총리 앞에 엎드려 절을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엎드려 절한 애굽의 총리가 동생 요셉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자신 앞에 엎드려 절하는 사람들이 22년 전 자신을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아넘긴 형들이라는 것을 알 았습니다.
요셉은 알았으나 형들은 몰랐다는 것을 8절에서 한 번 더 강조합니다.
“요셉은 그의 형들을 알아보았으나 그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더라”
형들이 요셉 앞에 엎드려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
형들은 감히 얼굴을 들어서 쳐다보지도 못하고 땅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습니다.
요셉은 그런 형들을 위에서 내려다봅니다.
그때, 요셉의 머리에 과거 하나님이 꾸게 하셨던 꿈이 생각났습니다.
9a절,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
요셉은 두 번 꿈을 꾸었습니다.
첫 번째 꿈은, 형들의 곡식단이 자신의 곡식단을 둘러서서 엎드려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그 꿈이 지금 이뤄진 것입니다.
요셉이 두 번째 꾼 꿈은,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요셉에게 절하는 내용입니다.
이는 창세기 46장에 보면 이 꿈이 이루어집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이 꿈은 요셉이 자기 욕망을 따라 꾸게 된 꿈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꾸게 하신 꿈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꾸게 하시는 꿈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계획하시고 뜻하신 대로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먼저 하늘에서부터 이루어집니다.
그런 후, 이 땅에서도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같이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겁니다.
“...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
하나님은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을 이 땅에 이루시기 전에,
우리에게 두 가지 방법을 통해서 먼저 알게 하십니다.
첫째는 ‘꿈과 환상’입니다. 둘째는 ‘말씀’입니다.
요셉은 꿈을 통해서 하늘에서 이루어진 아버지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뜻을 이 땅에 이루신 겁니다.
성경 시대에는 ‘꿈과 환상’ 또는 ‘말씀’을 통해서 하늘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꿈과 환상’ 보다는 주로 ‘말씀’을 통해서 하늘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십니다.
그 이유는, ‘꿈과 환상’이 거짓의 영으로부터 오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요,
성경 66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귀를 열어 듣고, 마음을 열어 들어야 할 것은 ‘성경’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늘에서 이루어진 아버지의 뜻을 알게 하시고, 이 땅에 그 뜻대로 이루시기 때문 입니다.
3.
요셉은 22년 전에 자신이 꾸었던 꿈이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의 형들을 정탐꾼으로 몰아세웁니다.
이에 형들은 자신들은 곡물을 사러온 자들이라고 결백을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11절, “우리는 다 한 사람의 아들들로서 확실한 자들이니 당신의 종들은 정탐꾼이 아니니이다”
여기서 “확실한 자들”이라는 말은, ‘믿을 만한 자들이다, 정직한 자들이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모두 한 사람의 아들들로 열두 형제인데,
막내 동생은 아버지와 함께 있고 또 다른 형제는 없어졌다고 말합니다(13절).
이에 요셉은 “너희 진실함을 증명”하라(15절)고 말하면서,
아버지와 함께 있는 막내 동생을 데려오라고 요구합니다.
그리고는 형들을 삼일 동안 감옥에 가둬 둡니다.
막내 동생을 데리고 와서 진실함을 증명하라고 말했으면,
얼른 가서 데리고 오게 하면 되는데 일단 삼일 동안 옥에 가둬둔 것입니다.
이 시간은 형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정말 ‘진실한 자’인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옥에 갇힌 그들은 두렵고 무서웠을 겁니다.
그들은 아버지가 보내줄리 없는 막내 동생을 어떻게 데려올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아버지를 어떻게든 설득해서 막내 동생을 데려온다 할지라도,
애굽의 총리가 이번에는 없어진 다른 형제에 대해서 ‘왜 없어졌는지, 어떻게 없어진 것인지’에 대해서 물어보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라는 염려와 두려움이 밀려왔을 겁니다.
오랫동안 감추고 살았던 그들의 죄가 이제 수면 위로 점점 떠오르게 된 것입니다.
이 때문에 그들은 감옥에 갇힌 3일 동안 무척 괴로웠을 겁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이들 안에 오랜 시간 감추어 두었던 죄의 문제를 다루고 계신 겁니다.
하나님은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뒤에야, 그 다음 스텝을 옮기십니다.
그래서 삼일 동안 그들에게 옥에 갇혀서 자신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하신 겁니다.
하나님은 뜻하신 대로,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십니다.
그런데 아직 내 마음에 거리낌이 있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죄의 문제가 남아 있지는 않은지요.
우리는 그 죄를 묻어두고 숨기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마주 대하게 하십니다.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다음 스텝이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 다루기 원하시는 죄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그 죄의 문제를 마주하게 하거나 드러나게 하실 때,
그것을 피하거나 숨기거나 무시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책망과 징계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내 죄의 문제가 드러난다면 내 죄의 문제와 마주하게 된다면 그것을 예수님 앞에서 아뢰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십시오.
요한일서 1장 9절에서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죄의 문제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께 자백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셔서, 우리를 “확실한 자”요 “진실함을 증명”하는 자로 여기십니다.
4.
오늘은 이같이 기도합시다.
‘주님, 요셉이 당한 고난이 ‘므낫세(잊음)’가 되고, 하나님 안에서 ‘에브라임(번성, 영광)’이 되었던 것처럼, 내 삶에도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은혜를 얻게 하소서.’
‘주님, 하늘에서 이루어진 아버지의 뜻이 오늘 나의 삶에 이루어지게 하소서. 또한 말씀과 꿈을 통해서 알려주시는 하늘에서 이루어진 아버지의 뜻을 민감하게 분별할 수 있는 영적 민감함과 분별력을 주소서.’
‘주님, 요셉의 형들이 애굽으로 내려가 오랜 세월 숨겨두었던 그들의 죄를 마주하게 하시고 다루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숨기고 덮어두었던 마음의 어두움과 죄를 정직하게 바라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다루심을 받게 하소서. 그래서 우리의 삶에 하나님이 계획하신 새로운 걸음이 시작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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