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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를 굳게 하는 자가 되십시오 /눅 22:24-38

  • 작성자 사진: Hoon Park
    Hoon Park
  • 4월 14일
  • 5분 분량

2025년 414일(월)

1.

고난주간 월요일 새벽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고 계십니다.

이제 곧 있으면 예수님은 대제사장의 하인들에게 붙잡혀 가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셨습니다. 그때 제자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24절,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누구 더 큰 자인가’를 놓고 제자들 간에 서로 말다툼이 일어난 겁니다.

이런 비슷한 일이 전에도 한 번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9장 4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갈릴리 떠나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오시기 전이었습니다.

그때 제자들 사이에 서로 “누가 크냐”라는 변론이 일어났습니다.

9:46,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변론”으로 번역한 헬라어 단어 ‘디알로기스모스 διαλογισμόs’는 ‘의견, 생각’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24절에서 “다툼”으로 번역한 헬라어 단어 ‘휠로네이키아 Φιλονεικία’는 ‘싸움’을 의미합니다.


제자들이 갈릴리에 있을 때는 마음속으로 ‘서로 누가 크냐’를 놓고 의견을 나누었다면,

예루살렘에 와서는 서로 ‘누가 크냐’를 놓고 대놓고 싸우고 다투었던 겁니다.


이들이 지금 서로 싸우고 다투고 있는 자리가 어디입니까?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마지막 유월절 식사 자리입니다(22:14-20).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자신의 생명을 나눠 주시는 자리입니다.

제자들이 서로 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 자리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제자들은 서로 “누가 크냐”라고 “변론”을 넘어 이제 “다툼”까지 한 것입니다.


제자들의 모습은 얼마나 한심하고 실망스럽습니까?

제자들의 실망스러운 모습은 이 뿐만이 아닙니다.

수제자 베드로는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33절)라고 자신 있게 말했지만,

오늘 닭 울기 전에 세 번 예수님을 모른다 부인”하게 될 것입니다(34절).


예수님이 3년 동안 가장 공을 들이신 부분이 제자들을 복음으로, 말씀으로 훈련시키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공생애가 끝나가는 마지막 순간에,

더구나 예수님의 살과 피, 생명을 나누어 주시는 그 자리에서 제자들의 다투는 모습은 얼마나 한심스럽고 실망스럽습니까.

이런 제자들에게 붙일 수 있는 사자성어가 있다면, ‘구제불능’이라는 단어일 겁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예수님의 3년간의 제자 사역은 실패처럼 보입니다.

너무나 속상할 일이요, 너무나 기운 빠질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제자들의 모습이 실은 우리의 모습입니다.

많은 말씀을 듣고, 많은 은혜를 받아도 쉽게 변화되지 않는 모습,

믿음의 지체 간에 서로 편가름하고, 갈등하고, 반목하고, 싸우고, 다투는 모습,

또한 삶 속에서 예수님을 부인하고 사는 모습...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실체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사역은 완전히 실패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2.

그런데도 예수님은 끝까지 제자들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소망이 되어 주십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그들의 소망이 되어 주시는지 오늘 본문에서 세 가지를 말씀합니다.

첫째, 25-27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이 말씀을 단 두 문장으로 축약하면,

“섬기는 자가 큰 자다.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크냐’라며 서로 다툼을 하고 있는 제자들,

그런 그들에게 여전히 소망이 있는 것은,

큰 자이신 예수님께서 변함없이 ‘섬기는 자’로 그들 중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중에 섬기는 자로 계십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예수님은 나를 위한 대속물이 되어 주십니다.

나의 질고를 대신 지고 나의 슬픔을 대신 당하십니다.

나의 허물 때문에 찔림을 당하시고, 나의 죄악 때문에 상함을 당하십니다.

나를 대신해서 채찍을 맞으시고,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십니다.

우리는 소망이 없는 자들입니다. 실망과 낙심만 들게 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섬기는 자로 우리 중에 계시기에,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둘째, 28-30절입니다.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너무나 한심해 보이고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맡기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다스리시는 나라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자기는 낮추어 섬기는 자가 ‘큰 자’인 나라입니다.

마태복음 18장 4절에서 말씀합니다. “...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세상 나라에서는 서로 ‘누가 크냐’에 관심을 둡니다.

이 때문에 서로 싸우고, 다툽니다. 서로 섬김 받는 자가 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서로 작아지고, 서로 낮아져서, 서로 섬기는 자가 되는 곳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의 법칙을 따르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섬김 받는 자가 아니라, 먼저 섬기는 자가 ‘큰 자’입니다.

예수님도 우리를 섬기시기 위해서 우리 중에 계십니다.

우리를 살리시려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우리를 섬겨 주십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맡기신다는 것은, 우리가 섬기는 자가 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실패한 것처럼 보이고, 한심하고 구제불능처럼 보이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맡기셨습니다.

사명을 맡겨주시는 겁니다.

주님이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맡기셨기에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셋째, 31-32절입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너무나 한심하고 실망스러운 제자들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예수님이 그들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살아계셔서 우리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로 섬겨 주고 계십니다.

히브리서 7장 25절에서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예수님이 보내주신 보혜사 성령님도 나를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로마서 8장 26절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제자들이 서로 편가름하고, 서로 반목하고, 서로 갈등하고, 서로 싸우고 다투는 그 배경에 있는 존재는 ‘사탄’입니다. 사탄은 믿음 떨어지도록 말 까부르듯 요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실패한 것처럼 보이고, 한심해 보이는 제자들에게 여전히 소망이 있는 겁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3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시몬아, 시몬아”라고 시몬의 이름을 부르시고는,

사탄이 너를’이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사탄이 너희를”이라고 복수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시몬’ 한 사람 만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에 있는 다른 제자들의 이야기요,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그런 우리를 위해서 믿음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32절 하반절에서 이같이 말씀하십니다.

“...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제자들은 유월절 만찬 상 위에서 ‘누가 크냐’를 놓고 서로 싸우며 다투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다” 

하나님 나라를 너희에게 맡기겠다” 

너희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겠다” 

그러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서로 싸우고 다투는 자에서, 돌이킨 자가 되어야 합니다.

돌이킨 후에는 이제 형제를 굳게 세우는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3.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고난주간 월요일 새벽에 주시는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생각하게 하십니다.


첫 번째, 믿음의 지체들 간에 서로의 관계성을 돌아보게 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살과 피를 나눈 믿음의 형제들입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서로의 관계성은 어떨까요?

다투고, 싸우고, 싫어하고, 편가름하고, 반목하고, 시기하고, 미워하고, 따돌리는 관계는 없는지요.


한 예수님을 믿고, 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 자들로서,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나 자신부터 지체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할 수 있기를 기도합시다.


두 번째, 다툼이 아닌 겸손히 섬기는 하루를 보냅시다.

이번 주는 우리가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시는 예수님과 동행하는 고난주간입니다.

오늘 말씀대로, 오늘 우리의 삶이 다투는 삶이 아니라, 겸손하게 섬기는 자의 삶이 됩시다.

겸손하게 섬기는 자가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섬기는 자로 우리 중에”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맡기”셨습니다.

또한 우리를 위해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고 계십니다.

나를 이토록 섬기고 계시는 예수님을 생각하며,

오늘 나도 섬기는 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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