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받을 자로 살아갑시다 /슥 8:14-23
- Hoon Park

- 2025년 8월 15일
- 5분 분량
2025년 8월 14일(목)
1.
어제와 오늘 본문은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고 말씀하신 아홉 가지의 내용입니다.
14-17절까지는 여섯 번째의 내용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뜻을 정하셨다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뜻을 정하시고, 땅에서 그 뜻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
14절에서는 하나님이 재앙을 내리시기로 뜻을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15절에서는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기로 뜻을 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재앙’과 ‘은혜’입니다.
14절을 보면, 하나님이 ‘재앙’을 내리시기로 뜻을 정하신 이유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격노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 다.
그런데 15절을 보면,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기로 뜻을 정하신 이유는 구체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재앙’은 우리가 죄악을 행한 삶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라면,
‘은혜’는 우리의 삶과는 상관없이 전적인 하나님의 사랑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재앙’은 하나님의 공의의 속성에서 나오는 것이요,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에서 나옵니다.
전에는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뜻하신 재앙대로 멸망과 70년간의 포로 생활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은혜 베풀기로 뜻을 정하신 대로, 은혜를 베풀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과거의 재앙은 지나갔고, 이제 은혜와 축복이 다가올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이제 은혜 받을 자들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은혜 받을 자들이 된 유다 백성들에게 그들이 “행할 일”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16-17절입니다.
“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너희는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마음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내가 미워하는 것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은혜 받을 자들이 행할 일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에 대해서 16-17절에서 네 가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진리를 말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거짓말(맹세)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둘째는 진실하게 행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마음에 서로 미워하고 해하려고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은혜는 거저 주시는 것입니다. 조건 없이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은혜 받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은혜 받을 자가 되면 우리가 행할 일은 있습니다.
구원 받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 받을 자가 되면 우리가 행할 일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행하지 않는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믿음’ 하나면 충분하지만, 그리스도인다워 지려면 말씀대로 살아가는 ‘행함’이 있어야 합니 다.
2.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고 말씀하신 일곱 번째 내용은 19절입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은 넷째달, 다섯째달, 일곱째달, 열째달에 금식을 행했습니다.
이들의 ‘금식’은 슬픔과 고통을 기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넷째달 금식한 것은 예루살렘 도성의 함락과 관련이 있습니다(렘 29:2, 52:6).
다섯째달 금식한 것은 느부갓네살이 성전을 불태운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왕하 25:8-9).
일곱째달 금식한 것은 총독 그달리야가 암살된 것을 기념하는 것이었습니다(왕하 25:23-25).
열째달 금식한 것은 예루살렘이 바벨론의 군대에 의해 포위하기 시작한 때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 모든 금식 절기는 바벨론 군대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멸망하게 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절기들은 모두 슬픔의 날이요, 아픔의 날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슬픔과 아픔의 날이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들”이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또한 주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슬픔을 기쁨으로, 아픔을 즐거움과 희락으로, 근심을 찬송으로 바꾸시는 분입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사야서 61장 3절의 말씀입니다.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 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 땅에 여호와께서 심으신 의의 나무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로 일컬음 받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슬픔과 아픔의 날이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들’이 되게 하시는 겁니다.
3.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고 말씀하신 여덟 번째 내용은 20-22절까지입니다.
하나님은 선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구원은 사람의 계획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온 열방을 향한 구원의 계획은 사람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십니다.
또한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구원하게 하시는 일들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선교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선교입니다.
20-22절은 이런 하나님의 선교가 드러납니다.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주민이 올 것이라”(20절).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22절)
하나님께서 19절까지는 예루살렘의 회복과 유다 백성들을 향한 은혜와 축복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20절 이하에서는 온 열방이 예루살렘으로 찾아와서 하나님을 찾고 은혜를 구하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 다.
여기에 온 열방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열방을 비추는 이방의 빛의 역할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이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자, 이방인들에게 멸망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예루살렘이 열방을 비추는 이방의 빛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회복하시고, 유다 백성들에게 은혜와 복을 베푸시는 목적입니다.
열방의 빛이 되게 하는 것이요, 열방을 복되게 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은혜와 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열방이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함입니다.
열방을 비추는 이방의 빛의 역할과,
열방이 주께로 나아와 예수님을 찾고 구원의 은혜를 받게 하도록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고 말씀하신 아홉 번째 내용은 이렇습니다.
23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그 날에는 말이 다른 이방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 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
이방인들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걸어가게 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택하신 유다 백성들만이 아닙니다.
아직 이 ‘우리’에 들지 않은 이방 사람들도 포함됩니다.
선교는 방향에 따라 두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구심적 선교(Centripetal Mission)와 원심적 선교(Centrifugal Mission)입니다.
구심적 선교는 찾아오게 하는 선교라면, 원심적 선교는 찾아가는 선교입니다.
구약에서는 찾아오게 하는 구심적 선교가 강조되고, 신약에서는 찾아가는 원심적 선교가 강조됩니다.
오늘 본문 23절은 구심적 선교가 이뤄지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반면, 예수님은 원심적 선교를 명하셨습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구심적 선교와 원심적 선교, 이 둘은 선교를 위해서 양자택일해야 하는 선택의 원리가 아닙니다.
상호보완적인 요소입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와 성도는 구심적 선교와 원심적 선교를 이뤄가는 선교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지막 바람이요, 하나님의 간절한 뜻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찾아오게 하는 공동체, 사람들에게 찾아가는 공동체,
이것이 예루살렘을 회복하시고, 유다 백성들에게 은혜와 복을 주시는 이유입니다.
또한 이것이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고, 구원 받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은혜와 복을 받게 하시는 이유입니다.
4.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첫 번째, 우리가 은혜 받을 자로 살아갑시다.
오랜 재앙이 지나간 뒤에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에게 선포하십니다.
“이제 내가 다시 예루살렘과 유다 족속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뜻하였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니라”(15절)
‘아멘, 주의 뜻이 우리에게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합시다.
우리는 은혜 받을 자들입니다.
은혜를 받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은혜 받을 자로서 우리가 ‘행할 일’은 있습니다.
진리를 말하고, 진실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거짓을 말하지 않고, 마음에 미움과 해하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은혜 받을 자로서, 마땅히 행할 일을 하며 사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두 번째, 하나님의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는 자들이 됩시다.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회복하시는 것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를 통해서 열방을 구원하시고 회복하시는 것입니다.
먼저 구원 받는 자가 되었다는 것은 열방이 구원 받는 자가 되게 하는 일에 힘써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이방을 비추는 열방의 빛이 되는 사명입니다.
이 사명이 처음에는 예루살렘과 유다 백성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자 하나님의 촛대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로 옮겨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함께걷는 교회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교회, 사람들을 찾아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끼리만 함께 걸어가는 교회가 아니라, 아직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세상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선교를 이루어 가시길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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