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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좋은 자가 되십시오 / 대하 16:1-14

2025년 10월 3일(금)

1.

아사 왕은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자였습니다.

재위 15년에 구스의 백만 대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오뎃의 아들 아사랴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는,

아사 왕과 온 백성들이 함께 하나님 앞에서 생명을 건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만 찾고 구하는 삶을 살겠다는 맹세였습니다.


이후 유다 백성들은 이를 기뻐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만나주시고, 그들의 사방에 평안의 복을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아사 왕 재위 35년까지 약 30년 동안 유다 땅에는 전쟁이 없는 태평성대가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아사 왕 재위 36년 차에 다시 전쟁이 시작됩니다.


당시 북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온 겁니다.

1절, “...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서...”

지리적으로 보면, 이스라엘은 북쪽에 있고 유다는 남쪽에 있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이 유다를 치러 ‘내려왔다’라고 하는 것이 상식적인데, ‘올라왔다’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 거룩한 이름을 두시려고 택한 예루살렘 성전이 유다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 곧 세상의 중심이요, 세상에서 지극히 높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바아사가 유다를 침략해 와서는 예루살렘 북쪽 5km 지점에 ‘라마’라는 요새를 건축하려고 했습니다. 그 목적은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찾기 위해서 유다 땅을 왕래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북이스라엘이 유다를 침략해 온 것입니다.

이런 위기 속에서 유다의 아사 왕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선택을 합니다.


전에 구스의 백만 대군이 쳐들어왔을 때는, 아사 왕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찾고 구하였습니다(14:11).

그런데 북이스라엘의 바아사가 쳐들어오자 이번에는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메섹의 아람 왕 벤하닷을 의지한 것입니다.

아사 왕은 벤하닷에게 도움을 받기 위해서 왕궁의 곳간뿐만 아니라 성전의 곳간에 있는 금은마저 가져다가 조공으로 바쳤습니다.

이에 아람의 벤하닷이 군대를 이스라엘에게 보내서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국고 성들을 치게 했습니다. 바아사가 그 소식을 전해 듣고는 어쩔 수 없이 라마의 건축을 중단하고 물러갔습니다.

그리고 아사 왕은 이스라엘 군대가 라마를 건축하려고 했던 돌과 목재 등을 가져다가 북이스라엘의 침략을 대비하 기 위해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했습니다(6절).


아사 왕이 자국 군대의 어느 누구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아람 왕 벤하닷을 끌어들여서 이스라엘의 바아사 왕을 퇴각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는 외교적으로나 군사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승리였습니다.

그런데 사람에게 좋아 보이고 옳아 보이는 것이 하나님에게도 그런 것은 아닙니다.


2.

궁중의 신하들과 백성들은 아사 왕을 칭송했을 겁니다.

아사 왕이 연륜이 쌓인 만큼 지혜도 커져서 자국 군대에는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않고 적을 물리쳤다고, 흠잡을 데 없는 외교적, 군사적 승리라고 칭송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때에 선견자 하나니”가 아사 왕을 찾아옵니다.

선견자 하나니는 아사 왕을 강하게 책망합니다.

7절입니다.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아사가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였다면,

북이스라엘의 바아사를 물리쳤을 뿐만 아니라 아람 나라도 차지했을 것인데,

아람 왕의 도움을 받았기에 이제 더는 아람을 차지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과거 구스의 백만 대군의 침략 때의 일을 상기시킵니다.

8절, “구스 사람과 룹 사람의 군대가 크지 아니하며 말과 병거가 심히 많지 아니하더이까 그러나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왕 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선견자 하나니는 아사가 회개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책망합니다.

9절,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모두가 아사 왕을 칭송할 때, 선견자 하나니만 아사 왕을 책망했습니다.

하나니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대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선지자의 사명입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아사 왕이 전에는 바로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자요, 늘 마음이 하나님께 향하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실수 할 수 있습니다. 때론 잠시 분별력이 흐려져서 잘못된 판단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분이라, 돌이킬 수 있도록 오래 참고 기다리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사가 예전의 모습으로 돌이키기를 바라시면서 선견자 하나니를 보내신 겁니다.


그런데, 하나니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들은 아사 왕의 반응은 예전과는 크게 달라졌습니다.

10절, “아사가 노하여 선견자를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의 말에 크게 노하였음이며 그때에 아사가 또 백성 중에서 몇 사람을 학대하였더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아사는 분노했습니다. 선견자 하나니를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때 선견자 하나니를 옥에 가두는 아사 왕에 대해서 ‘그렇게 하시면 아니되옵니다’라고 간언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겁니다. 아사는 그런 자들에게도 학대를 가했습니다.


이런 아사에게 하나님은 한 번 더 기회를 주십니다.

12절을 보면, 아사가 왕이 된 지 삼십구 년 되었을 때 아사의 발이 병들어 매우 위독해진 겁니다.

노년의 아사에게 주어진 이 질병은 다시 하나님께 돌이켜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도 아사는 하나님께 돌이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12절, “아사가 왕이 된 지 삼십구 년에 그의 발이 병들어 매우 위독했으나 병이 있을 때에 그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 더라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지 않는 아사에게 질병을 통해서 마지막 기회를 주신 겁니다.

그런데도 아사는 끝내 하나님을 구하지도 찾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아사 왕은 41년 차에 질병으로 죽게 됩니다.


아사 왕이 젊었을 때는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평안과 형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의 말년은 하나님을 찾지도 구하지도 않은 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을 들어도 회개는커녕 분노하는 자요,

질병에 걸려도 하나님을 찾지 않을 만큼 마음이 강퍅한 자가 된 것입니다.


재위 39년에 질병이 걸려서 41년 차에 숨을 거뒀으니,

인생의 말년 3년 동안은 질병으로 인한 ‘고통과 괴로움’의 시간을 보내다가 열조에게 돌아간 겁니다.


3. 아사가 젊었을 때는 오뎃의 아들 아사랴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말년에는 선견자 하나니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마음이 강퍅해져서 분노했습니다.


마음이 강해지는 것과 마음이 강퍅해지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들릴 때는 마음이 강하고 담대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들리지 않을 때는 마음이 강퍅해집니다.


내 마음이 강해지고 담대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 마음이 강퍅하고, 분노하고, 말씀이 내 마음에서 튕겨져 나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없기 때문 입니다.


아사 왕은 젊어서부터 열심히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삶을 살았던 왕입니다.

그런데 그의 말년에는 변질되어버렸습니다.

이런 그의 모습은 우리 역시 이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반면교사로 깨닫게 해줍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한결같으신 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결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 있어서만큼은,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삶에 있어서만큼은,

어제나 오늘과 내일이 변함이 없기를, 마지막 호흡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한결 같기를 기도합니다.


4.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첫 번째, 우리 마음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언제나 내 마음이 문제입니다.

내 마음이 어떠냐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기도 하고, 튕겨 나가기도 합니다.


아사 왕은 젊었을 때는 순전하게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렸을 때, 마음을 강하게 하고 말씀대로 새로운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는 마음이 강퍅했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선견자 하나니로부터 말씀을 들었을 때, 그의 마음에 일어나는 것은 분노였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찾고 구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우리 마음이 중요합니다.

잠언 4장 23절에서 말씀합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우리 마음이 강퍅한 것이 아니라, 강하고 담대하기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두 번째, 하나님 앞에서 끝이 좋은 자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시작이 좋은 만큼 끝도 좋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사 왕은 시작은 좋았습니다. 그러나 끝이 좋지 않았습니다.


시작이 좋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끝은 좋은 자가 됩시다.

시작도 좋고 끝도 좋다면 그보다 더 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만일 시작은 좋지 않았다면, 끝이라도 좋은 자가 되기를 힘씁시다.


그럼, 좋은 것이란 무엇일까요?

마음이 겸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줄 아는 자가 되는 것이요,

오직 하나님만 찾고 구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시작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끝은 우리 모두 좋은 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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