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자가 됩시다 / 대하 27:1-8
- Hoon Park

- 2025년 10월 19일
- 5분 분량
2025년 10월 17일(금)
1.
요담은 남유다의 열한 번째 왕입니다.
요담의 아버지는 웃시야입니다.
웃시야는 강성해지자 마음이 교만해져서 해서는 안될 일을 하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향로를 들고 직접 분향하려고 했던 일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웃시야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서 이마에 나병이 걸리게 됩니다.
이후 숨을 거둘 때까지 10년 동안 별궁에 갇혀 지내게 되고, 뒤를 이어 아들 요담이 유다의 왕이 됩니다.
요담은 25세의 나이에 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6년 동안 예루살렘에서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오늘 본문 2절은 요담에 대한 한 줄 평가입니다.
“요담이 그의 아버지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나 여호와의 성전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고 백성은 여전히 부 패하였더라”
역대기서에서 왕들에 대한 평가는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이루어집니다.
첫째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왕이었는가? 즉, 하나님과의 관계성에 대한 평가입니다.
둘째는 백성들에게 어떤 왕이었는가? 즉, 사람과의 관계성에 대한 평가입니다.
역대기서는 요담에 대해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라고 평가합니다.
요담이 하나님을 믿고 살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언급합니다.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지 아니하였고’...
이는 요담이 여호와 신앙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지 않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버지 웃시야처럼 성소 안으로 들어가는 교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요담은 아버지 웃시야가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자기 마음대로 향로를 들고 분향하다가 문둥병에 걸려서, 남은 인생을 별궁에 갇혀 지내는 것을 10년 동안 생생하게 지켜보았습니다.
요담은 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을 겁니다.
그래서 그는 유다의 왕이 된 후, 하나님 앞에서 아버지 웃시야와 같은 교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요담은 하나님 앞에서 끝까지 겸손한 왕이었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요아스-아마샤-웃시야 왕은 처음에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나중에는 교만하여 변질된 자들이었습니다. 처음은 좋았지만 끝이 좋지 않은 왕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요담은 처음뿐만 아니라, 끝까지 좋은 왕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으며 살았습니다.
2.
그런데, 두 번째 평가 기준인 ‘백성들에게 어떤 왕이었는가’에 대해서는, ‘백성은 여전히 부패하였더라’고 평가합니다.
역대기서는 백성들이 부패한 내용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병행구절인 열왕기서를 보면, 백성들의 부패한 내용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열왕기하 15장 35절입니다.
“오직 산당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이 아닌 산당에서 제사장 없이 자기들 마음대로 제사 드리고 분향했습니다.
역대기서는 이를 ‘백성들이 여전히 부패하였다’라고 평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요담은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 드리며 분향하는 것을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당연히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요담은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는 것을 알면서도 방치했을까라는 의문이 들게 합니다.
요담의 아버지 웃시야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장 80명이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향로를 들고 하나님께 분향을 하려다가 문둥병을 얻었습니다.
이것을 보았기에 요담 자신은 그가 죽는 날까지 아버지 웃시야와 같은 망령된 행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을 법도 한데,
요담은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한 마디로, 백성들의 믿음은 돌보지 않은 것입니다.
요담은 하나님 앞에서는 정직히 행한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 만큼은 믿음을 지키며 살아간 사람입니다.
그러나 자기는 믿음을 지키며 살았지만, 백성들의 믿음은 돌보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영적 리더는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요?
리더십에 관한 수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각 책들마다 리더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내립니다.
리더십에 관한 거의 모든 책들은 한결같이 ‘리더는 어떤 지위나 직분, 책임을 맡은 지도자들’이라는 정의를 내립니 다.
그런데 선교신학자인 로버트 클린튼 교수는 리더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합니다.
‘리더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다.’
리더는 단순히 어떤 지위나 직분, 책임을 맡은 자가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곧 리더이다’라는 이야기입니다.
왕의 자리는 리더의 자리입니다.
왕은 백성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 왕이 백성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왕이라는 직책을 가진 사람일뿐 결코 리더 는 아닌 것입니다.
요담은 유다의 왕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행할 정도로 자신의 믿음을 지킨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 지내며 분향하는 부패한 삶을 살도록 방치했습니다.
요담은 백성들에게 믿음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 왕이요,
그는 리더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리더의 역할을 못한 왕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직분을 받느냐도 중요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좋은 영적인 리더가 되는 것입니다.
직분이 주어졌다고 해서 저절로 리더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믿음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될 때 비로소 리더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직책이나 직분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할지라도,
누군가에게 믿음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역시 리더입니다.
3.
‘리더는 믿음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다’라는 리더의 정의는 성경적입니다.
창세기 1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제일 먼저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겠다’는 축복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을 통하여 복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단지 아브라함을 복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땅의 모든 족속이 하나님 나라의 복을 받도록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리더로 삼으신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하신 목적도 마찬가지입니다.
출애굽기 6장 7절입니다.
“너희는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또, 출애굽기 7장 5절입니다.
“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하시는 것은, 단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내는 것만이 목적이 아닙니다.
먼저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를 알게 하기 위해서’요, 나아가 ‘애굽 백성들과 온 열방에 이르기까지 여 호와를 알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겠다’와 같은 표현이 출애굽기에 반복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온 열방에 하나님을 알게 하는 일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열방의 리 더로 삼으신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목적도 먼저는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나아가 우리로 하여금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 우리를 위해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는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복음을 믿는 우리의 사명은 열방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는 자가 되는 일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열방의 리더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담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믿음을 지킨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에게는 왕으로서 아무런 믿음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리더로서 직무유기한 왕이었습니다.
이런 요담을 오늘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요담은 예수를 믿고 복음은 붙들고 살았지만, 결코 다른 사람들에게는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요담은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노력했지만,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일깨우는 데는 무관심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요담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삶을 살려고 노력은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아가도록 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스스로 리더로서의 역할을 포기한 것입니다.
요담은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는 정직히 행하였다 할지라도,
백성들에게는 아무런 신앙의 영향력을 끼치지 않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왕이었습니다.
오늘 요담에 대해서 기록된 이 짧은 평가를 통해서,
하나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 교회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른 믿음을 지키며 사는 자가 될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 믿음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사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4.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첫 번째,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사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는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데서 부터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영생의 삶을 살아가길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식으로만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삶 속에서 날마다 새롭게 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생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날마다 새롭게 알아가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으며 사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두 번째, 우리가 세상 속에서 리더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시다.
요담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었으나, 리더로서의 역할을 못했습니다.
백성들이 산당에서 자기 마음대로 제사하고 분향하도록 방치한 것입니다.
리더는 단순히 직분자가 아닙니다. 리더는 사람들에게 믿음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입니다.
복음으로 인도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을 바르게 믿도록 돕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두 세상 속에서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하는 일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리더의 사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날마다 새롭게 알아가고,
세상 속에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에 믿음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하나님 나라의 리더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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