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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우선순위를 바르게 합시다. /슥 2:1-13

1. 오늘 본문은 스가랴가 본 여덟 개의 환상 중에 세 번째, <측량줄을 든 사람> 환상입니다.

1장 16절에서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먹줄’이 쳐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는 한 사람이 ‘측량줄’을 들고 예루살렘 성벽을 측량하러 갑니다.

먹줄’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상징입니다.

반면, ‘측량줄’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상징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벽이 없었기에, 성전 재건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주변의 민족들이 쉽게 쳐들어와서 성전 재건을 방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전 재건 사업이 멈춰진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어떤 이들은 성전 재건을 방해받지 않고 하려면 먼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해야 한다고 말했을 겁니다.

모든 일에는 언제나 순서가 중요합니다.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필요는 ‘성전’ 보다 ‘성벽’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적이고 영적인 필요는 ‘성벽’보다 ‘성전(예배)’을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언제나 신앙적이고 영적인 필요와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필요 사이에서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고 살아야 할지 갈등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앙적이고 영적인 필요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습니다.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필요를 삶의 우선순 위에 두고 살아갑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은 신앙적이고 영적인 필요를 우선순위에 두었습니다.

그래서 ‘성벽’을 재건하는 것보다 먼저 ‘성전’을 재건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그런데 외부의 적대적인 방해로 인해 성전 재건은 답보 상태에 빠진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필요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말이 더욱 힘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스가랴에게 환상을 통해서 먼저 보여주신 것은 ‘먹줄’이었습니다.

1:16, “... 예루살렘에 먹줄이 쳐지리라...

‘먹줄’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시겠다는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한 사람이 “측량줄”을 들고 예루살렘 성벽을 측량하러 가는 환상을 보여주신 겁니다.

‘측량줄’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과 관련한 상징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할지를 명확하게 보여주신 겁니다.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필요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보다 중요한 것은 신앙적이고 영적인 필요입니다. 신앙적이고 영적인 필요가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필요보다 우선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믿음의 삶은 결코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필요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삶은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필요 보다 신앙적이고 영적인 필요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을 우선순 위에 두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예수님도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2. 한 사람이 ‘측량줄’을 들고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측량하러 길을 떠났습니다.

그때 스가랴와 함께 있던 천사가 다른 천사를 불러 측량줄을 가지고 간 사람을 뒤쫓아 가서 성벽을 측량할 필요가 없음을 알리라고 합니다(4절).

성벽을 측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지금은 성벽을 세울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로 두 가지를 말씀합니다. 4-5절입니다.

이르되 너는 달려가서 그 소년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예루살렘은 그 가운데 사람과 가축이 많으므로 성곽 없는 성읍이 될 것이라 하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


성벽을 세울 필요가 없는 첫 번째 이유는, 예루살렘 성읍이 사람과 가축으로 넘쳐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 안에 사람과 가축으로 발 디딜 틈이 없게 되어서 성벽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회복과 축복’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이 직접 ‘불 성벽’이 되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를 의미합니다.


많은 이들이 신앙적이고 영적인 필요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필요를 더 중요시여기며 살아갑니다.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필요가 채워지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두려워합니다.


성벽을 먼저 세워야만 성전을 안전하게 세울 수 있다고 유다 백성들은 생각했을 겁니다.

그래서 신앙적이고 영적인 필요를 우선시 하는 사람들의 말보다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필요를 우선시하는 사람들의 말이 더 힘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스가랴에게 ‘성벽’ 보다 ‘성전’ 세우는 것, 곧 신앙적이고 영적인 필요가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필요 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세 번째 환상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겁니다.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튼튼한 성벽을 세우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루살렘에 사람과 가축이 넘쳐나서 성벽을 세울 필요가 없게 하시고, 나아가 하나님이 직접 불 성 벽이 되어주실 것을 계획하신 겁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제한합니다. 자기 생각으로 하나님을 가두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생각한 대로 되지 않으면, 쉽게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예루살렘 성전 재건하는 일이 중단 된 외적인 이유는 주변 민족들의 적대적인 방해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의 방해를 막을 수 있는 튼튼한 예루살렘 성벽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루살렘 성벽을 세우는 일은 너무나 시급하고, 절실한 일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스가랴에게 보여주신 세 번째 환상을 통해서 성벽을 세울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그들을 지키는 불 성벽이 되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지금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필요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혹시 그것들 때문에 신앙적이고 영적인 필요를 등한시하거나 게을리 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의 필요가 되시고,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필요보다 신앙적이고 영적인 필요를 우선시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시편 127편 1절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신앙적이고 영적인 필요를 채우는 일을 게을리 하거나 등한시하지 마십 시오. 하나님이 나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요,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3. 6-9절까지는 북방 땅과 바벨론 성에 포로로 끌려가 있는 백성들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6절, “오호라 너희는 북방 땅에서 도피할지어다”

7절, “바벨론 성에 거주하는 시온아 이제 너는 피할지니라”


‘북방 땅’은 북이스라엘이 멸망당하여 흩어진 땅이요, ‘바벨론 성’은 남 유다가 멸망당하여 포로로 끌려간 땅입니다.

그 땅에서 ‘도피할지어다. 피할지어다’라고 하시는 말씀은, 사로 잡혀간 땅에서 살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두 예루 살렘으로 돌아오라는 말씀입니다.

그 북방 땅과 바벨론 성은 이제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혼합주의 신앙에 물들었던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하나님께서 이방민족을 통해서 멸망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을 온 세계에 흩으셨습니다.

6절 하반절에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 내가 너희를 하늘 사방에 바람 같이 흩어지게 하였음이니라...


그런데 이제 때가 되어 하나님이 흩어진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다시 모이게 하십니다.

그 성은 하나님이 회복과 축복이 흘러넘치는 곳이요, 하나님이 직접 불 성벽이 되어 주시는 곳입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멸망시켰던 이방 민족은 회복이 없는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온 세계에 흩어져 있는 택한 백성들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출애굽 때를 생각나게 합니다.

북방과 바벨론 성에 끌려가 있는 택한 백성들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라는 말씀은 제 2의 출애굽을 의미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머무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에게 속한 나라요, 하나님의 백성 이 되는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한 번 북방과 바벨론 성에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동일한 언약을 맺겠다고 약속하십니다.

10-11절입니다.

“... 이는 내가 와서 네 가운데에 머물 것임이라. 그 날에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요 나는 네 가운데에 머물리라 ...


그 날에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라고 하신 말씀에 주목해 봅시다.

출애굽할 때 수많은 잡족이 이스라엘과 함께 출애굽해서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 되었습니다(출 12:38).

마찬가지로 북방과 바벨론 성에 있는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선교하시는 분이요, 하나님의 관심은 온 열방을 구원하시는데 있음을 드러내시는 겁니다.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필요를 채우려고 신앙적이고 영적인 필요를 등한시하며 게을리 하는 자들은 점점 하나님을 떠 나 삽니다. 하나님과 말씀에 사로 잡혀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의미하는 애굽과 바벨론에 사로 잡혀 삽니다.

그런데 애굽과 바벨론으로 상징되는 세상을 떠나 이제 하나님이 계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우리를 진정으로 회복하시고 복을 주시며, 우리를 지키시기 위하여 친히 불 성벽이 되어주시는 하나님께로 우리의 몸과 마음이 온전히 돌아와야 합니다.

주변 사람들을 데리고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돌아온 자들을 자기 백성 삼으시고, 그 가운데 머무실 것입니다.


4.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첫 번째, 삶의 우선순위를 바르게 정하고 살아갑시다.

우리에게는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필요와 신앙적이고 영적인 필요가 있습니다.

이 둘 다 우리에게는 다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삶의 우선순위를 바르게 정하는 것입니다.


대게는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필요를 삶의 우선순위에 두고 살아갑니다.

상대적으로 신앙적이고 영적인 필요에 대해서는 게을리 하고 등한시 합니다.

그러다가 점점 하나님을 떠나가게 되고, 세상 애굽과 바벨론에 사로잡힌 자가 됩니다.


바른 신앙은 신앙적이고 영적인 필요를 삶의 우선순위에 두고 사는 것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성벽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을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삶의 우선순위를 바르게 정하고 살아가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두 번째, 내 생각 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가 됩시다.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은 모두 돌로 만든 튼튼한 성벽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성벽이 필요하지 않도록, 사람과 가축이 넘쳐나는 복을 주시고, 나아가 하나님이 직접 불 성벽 이 되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과거 예루살렘이 바벨론에게 멸망당했던 것은 예루살렘 성벽이 약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예루살렘을 떠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성전 재건하는 일에 외부의 방해로 인해 중단된 것은 예루살렘 성벽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이 실제적이고 현실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필요를 채웠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움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성벽이 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무너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나를 지켜줄 수 있는 튼튼한 성벽을 세울 때 내가 안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시고, 하나님이 나의 불 성벽이 되어 주셔야 안전합니다.

그러니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가 됩시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어주시고, 하나님이 나의 가운데 거하시며,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는 불 성벽이 되어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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