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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신 하나님 / 창 17:1-27


2026년 1월 23일(금) 


1.  

어제 하갈에게 하나님은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오늘 아브라함에게는 ‘전능의 하나님’, 곧 ‘엘샤다이’로 나타나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신 때는 아브람의 나이 ‘구십구 세 때’였습니다. 

1절,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나안 땅에 왔을 때의 나이는 75세였습니다(창 12:4).  

아브람이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의 나이는 86세였습니다(창 16:16).  

15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람과 횃불 언약을 맺으신 것은,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기 이전이므로 아마도 약 85세 때였 을 것 것입니다.  


아브람이 99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나이 85세에 횃불 언약을 맺으셨다고 한다면,  

횃불 언약을 맺은 후 14년이 지난 상황입니다.  

99세가 된 아브람과 아내 사래도 아이를 낳기에는 나이가 너무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1절에서,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라는 말의 의미는, 

아브람과 사래가 너무 나이 많아서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소망이 없어졌을 때라는 뜻입니다.  인간적으로는 더 이상 소망도, 희망도 없습니다.  

현실적으로는 이제 포기하고,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찾아오신 것입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2.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전능한 하나님’으로 나타나셔서 두 가지를 행하십니다. 

첫째, 아브람과 사래에게 아들을 주십니다.  

4절,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맺으신 횃불 언약이 변함없다는 것을 다시 확인해주신 겁니다.  

하나님은 언약하신 것을 잊지 않으시고, 반드시 언약하신대로 이루시는 성실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아브람 입장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후사를 주시고, 가나안 땅을 소유로 주신다’고 처음 약속하신 것은 75세 때였습니다.  10년이 지나 85세 때 횃불 언약을 통해서 그 약속을 컨펌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횃불 언약을 맺은 지 14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입니다.  여전히 아브람과 사래 사이에는 자식이 없습니다.  

이제 아브람의 나이는 99세입니다. 더 이상 육체적으로 후사를 낳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처음 약속의 말씀을 받은 때로부터 24년이 지났고,  

횃불 언약으로 재약속을 받은 때로부터는 14년이 지났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믿지만, 하나님이 하신 약속은 스스로 포기할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셔서 16절에서 이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아내 사래의 나이도 89세입니다. 여자로서 생리가 멈추고 더 이상 임신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사래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씀을 들은 아브람은 농담처럼 받아들였습니다. 

17-18절, “아브람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아브 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었다는 것은,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처럼 여긴 것입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이라면, 같은 반응을 보였을 겁니다.  

99세의 아브라함이 89세의 아내 사라를 통해서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소망을 갖기 보다는,  차라리 이스마엘을 후사로 삼는 것이 더 현실적인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소망입니다.  

내게 주신 말씀이 없는 데도 그렇게 해주실 것이라고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내게 주신 말씀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해주실 것이라고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소망입니다.  그런데 때론 소망보다는, 현실에 순응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선택처럼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생각되었을 때,  

더 이상 소망은 없고 차라리 현실에 순응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여겨질 때,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 안에 새일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능치 못함이 없는 분이요, 못하시는 일이 없는 분이십니다. 

결국, 사라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게 하십니다.  


둘째, (전능한 하나님으로 찾아 오셔서) 아브람과 사래의 이름을 바꿔주십니다.  

5절에서,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십니다.  

‘아브라함’의 이름은, “여러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15절에서는, 사래의 이름도 사라로 바꾸십니다.  

‘사라’의 이름은, “여러 민족의 어머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사래를 사라로 이름을 바꾸신 것입니다.  

그것은 아브람과 사래가 여러 민족의 아버지요,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될 만큼 사랑이 많거나 마음이 넓은 좋은 인 격을 가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어제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사래는 열국의 어미가 될 만한 그릇이 못되는 여인입니다. 그다지 마음이 넓은 여인도 아닙니다.  자기 조바심 때문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남편 아브람을 강제로 여종 하갈과 동침하게 했습니다.  하갈이 임신하고는 자신을 멸시하자, 아브람을 탓하고 아브람에게 화를 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갈이 도망칠 정도로 학대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그런 사래의 이름을 ‘사라’로 바꾸셔서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신 겁니다.  


사래가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될 만한 자격과 인격이 되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사래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의 자리에 올려놓으셔서,  

결국 사라라는 그 이름답게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도록 다듬어 가십니다.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라는 이름대로 변화시키시고, 사라는 열국의 어머니라는 그 이름대로 변화시키시는 겁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람을 변화시키십니다.  


우리 중에 어느 누구도 자격이 되어서 직분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자격이 되어서 직분 보다 가장 고귀한 명칭인 ‘성도’라는 칭호를 받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를 ‘성도’가 되게 하시고, 우리에게 ‘직분’을 주셔서, 

‘성도’에 합당한 사람, ‘직분’에 합당한 사람으로 우리를 세워 가시는 겁니다.  

자격이 안되는 우리를 세우셔서 그 자리에 합당한 일들을 감당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은 전능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자리,  

하나님이 우리를 이끄시는 자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모든 일들은,  

내가 자격과 능력이 되어서, 내 능력으로 감당하라고 허락하신 것들이 아닙니다. 

전능한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이기에, 하나님을 ‘믿음으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3.  

이처럼 전능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십니다.  또한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이 두 가지는 전능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셔서 행하시는 일들입니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행해야 할까요?  

다시 1절 하반절로 돌아가 봅시다.  

...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우리가 할 일은 전능한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법적으로 흠 없이 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믿음과 순종의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앞서 15장에서 횃불 언약을 맺으실 때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신 것은 ‘믿음’이었습니다.  그리고 17장에서는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9-14절까지는 할례에 대한 규례를 정하시고, 할례 명령을 내리십니다.  

11절,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14절,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할례’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표징입니다.  

또한, 할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겠다는 믿음의 표징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할례’ 그 자체가 결코 구원의 조건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에게 요구하신 것은 ‘할례를 행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음과 순종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삶입니다.  


믿음과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육체의 할례보다 중요한 것이 마음의 할례입니다.  

마음의 할례란 믿음과 순종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4.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내 인생에 “전능한 하나님”으로 나타나십니다.  

내 삶에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시고, ‘나’를 다듬으시고 변화시키십니다. 

전능한 하나님이 나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믿음”과 “순종”입니다.  할례 받는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기도합시다.  

‘주님, 나에게 전능한 하나님이 되어 주소서.’ 

‘주님, 내 삶에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시고, 나를 변화시켜 주소서.’ ‘주님, 내 마음이 할례 받는 마음이 되게 하소서. 믿음과 순종의 마음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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