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기도 / 요 17:1-16
- Hoon Park

- 6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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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27일(금)
1.
17장은 예수님이 이 땅에서 마지막으로 드린 기도 내용입니다.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시며 기도를 시작하십니다.
기도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기도는 ‘땅’을 바라보는 시간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늘 사람과 땅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기도는 ‘사람과 땅’을 바라보던 나의 시선을 돌려 ‘하나님과 하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사람을 바라보거나, 둘러싼 삶의 환경만 바라보면, 절망적이고 어둡고 답이 없어서 깊은 한숨만 나옵니다.
그러나 나의 시선을 돌려 ‘하나님과 하늘’을 바라볼 때,
절망이 소망으로, 어둠이 빛으로, 근심과 걱정이 찬송과 기쁨으로, 두려움과 불안함이 평안함으로 바뀌게 됩니다.
예수님은 시선을 돌려 하늘을 바라보십니다. 아버지를 바라보십니다.
그리고 이같이 기도를 시작하십니다.
“... 아버지여 ...”
예수님은 기도하실 때 언제나 ‘아버지여’라고 부르며 기도를 시작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것이 주기도문입니다.
그 주기도문의 시작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입니다.
한국어 성경은 ‘아버지’ 앞에 ‘하늘에 계신’이라는 수식어가 먼저 나오지만,
원어 성경인 그리스어 성경에는 ‘아버지여’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단어 ‘파테르 Πάτερ’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 굳이 다른 미사어구나 화려한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됩니다.
단순하지만 마음을 담아 “아버지여” 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부르며 기도해도 됩니다.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아버지’이십니다.
2.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세 가지를 기도하십니다.
첫째, ‘영광’을 위한 기도입니다.
1절 하, “...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이는 예수님의 기도의 핵심입니다.
이제 곧 있으면 예수님은 붙잡혀 가십니다.
채찍과 조롱을 당하신 후에 너무나 고통스럽고 끔찍한 십자가 죽음을 당하시게 됩니다.
여러분이 이런 상황이라면 어떤 기도를 먼저 하시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 죽음을 피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으십니다.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니다.
‘아들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란,
요한복음 12장에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을 당하시는 것’입니다.
십자가 죽음이 아들에게는 영광이 됩니다.
그 이유는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썩어지는 한 알의 밀알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영광’은 내가 살려고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영광’은 다른 사람들을 살리려고 내가 희생하는 것입니다. 곧 한 알의 밀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을 피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지 않고,
오히려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아들을 영광되게 하셔서, 아들이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 주소서’라고 간구하신 겁니다.
비록 자신은 죽을지언정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살아난다면,
그것이 예수님에게는 영광이요 또한 아버지께도 영광을 돌리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시는 겁니다.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요 6:40).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에서 첫 번째 질문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입니다.
그 대답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서 이같이 말씀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갈 때 가장 즐거운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간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예수님처럼 한 알의 밀알이 되는 것입니다.
영혼을 살리는 일에 한 알의 밀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일에 한 알의 밀알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일에 한 알의 밀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나에게 영광이요, 또한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예수님은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나를 영화롭게 하사 나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는 자들이 됩시다.
3.
예수님이 기도 하신 내용 둘째는, ‘하나 됨’을 위한 기도입니다.
11절 하반절입니다.
“...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영광’을 위한 기도에 이어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하나됨’을 위한 기도를 하십니다.
삼위 하나님이 하나이신 것처럼, 우리의 ‘하나됨’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생의 끝자락에 우리를 위한 중보기도를 하시면서,
우리의 ‘하나 됨’을 위해서 기도하셨다는 것은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서로 하나 되는 것이 어려운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만큼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이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일생을 같이 산 부부도 하나 되는 것이 어렵습니다.
부모와 자식도, 형제간에도 서로 하나 되는 것이 어렵습니다.
하물며 일주일에 한두 번 교회에서 만나는 성도들이 서로 하나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런데 우리의 ‘하나 됨’이 너무나 중요하기에, 예수님은 우리의 ‘하나 됨을 위해서’ 중보하신 겁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하나 됨’을 위하시는 분이라면, 반대로 사탄은 우리의 ‘하나 됨’을 깨뜨리는 자입니다.
공동체 안에는, ‘문제 제기자’가 있고 ‘문제 해결자’가 있습니다.
‘문제 제기자’는 많습니다. 그러나 ‘문제 해결자’는 적습니다.
건강한 공동체는 ‘문제 제기자’는 점점 줄어들고, ‘문제 해결자’가 점점 많아지는 공동체입니다.
‘문제 제기자’가 많으면 서로 갈등하고, 분열되고,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 ‘하나 됨’을 깨뜨립니다.
그러나 ‘문제 제기자’보다 ‘문제 해결자’가 많아질 때, 점점 서로 ‘하나 됨’을 이뤄가게 됩니다.
우리는 ‘문제 제기자’가 아니라, ‘문제 해결자’가 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 되자’는 구호를 외친다고 해서 ‘하나 됨’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하나 됨’을 이룰 수 있을까요?
23절 하반절입니다.
“...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하나 됨’은 사랑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문제 제기자’에서 ‘문제 해결자’가 되어가는 비결은 ‘사랑’입니다.
부모는 가정에서 문제가 생길 때, 문제 제기자가 아니라, 문제 해결자가 되려고 합니다.
가족과 가정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공동체를 사랑할 때, 문제 제기자가 아니라 문제 해결자가 되려고 합니다.
그 사랑이 결국 공동체를 서로 하나 되게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생의 마지막 순간에 우리의 하나 됨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서로 사랑하기를 기도합시다. 그리고 우리의 하나 됨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우리가 사랑으로 문제 해결자가 되어가고, 그 사랑으로 서로의 하나 됨을 이뤄가도록 기도합시다.
4.
예수님이 기도 하신 내용 셋째는, ‘보전(보호와 지킴)’을 위한 기도입니다.
11절, “...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
12절, “...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
15절,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건져 주셔서, 우리의 생명을 보전하셨습니다.
그래서 또 다시 우리가 죄와 악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를 보전해 달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성도는 늘 사탄과 악한 영들의 공격을 받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늘 영적전쟁이 일어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마 10:16)
세상에는 우리를 물어뜯으려는 이리가 가득합니다.
베드로 전서 5장 8절에서도 이같이 말씀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사탄은 왜 이렇게 성도들을 미워하고 공격하는 걸까요?
그 이유가 14절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들이요,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끌어 가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장 47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그래서 하나님께 속한 자, 곧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만듭니다.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못하도록 시험에 들게 만들고, 악에 빠지게 만듭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악으로부터 보전하소서”라고 기도하신 이유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에게 주기도문을 통해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그러므로 예수님이 우리를 보전하여 달라고 기도하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 교회와 성도들을 보전하고 지켜달라고 기도합시다.
5.
오늘은 예수님의 기도를 본 받아 이렇게 기도합시다.
첫째, ‘영광’을 위한 기도입니다.
‘주님, 우리를 영화롭게 하사 우리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둘째, ‘하나됨’을 위한 기도입니다.
‘주님, 우리를 주님의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옵소서.’
셋째, ‘보전’을 위한 기도입니다.
‘주님, 우리를 죄와 악으로부터 보전하고 지켜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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