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기억하는 자가 됩시다 / 스 9:9-15
- Hoon Park

- 2025년 11월 16일
- 4분 분량
2025년 11월 14일(금)
1.
오늘 본문은, 어제 본문에 이어지는 <에스라의 기도>입니다.
“우리가 비록 노예가 되었사오나”(9절)로 시작합니다.
바벨론에서의 70년 포로 생활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은 죄악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바벨론에서 70년간 포로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그 종살이하는 중에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포로 생활하는 동안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9절 하반절, “... 바사 왕들 앞에서 우리가 불쌍히 여김을 입고 소생하여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게 하시며 그 무너진 것을 수리하게 하시며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에게 울타리를 주셨나이다”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그들의 죄악의 결과였습니다.
혼합주의 신앙과 삶의 거룩함을 잃어버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바벨론 느브갓네살을 통하여 심판하신 겁니다.
이는 하나님을 떠난 자들의 삶의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를 역사 속에서 미리 보여주신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 안에 네 가지를 이루십니다.
첫째, “소생하여”...
다시 회복시키셨습니다. 70년 만에 바벨론 포로에서 벗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신 겁니다.
둘째,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게 하시며”
무너진 성전을 세우게 하시고 무너진 예배를 회복하게 하셨습니다.
다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하신 것입니다.
셋째, “그 무너진 것을 수리하게 하시며”
삶의 터전과 도시의 무너진 곳을 다시 쌓게 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무너진 삶의 토대를 다시 회복시키신 겁니다.
넷째,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에게 울타리를 주셨나이다”
‘울타리’는 보호막입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에게 울타리를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는 울타리가 되어 주셨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소생하시는 분이요, 우리 안에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고 예배하게 하시는 분이요, 우리 삶의 무너진 곳을 수리하시는 분이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시는 울타리가 되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이런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여기에는 우리의 공로나 우리의 의가 없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그만큼 사랑하신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포로에서 해방된 것 자체가 큰 은혜였습니다.
그런데 다시 성전을 세우고, 무너진 삶의 터전을 세우고, 하나님이 울타리가 되시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은혜가 일상이 되자 그들은 은혜를 잊어버렸습니다.
10절입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렇게 하신 후에도 우리가 주의 계명을 저버렸사오니 이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 주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받은 은혜를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았어도 은혜를 잊어버린 자는, 주의 계명을 저버리는 자가 됩니다.
은혜는 기억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기억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만, 은혜를 잊은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삽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은혜를 잊어버린 겁니다. 그러니 에스라가 하나님께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2.
‘은혜’는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값없이 베풀어주시는 사랑이지만,
‘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먼저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릴 때 삶 속에 ‘죄’가 시작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서 또 다시 ‘죄’의 길로 들어선 겁니다.
11-12절은 은혜를 잊어버린 이스라엘이 ‘죄’의 길을 걸어가는 내용입니다.
죄의 길에서는 말씀을 따르지 않습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자기 생각과 경험을 따라 살아갑니다.
은혜를 잊어버린 이스라엘이 또 다시 “더럽고 가증한 일” 곧 우상 숭배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어기고 이방인들과 결혼을 통해서 섞인 자들이 되어서 삶의 거룩을 잃어버렸습니다.
‘짐승만 못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짐승도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어준 사람을 따릅니다.
짐승일지라도 은혜를 잊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은 은혜를 잊어버립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인간이 짐승보다 나은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짐승보다 못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죄와 죽음에서 구원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 삶에 무너진 것들을 다시 고치시고 세우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시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과거형이 아닙니다. 언제나 현재형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삶에 언제나 현재형인 것처럼,
우리 역시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삶이 언제나 현재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삶은 대체로 과거형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죄의 길을 걸어갑니다.
3.
그런데 기쁜 소식은, 하나님 은혜는 이런 우리의 죄악보다 더 크다는 것입니다. 13절입니다.
“우리의 악한 행실과 큰 죄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당하였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 죄악보다 형벌을 가볍게 하시고 이만큼 백성을 남겨 주셨사오니”
우리의 악한 행실과 큰 죄 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큽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은 죄악보다 형벌을 더 가볍게 하십니다.
우리가 지은 죄악 보다 형벌을 더 가볍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지은 죄악에 대하여 독생자이신 예수님에게 대신 형벌을 지게 하신 것입니다.
내가 지은 죄보다 형벌을 더 가볍게 하시는 것만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내가 지은 죄를 대신해서 독생자이신 예수님이 그 형벌을 대신 받게 하신 겁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은혜는 ‘값 없이’ 주신 것이지만, 결코 ‘값 싼 것’이 아닙니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아들의 피로 값 주고 산 것입니다.
은혜는 우리에게 조건 없이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지만,
결코 그 은혜는 값 싸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흘린 아들의 피 값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독일 신학자 본회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값 싼 은혜는 제자가 되지 않고도 제자의 축복을 누리려는 것이다. 그러나 값비싼 은혜는 우리를 십자가로 부른다.’
우리가 받은 은혜는 값 싼 은혜가 아닙니다.
세상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고, 살 수 없는 가장 값 비싼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아는 자는 예수님이 부르시는 십자가 앞으로 나아갑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우리는 ‘은혜 받았다’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받는 은혜를 ‘값 싼 은혜로만 여긴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 많으시고 은혜가 풍성하셔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결코 값 싼 은혜가 아닙니다. 그 은혜는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마치 돈 많은 부자가 가난한 자들에게 돈 몇 푼 쥐어주는 그런 은혜가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독생자 아들의 생명과 피로 값을 치르시고 베풀어주신 너무나 ‘값비싼 은혜’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어떤 은혜로 여기고 계십니까?
‘값 싼 은혜’입니까? ‘값비싼 은혜’입니까?
4.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첫 번째,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자들이 됩시다.
‘값 싼 은혜’가 아닙니다.
세상 그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너무나 ‘값비싼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는 너무나 ‘값비싼 은혜’인데,
오늘 우리는 그 은혜를 ‘값 싼 은혜’처럼 여기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은혜의 감동이 없습니다. 은혜의 눈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죄악보다 큽니다.
그 은혜는 너무나 값 비싼 은혜입니다.
우리가 이 은혜를 기억하며 사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두 번째,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됩시다.
내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값 비싼 은혜인지를 아는 자는 예수님을 따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말씀과 사명의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를 값 싼 은혜로 여기는 자들은, 자기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말씀과 사명의 십자가를 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따르지 않습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갑니다.
에스라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예입니다.
오늘 이 시대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그 예가 되고 있습니다.
적어도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우리라도,
너무나 값 비싼 은혜를 받은 자답게 자기를 부인하고, 말씀과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