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좋은 자가 됩시다 / 대하 26:1-23
- Hoon Park

- 2025년 10월 19일
- 5분 분량
2025년 10월 16일(목)
1.
오늘은 유다의 열 번째 왕, 웃시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웃시야는 16세에 왕위에 올라서 52년 동안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처음 25년 동안은 아버지 아마샤와 공동으로 통치를 했고,
또한 후반부 10년은 아들 요담과 공동으로 통치를 했습니다.
먼저, 4절은 웃시야에 대한 한 줄 평가입니다.
“웃시야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웃시야도 처음에는 아버지 아마샤처럼 하나님을 믿으며 살았다는 뜻입니다.
웃시야가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한 것은 그 아버지 아마샤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5절입니다.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
스가랴 선지자는 이사야 선지자와 같은 시기에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웃시야는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 선지자를 곁에 두었습니다.
웃시야는 아버지 아마샤와 25년간 공동 통치를 했습니다.
그때 아버지 아마샤는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부터 마음이 교만해져서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 교만 때문에 자기 분수를 모르고 북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였다가 결국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이 북이스라엘에 의해서 초토화되었습니다.
웃시야는 이것을 생생하게 지켜보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웃시야가 곁에 둔 사람이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 였습니다.
스가랴는 웃시야에게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왜 아마샤가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했는지,
왜 예루살렘과 성전이 북이스라엘에 의해 도륙을 당해야만 했는지,
웃시야는 스가랴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을 겁니다.
그리고 스가랴가 사는 날 동안에는 웃시야가 열심히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살았던 겁니다.
그런 웃시야에게 하나님께서 형통한 복을 주셨습니다.
고난과 역경이 유익이 된 자들이 있습니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고난과 역경 자체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 바르게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와 같은 사람의 도 움을 받아야 합니다.
이런 스가랴와 같은 사람을 오늘날에는 ‘영적인 멘토’라고 부릅니다.
누구에게나 멘토가 필요합니다. 목사인 저도 당연히 멘토가 필요합니다.
사람은 아무리 신앙이 깊어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옆에서 돕는 멘토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겪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도록 도와주고, 나의 신앙이 자라가고 성숙해지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멘토입니다.
웃시야에게는 이런 멘토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와 같은 멘토가 사는 날 동안에는 웃시야가 하나님을 찾는 자가 되었고, 그 결과 하나님이 주신 형통의 복을 받았습니다.
2.
6-15절까지는 하나님께서 웃시야에게 주신 형통의 복에 대한 기록입니다.
7절에 “하나님이 그를 도우사...”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15절에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짐이었더라”로 끝이 납니다.
웃시야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았는데, “기이한 도우심”을 받았습니다.
이는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는 행할 수 없는 하나님의 큰 도우심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8절 하반절을 보면, “웃시야가 매우 강성하여 이름이 애굽 변방까지 퍼졌”습니다.
15절 중반절에도, “... 그의 이름이 멀리 퍼짐”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웃시야는 하나님의 큰 도우심을 받아서 강성해지고, 그의 명성이 멀리 퍼져나가는 복을 받은 겁니다.
웃시야가 얼마나 강성해지고, 명성이 멀리 퍼져나갔는지 구체적으로 세 가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째, 해외 무역이 활성화 되었습니다(2, 6절).
웃시야가 에돔에 속한 홍해 북쪽 해안에 ‘엘롯’이라는 항구를 건축했습니다(2절).
‘엘롯(랏)’은 역사적으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을 쳤던 에돔 땅에 속한 지역입니다(신 2:8). 솔로몬 때, 엘롯 근처에 있는 에스온게벨을 건축해서 홍해를 따라 아라비아, 아프리카, 인도 등의 무역로를 개척했 었는데, 웃시야는 엘롯을 건축해서 홍해 무역로를 개척한 것입니다.
또한 블레셋의 다섯 성읍에 속한 가드와 아스돗 성벽과 야브네 성벽을 허물고, 아스돗 땅에는 새로운 성읍을 건축하 였는데, 아스돗은 지중해를 바라보고 있는 성읍입니다(6절).
솔로몬은 두로 왕 히람의 도움을 받아 홍해에 에시온게벨을 건축해서 홍해 무역을 시작하고,
또 히람의 도움을 받아 지중해 무역을 했었는데,
웃시야는 ‘하나님의 강력한 도우심으로’ 에돔에 속한 엘롯을 건축해서 홍해 무역을 행하고,
블레셋에 속한 아스돗을 건축해서 지중해 무역을 하게 된 것입니다.
둘째는, 국내 경제적 틀이 닦여졌습니다(10절).
웃시야는 광야에 망대를 세우고 물웅덩이를 많이 파서, 고원과 평지에 가축을 기르게 했습니다.
또한 웃시야는 농사를 좋아했는데 여러 산과 좋은 밭에는 농부와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들을 두게 했습니다.
그래서 국내 경제적인 틀을 닦았습니다.
셋째는, 군사적으로 강대했습니다(12-15절 상반절).
이천 육백명의 장수들(족장)과 삼십만 칠천오백 명의 용사들이 “건장하여 싸움에 능하여 왕을 도와 적을 치는 자”(13절)일 정 도로 군사적으로 강대했습니다.
이처럼 웃시야가 하나님을 찾고 가까이 하는 삶을 살자,
하나님께서 웃시야에게 해외 무역, 국내 경제, 군사적으로 강성해지는 복을 주신 것입니다.
이 때문에 그가 부강했고, 그의 명성이 멀리까지 퍼져나간 것입니다.
3.
웃시야는 정치, 경제, 군사적인 면에 있어서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 아마샤처럼 그의 마음도 교만해집니다.
16절입니다.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웃시야가 강성해지자 마음이 교만해졌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그가 스스로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는 악을 하나님께 지은 겁니다.
향단이 있는 곳은 성소 안입니다.
성소는 오직 하나님이 택하신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요,
그들만 분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웃시야가 마음이 교만해지자, 성소에 들어가서 직접 향단에 분향하려 한 것입니다.
이때 제사장 아사랴가 용맹한(용감한) 제사장 80명을 데리고 들어가서는,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은 왕이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할 바니 성소에 나가소 서..”라고 가로막습니다(18절).
그러자 웃시야 왕이 화를 냅니다.
그가 화를 낼 때 이마에 나병이 생겨서, 결국 성전에서 쫓겨납니다(19-20절).
결국 웃시야는 죽는 날까지 여호와의 성전에서 멀리 떨어진 별궁에 갇혀 나병환자로 10년 동안 살았습니다(21절).
이후 죽어서는 그가 나병환자였기에 왕의 묘실에도 묻히지 못하고, 그 옆에 가까운 땅에 묻히게 됩니다(23절).
웃시야도 아버지 아마샤처럼, 또한 할아버지 요아스처럼 끝이 좋지 못한 왕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 것입니다.
제사장 아사랴는 웃시야가 분향하려고 할 때, “왕이 할 바가 아니요”(18절 중반절)라고 막아 섰습니다.
그런데 웃시야는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끝이 좋지 못한 자가 된 겁니다.
이런 웃시야를 통해서 겸손과 교만의 차이를 깨닫게 됩니다.
겸손은 내가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될 일을 구분할 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해야 할 일은 행하고, 해서는 안될 일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반면, 교만은 내가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될 일을 구분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웃시야는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는 일은 아무리 왕이라 할지라도 ‘해서는 안될 일’이라는 것을 전에 알았을 겁니다.
그런데 마음이 교만해 지자, 그가 ‘해서는 안될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행하려고 한 것입니다.
제사장이 그 일을 가로막자, 그가 화를 내다가 결국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나병에 걸리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교만은 ‘내가 해서는 안될 일’이라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내가 해서는 안될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해서는 안될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려는 것입니다.
이를 16절에서는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고, 해서는 안될 일이 있습니다.
말씀을 따르는 일은 해야 할 일이지만, 말씀을 따르지 않는 일은 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말씀을 따르지 않고, 해서는 안될 일을 하는 자가 교만한 자요,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는 일이요, 하나님께 범죄하는 일입니다.
4.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첫 번째, 끝까지 좋은 신앙인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요즘 우리가 남유다의 요아스 왕 - 아마샤 왕 - 웃시야 왕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처음에는 좋았으나 끝이 좋지 않은 왕들이었습니다.
이들을 통해서 우리가 끝까지 좋은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처음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끝도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처음이 좋은 만큼 끝도 좋은 신앙인이 되기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둘째, 늘 겸손한 자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오늘 웃시야 왕을 통해서 겸손과 교만의 차이를 깨달았습니다.
겸손은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될 일’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교만은 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해서는 안될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그것을 구분하는 기준이 ‘성경’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가까이 할 때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명확한 기준을 갖게 하십니다.
우리는 성정이 교만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때론 ‘우리가 해서는 안될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범죄를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늘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오늘도 우리가 겸손한 자로 살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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