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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 창 16:1-16


2026년 1월 22일(목) 

1.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횃불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손들과 가나안 땅을 소유로 주신다는 언약입니다.  

이 언약은 상호 계약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맺으신 인간을 향한 일방적인 은혜의 계약입니다.  


‘횃불 언약’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신 것은 단 하나였습니다. 

15장 6절,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단 하나, ‘믿음’입니다.  

그 믿음 하나만 있으면,  

아직 자식 없는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주시고, 그와 자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소유로 주신다는 언약입니다.  


이것은 훗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나게 하는 예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일방적으로 맺으신 은혜의 계약이 ‘십자가 언약’입니다.  

십자가 언약은 예수님을 통해서 이제는 우리에게 영원한 가나안 땅, 곧 하나님 나라를 일방적으로 주신다는 언약입 니다. 이 언약을 맺으실 때도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믿음’입니다.  


로마서 1장 17절의 말씀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그것을 의로 여기신 하나님께서,  

횃불 언약을 통해서 아브라함에게 후손과 가나안 땅을 소유로 주신다는 언약을 맺으신 겁니다.  


2.  

그런데 사래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했습니다.  

후사를 얻기 위해서 자신의 애굽 출신 여종 하갈과 남편 아브라함을 동침하게 만듭니다. 

본문 2절을 보면, 사래가 아브라함에게 후사를 위해서 자신의 여종 하갈과 동침하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이 대목에서 아담을 생각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동산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임의로 먹을 수 있으나 단 한 가지, 선악과 열매만은 따먹지 말라고 말씀하셨 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아내 하와의 말을 듣고는 그 열매를 따먹었습니다.  


아브람은 얼마 전에 하나님과 횃불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내 사래의 말을 듣고는 하갈과 동침하게 됩니다.  

아담도, 아브람도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지 않고 아내의 말을 따르다가 인류역사에 큰 불행의 씨 앗을 남기게 된 것입니다.  


그럼 아담과 하와 중에 누구 책임이 더 클까요? 아브라함과 사라 중에서는 누구 책임이 더 클까요?  당연히 아담의 책임과 아브라함의 책임이 더 큽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직접 말씀을 들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직접 들은 자들이 말씀을 어기는 것은 어떤 핑계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도, 지키지 않는 불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동침한 하갈이 임신했습니다.  

그러자 하갈이 여주인 사래를 멸시했습니다.  

하갈이 사래에게 어떻게 멸시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래가 하갈에게 멸시를 당하자 남편 아브람에게 화풀이를 합니다.  

5절,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아브라함과 하갈을 동침하게 한 것은 사래였습니다.  

그런데 임신한 하갈이 자신을 멸시하자, 그 책임과 화를 아브람에게 내는 것입니다.  


그런 사래에게 아브람이 말합니다.  

6절,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의 눈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  

사래가 하갈에게 어떻게 하든지 아브람은 신경 쓰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러자 사래가 기다렸다는 듯, 하갈에게 학대를 가합니다.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을 칠 만큼 학대를 했습니다.  


그래서 하갈이 임신한 몸으로 광야로 도망을 칩니다.  

그런데 이런 하갈을 찾아가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광야로 도망간 하갈에게 찾아 오셔서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첫째, 9절입니다.  

...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고대사회에서 도망친 여종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입니다. 더군다나 하갈은 임신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하갈과 태중의 아이가 살 수 있는 길을 제시하신 겁니다.  


둘째, 10절입니다. 

...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하갈에게 일방적으로 하갈의 자식을 통해서 번성케 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십니다. 

그리고 태어날 아이의 이름까지 지어주십니다.  

11절, “...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다’는 뜻입니다.  


하갈이 광야로 도망간 것은 사래의 학대 때문이었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인 이유는 그녀가 주인의 아이를 임신한 후 여주인 사래를 멸시한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는 것을 막지 않았던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만은 그런 하갈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하갈에게 찾아가셔서 하갈이 살 수 있는 길과 하갈에게 미래에 대한 약속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옳고 그름이요,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중요한 것은 비록 죄인이라 할지라도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도, 하나님께서 시시비비를 가려서가 아니라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하갈은 사래에게로 돌아가서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그 이스마엘이 훗날 열두 아들을 낳게 됩니다. 이스마엘의 열두 아들은 오늘날 아랍인들의 조상들이 됩니다.  이 때문에 아랍인들은 이스마엘을 아브람함의 후사요, 자신들이야말로 아브라함의 적통이라고 주장합니다.  


12절은, ‘이스마엘’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오늘날 이스마엘의 후손들과 전 세계인들이 서로 치고 받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이 예언은 더 나아가 마지막 날에,  

이스마엘 후손들과 이스라엘의 후손들 사이에 일어날 아마겟돈 전쟁에 대한 예언이라고 성경학자들은 말합니다.  


3.  

오늘 본문에서 두 가지만 살펴보고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첫째는, 늘 먼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일 아담이 아내 하와의 말을 듣기 전에 하나님께 먼저 기도했다면 어땠을까요? 

만일 아브람이 아내 사래의 말을 듣기 전에 하나님께 먼저 기도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랬다면, 인류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지 모릅니다.  


아담은 하나님과 함께 에덴동산을 거닐 정도로 친밀한 관계였습니다.  

아브람 역시 하나님께서 직접 찾아오셔서 언약을 맺으실 정도로 친밀한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그들은 기도하는 것을 잊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 뜻을 묻고 구하는 것을 잊어버린 겁니다.  


그 결과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불행의 씨앗을 심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주어진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늘 기도의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어도,  

기도 없이 살아가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게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의 씨앗을 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은 우리를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하갈이 먼저 여주인 사래를 멸시했습니다. 그리고 사래의 학대를 받고는 광야로 도망갔습니다.  그녀가 고통 속에서 눈물 흘리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녀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하갈에게 살 길을 알려주시고, 그녀의 태 안에 있는 아이를 축복하시고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때 하갈은 하나님에 대하여 이렇게 고백합니다.  

13절,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 고 함이라”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를 눈동자처럼 지켜보십니다.  

우리가 옳아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선해서도 아닙니다.  

우리는 악합니다. 마음이 부패한 자들이요, 생각하는 것이 악한 자들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삶에서 어려움과 곤경을 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나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그래서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졸지도 않으신 채 우리를 살피십니다.  


하갈과 그의 태속에 있는 아이는 믿음의 계보 속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하갈과 그 태속에 있는 아이를 살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오, 긍휼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믿음의 계보 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니 우리들에 대해서 하나님은 어떠시겠습니까?  


하갈이 고통 중에 있을 때, 하나님은 하갈의 고통을 살피셨습니다.  

그래서 하갈의 고통을 축복으로 바꾸셨습니다.  

광야의 샘 곁에서 흘리는 하갈의 눈물을 기쁨으로 바꾸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우리의 눈물을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고통을 축복으로, 나의 눈물을 기쁨으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4.  

그러므로 오늘은 이렇게 기도합시다. 

‘주님, 늘 말씀과 기도보다 앞서지 않게 하소서. 그래서 불행의 씨를 심지 않게 하소서.’ ‘주님, 나의 실수와 어리석음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이뤄지게 하소서.’ ‘주님, 언제나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 되어 주소서. 

그래서 나의 고통을 축복으로, 나의 눈물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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