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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기뻐하고 즐거이 부릅시다 /슥 9:9-17

2025년 8월 16일(토)

1.

예수님 당시 지도자들은 ‘말’을 타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

그 모습을 본 유다 백성들은 달려나와 자신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종려나무 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는 나귀 새끼를 타신 예수님의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며 큰 소리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 은 곳에서 호산나”(마 21:9)라고 찬양했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야로 맞이한 것입니다.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메시야로 맞이한 이유는 오늘 본문의 말 씀 때문입니다.

9절입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 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예수님은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심으로 이 예언의 말씀을 성취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나귀 새끼를 타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이 예언의 말씀을 성취하시는 메시야라는 것을 알아차린 겁니다.

그래서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라고 하신 말씀처럼,

자신들의 겉옷과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길에 펴고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호산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찬송했던 겁니 다.


스가랴서의 핵심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라는 것과 예루살렘이 회복과 축복의 도성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과 예루살렘을 완성하시는 메시야로 오십니다.

성전을 완성할 때 마지막으로 세우는 돌이 ‘머릿돌(모퉁이돌)’입니다.

그 머릿돌이 세워질 때 비로소 성전이 완성됩니다.

예수님은 머릿돌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오심을 통해서 성전이 완성됩니다.


9절에서는 메시아로 오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서 세 단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그는 공의로우시며”

‘공의’는 ‘공정과 공평’을 의미합니다. 이는 누구에게도 어떤 차별이나 특혜를 주지 않는 것입니다.

주인이나 종이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남자나 여자나, 노인이나 어린이나 차별없이 주님은 공정하게 대하십니다.

민족, 인종, 신분, 나이, 소유 여부를 따지지 않고 주님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대하십니다.


사람은 결코 공의로울 수 없습니다. 사람은 결코 공정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기 중심적입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잘하는 사람을 더 좋아하고,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더 관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공의롭고 공정하시고 공평하신 분입니다.


누구나 예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나 예수님 앞에 나아오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공의로운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앞에서는 억울함이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우리의 억울함을 풀어주시는 분입니다.

대적하는 자나 원수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할 때면, 공의로우신 예수님에게 나아가십시오.

예수님만이 우리의 공의로운 재판관이 되어주시고, 예수님만이 나의 억울함을 풀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공의로운 왕이십니다.


둘째는 ‘구원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구원을 베푸시며”

구원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믿음’이요, 또 하나는 ‘회개’입니다.

죄와 세상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참 믿음은 ‘회개’하는 삶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복음을 외치셨습니다.

...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믿음은 있는데 삶의 회개가 없다면, 그 믿음은 거짓입니다.

참 믿음에는 삶의 회개가 뒤따릅니다.


삶의 회개는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예배하는 자가 됩니다.

믿음이 없는 자는 예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는 예배하는 자가 됩니다.

진정한 삶의 회개는 예배에서 드러납니다.


또 하나는 말씀을 따르는 자가 됩니다.

믿음이 없는 자는 삶의 기준이 자기 자신과 세상의 법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는 삶의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삶의 회개가 있는 자는 말씀을 삶의 선명한 기준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예배와 말씀, 이것이 ‘행함’입니다.

성경은 행함이 있는 믿음은 산 믿음이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참 회개가 있는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은 구원을 베풀어 주십니다.


셋째는 ‘겸손하신’ 분입니다.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예수님의 겸손은 두 가지로 드러납니다. ‘순종’과 ‘섬김’입니다.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하셨습니다.

자기의 뜻을 구하지 않고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뜻만 구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과 본체이시고, 이 땅에 메시야로 오셨지만 사람을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의 ‘순종’과 ‘섬김’의 절정은 ‘십자가’ 위에서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고,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순종과 섬김이 완성된 곳이요,

십자가는 예수님이 겸손한 분이시라는 것을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 10:28)


우리가 예수님게 배워야 할 것은 ‘온유와 겸손’입니다.

‘온유’라는 단어는 거친 야생 말을 길들이는 데서 유래한 단어라고 전에 말씀드렸습니다.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거친 야생말이 사람의 말을 잘 듣게 하는 것이 ‘온유’입니다.

그러므로 ‘온유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마음을 가진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마음으로 훈련된 자 입니다.


또한 ‘겸손한 자’는 십자가에서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자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온유’는 단지 말과 행동이 부드러운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마음이 되도록 훈련되는 것이 ‘온유함’입니다.

‘겸손’은 단지 나 자신을 사람들에게 낮추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자가 되는 것이 ‘겸손’입니다.


‘온유와 겸손’은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예수님의 성품은 성령의 열매인데, 결코 하루 아침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많이 안다고 해서, 말씀을 크게 깨달았다고 해서 저절로 온유와 겸손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제 아무리 온유와 겸손에 대해서 많이 알고, 깊이 알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온유와 겸손해지는 것이 아닙니 다.

매일 십자가 앞에 나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서,

내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마음이 되도록 훈련하고,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자가 되도록 성령을 의지하며 살아갈 때 맺게 되는 열매입니다.


2.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9절,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오늘은 이 말씀을 중심으로 예수님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은 공의로운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구원을 베푸시는 구원자이십니다. 예수님은 겸손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세 가지를 기억합시다.


첫 번째, 예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자들이 됩시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7장 3절에서 ‘영생’에 대한 정의를 말씀하셨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


영생의 삶은 예수님을 알아가는 삶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서 지금 알고 있는 것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 내가 깨달은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그래서 겸손한 마음으로 더욱 예수님을 알아가는 자들이 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은 성경 속에서 계시된 분입니다. 그리고 성경대로 오신 분입니다.

성경에 약속을 성취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알아가려면 더욱 성경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내가 지금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마십시오.

더욱 깊이 예수님을 알아가는 자들이 됩시다.


두 번째, 예수님을 닮아가는 자들이 됩시다.

오늘 본문에서 알게 되는 예수님은 공의로운 왕이시오,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시오, 겸손한 분이십니다.

아는 것에서 멈추는 것은 지식에 불과합니다.

아는 대로 행하려 하고, 아는 대로 닮아가려는 것이 신앙의 성숙함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공의로운 자가 됩시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겸손한 자가 됩시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서 구원의 백성이 되고, 예수님께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구원의 통로가 됩시다.


세 번째, 예수님을 찬양합시다.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들어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무리들이 크게 기뻐하고, 즐겁게 찬양했습니다.

내일 우리가 예배 드리는 그 자리에 예수님은 어린 나귀 새끼를 타시고 우리에게 찾아오실 것입니다.

내일 예배 중심에 예수님을 모셔드리고,

우리 모두 예수님을 크게 기뻐하고 즐겁게 찬양하며 경배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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