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우리의 소망과 우리가 힘써야 할 일 / 계 21:9-22:21

2025년 8월 2일(토)

1. 21장 19-27절까지는 요한이 ‘새 예루살렘’을 보고 기록한 내용입니다.

10절에 보면, 성령이 요한을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서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게 합니다.

17장 3절에서는, 성령이 요한을 데리고 광야로 가서 바벨론의 실체를 보게 하셨습니다.


광야에서는 유혹과 악이 판을 치는 바벨론의 실체를 보게 하셨고,

크고 높은 산에서는 새 예루살렘이 내려오는 것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성경에서 광야는 유혹과 악이 판을 치는 곳을 상징하나, 크고 높은 산은 하나님의 영광과 계시의 장소를 상징합니다.

예컨대,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탄으로부터 시험과 유혹을 받으셨지만, 변화산에서는 용모가 변화되는 하나님의 영광 을 받으셨습니다.


21장 11절부터는 ‘새 예루살렘’의 모습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크게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열둘’이라는 상징적인 숫자가 강조됩니다.

12절, ‘열두 문... 열두 천사... 열두 지파의 이름...’

14절, ‘열두 기초석...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

18-20절, ‘열두 개의 보석’

21절,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또, 새 예루살렘을 측량했는데 16절에 보면 “...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12 x 1000) 스다디온이요

17절,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12 x 12) 규빗이니...


7장과 14장에서 하나님의 구원 받은 백성들을 일컬어 ‘십사만 사천명(12 x 12000)’이라고 언급한 것처럼,

열둘’이라는 숫자는 하나님의 구원 받은 백성들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은 어느 특정한 장소나 지역이 아니라, 구원받은 하나님의 온전한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이 땅에 이루어질 온전한 교회(성도들)입니다.


이들은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이요,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보좌에 앉아 왕 노릇 하게 될 자들이요,

둘째 사망을 당하지 않고 새 하늘과 새 땅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자들입니다.


둘째는 ‘보석’이 강조됩니다.

11절,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18절,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19절,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19-20절에 열두 개의 보석 이름이 나열됩니다.)


열둘’이라는 숫자는 하나님의 백성의 완전한 수를 상징하는 것이라면,

보석’은 하나님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상징합니다.


새 예루살렘의 성곽과 성, 기초석이 온통 귀한 보석으로 되어 있다는 것은 곧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영광과 아름 다움을 드러낸다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셋째는 ‘하나님과 어린 양’이 강조됩니다.

22-27절까지를 보면, 새 예루살렘에는 두 가지가 없습니다.

하나는 건물로서의 성전이 없고, 또 하나는 해와 달 같은 빛이 없습니다.


새 예루살렘에 건물로서의 성전이 없는 이유를 22절 하반절에서 말씀합니다.

...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또한 새 예루살렘에 해나 달 같은 빛이 없는 이유를 23절에서 말씀합니다.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께 온전히 구원받은 백성들이요, 온전한 교회입니다.

그 안에는 더 이상 건물로서의 성전이 필요 없습니다. 피조물인 해나 달의 빛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어린 양이 성전이시오, 모든 이를 비추시는 참 빛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가운데에는 새 예루살렘(구원 받은 백성들)이 있습니다.

그 새 예루살렘의 중심에는 성전이요, 참 빛이 되신 하나님과 어린 양이 계십니다.

25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성문이 닫히지 않습니다. 밤이 없습니다.

참 빛이신 하나님과 어린 양이 새 예루살렘 성 중심에 빛을 비추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빛은 영원토록 꺼지지 않 습니다.

그래서 천사들과 성도들은 쉼 없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예배가 멈추지 않습니다. 바로 이곳이 새 예루살렘입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고, 우리 마음에 어린 양의 빛이 비추이면 우리의 마음의 문이 닫히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에 어둠과 밤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어린 양을 경배하게 됩니다. 우리 삶에 찬양과 예배가 멈춰지지 않게 됩니다.


2.

22장 1-5절까지는 에덴동산의 회복을 말씀합니다.

이는 에스겔서 47장의 내용과 비슷합니다.


생명수의 강이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에서부터 흘러나옵니다(22:1).

그 물이 흘러 강 좌우에 있는 생명나무들이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합니다(2절)


에스겔 47장에서도, 성전 아래에서 강물이 흘러나와 그 강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죽은 땅과 생명이 되살아나고,

나무 들은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됩니다(겔 47:1-12).


이것이 에덴동산의 회복입니다.

생명이 되살아나고, 치유가 일어나고, 무너진 것이 다시 세워지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새로 회복된 에덴동산에는 두 가지가 없습니다.

다시 저주가 없으며...”(3절), “다시 밤이 없겠고...”(5절)

다시 미혹하는 자도 없고, 다시 죄를 지을 일도 없고, 다시 저주와 어둠에 빠지는 일도 없습니다.

이것이 온전한 회복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에서도 회개할 때 회복의 은혜가 주어집니다.

그러나 이 회복은 불완전합니다.

죄 용서를 받고도 다시 죄를 짓습니다. 어둠에서 건져냄을 받고도 다시 어둠에 빠집니다.


그러나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때,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질 때,

그때는 온전한 회복이 일어납니다. 온

전한 회복은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게 하고, 다시는 저주와 어둠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하나님 나라가 임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하나님 나라가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이미와 아직’ 사이에 살아가는 우리들이 힘써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3. 22장 6절 부터는 마지막으로 ‘이미와 아직’ 사이에 살아가는 성도들이 힘써야 할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첫째, ‘주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22:10,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미혹하는 사탄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사탄은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사탄의 미혹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삶을 살게 만들고,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을 떠나게 만들거나, 혼합주의 신앙을 갖게 만듭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혼합주의 신앙인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 삶의 기준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 기준이 ‘말씀’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고, 말씀을 지키며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는 길은 좁은 길이요, 좁은 문입니다(마 7:13-14).

그러나 좁은 길,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가 영생의 길을 걷는 자요, 복 있는 자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완성되는 그날까지 우리가 순결한 믿음으로,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는 자들이 됩시다.


둘째,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본문에 세 번이나 예수님이 곧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7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12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20절, “...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예수님이 세 번이나 반복을 통해서 강조하시는 겁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신 대로 속히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하고 깨어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예배를 드릴 때마다 성찬식을 거행했습니다.

예배의 핵심은 예수님을 기억하는 것이었습니다.

성찬식을 마칠 때 모든 성도들이 마지막으로 드렸던 기도는 “마라나 타”였습니다.

마라나 타’는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20절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를 기다리는 자들입니다.

마라나 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간절히 예수님의 오심을 사모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 하나님의 나라는 이곳에 완성될 것입니다.

그 중심에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올 것입니다.

믿음을 순결하게 지킨 믿음의 사람들이 그곳에 예수님과 함께 거하게 될 것이요,

그곳에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더 이상 밤도 없고 해와 달 같은 빛도 없을 것입니다. 참 빛이신 예수님의 빛이 온 누리에 환하게 비추이게 될 것입 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사모하는 자들이 됩시다.

우리가 미혹당하지 않도록 말씀에 대한 선명한 기준을 가지고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는 자들이 됩시다.


4.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첫 번째, 우리 삶의 예배가 멈추지 않도록 기도합시다.

새 예루살렘에는 성문이 닫히지 않고, 밤이 없습니다.

그 중심에 참 빛이신 예수님의 빛이 환하게 비추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성도들은 어린 양을 찬양하고 경배합니다. 하늘의 천사들도 장로들도 모두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찬양과 경배, 예배가 멈추지 않습니다.


새 예루살렘은 구원 받은 성도들을 상징합니다.

우리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고, 예수님의 빛이 비추이는 자는 마음의 문이 닫히지 않고, 마음에 어둠이 없습 니다.

그래서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게 됩니다. 주님을 향한 예배가 멈춰지지 않게 됩니다.

우리 삶에 예배가 멈추지 않도록, 우리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고 예수님의 빛이 비추이길 기도합시다.


두 번째,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며 말씀을 지키는 자가 됩시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임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완성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와 아직’ 사이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내가 속히 오리라’고 세 번이나 강조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마라나 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리는 자들이 됩시다.

그러나 미혹함이 많이 일어날 것입니다.

사탄은 한 사람이라도 더 미혹하려고 발악을 할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만 미혹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도 미혹을 당합니다.


우리가 미혹 당하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선명한 기준을 가지고 살아갑시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가 됩시다.

끝까지 이마와 손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아니하고, 믿음의 정결함을 지켜가는 자가 됩시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우리 모두 이런 복이 있는 자가 되길 기도합시다.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전능하신 하나님 / 창 17:1-27

2026년 1월 23일(금)  1.   어제 하갈에게 하나님은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오늘 아브라함에게는 ‘전능의 하나님’, 곧 ‘엘샤다이’로 나타나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신 때는 아브람의 나이 ‘구십구 세 때’였습니다.  1절,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

 
 
 

댓글


교회로고 (White)_edited_edited_edited_edited

함께 걷는 교회  T. (213) 598-9130
email: walkinunitychurch@gmail.com 
6102 Stanton Avenue, Buena Park, CA90621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