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려와 기도하는 자가 됩시다 / 대하 32:1-23
- Hoon Park

- 2025년 10월 26일
- 5분 분량
2025년 10월 24일(금)
1.
히스기야는 그의 아버지 아하스와는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 성전을 개혁하고, 유다의 무너진 예배와 유월절 신앙을 회복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셔서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케 하셨습니다.
히스기야가 왕이 된 지 14년 째 되던 해에 위기가 찾아옵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쳐들어 온 것입니다(1절).
국가적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되자 백성들은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히스기야가 두려워 떨고 있는 백성들을 안심시킵니다.
6절 하반절에 보면 히스기야가 백성들을 “말로 위로하여”라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8절 하반절은 백성들이 히스기야의 “말로 말미암아 안심”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위기나 어려움이 닥쳤을 때 ‘말’이 중요합니다.
위기나 어려움이 닥쳤을 때 하는 ‘말’을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이 어느 정도인지가 드러납니다.
문제가 없을 때는 누구나 믿음이 좋아 보입니다. 어려움이 없을 때는 누구나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닥치거나, 위기나 어려움이 찾아올 때, 그 사람의 믿음이 ‘말’로 드러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금만 어렵고 힘든 일이 다가오면 ‘말’로 불평과 원망을 했습니다.
불평과 원망의 ‘말’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된 자들이었습니다.
열두 명의 정탐꾼이 가나안 정탐을 마치고 돌아와서 보고 했을 때, 이스라엘은 또 다시 불평과 원망의 말을 쏟아냈 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같이 말씀하십니다.
민 14: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 를 믿지 않겠느냐”
이스라엘이 불평과 원망하는 말을 하나님은 ‘나를 믿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불평과 원망은 믿음 없음에서 나오는 대표적인 말입니다.
유월절에 예루살렘 성전 예배를 회복한 후, 하나님께서 온 유다 땅에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
백성들 안에 찬양과 기도가 넘쳐났습니다.
그런데 앗수르 왕 산헤립이 쳐들어오자, 백성들은 두려워 떨었습니다. 여기저기서 불평과 원망의 말들이 터져나왔을 겁니다. 믿음이 있는 것 같았는데, 실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이런 백성들에게 히스기야는 ‘말’로 안심을 시킵니다.
어떤 말로 안심을 시켰을까요?
7-8절입니다.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를 따르는 온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 가 그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그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 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말미암아 안심하니라”
어렵고 힘들수록 ‘말’을 잘해야 합니다.
삶의 위기나 어려움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그때 ‘불평과 원망’이라는 믿음 없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습관적으로 하는 자가 되기 보다,
‘감사와 확신’이라는 ‘믿음의 말’을 하는 자가 되십시오.
‘두려움’은 믿음 없는 말에서 나오지만,
‘평안과 안심’은 믿음에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히스기야가 두려워 떨고 있는 백성들에게 믿음의 말로 격려하자,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마음에 안심과 평안을 주신 겁니다.
2.
앗수르 왕 산헤립은 그의 신하들과 군대를 예루살렘에 보냅니다.
병행구절인 열왕기하 18장을 보면, 이때 앗수르 대군의 총책임자는 장군 랍사게였습니다.
랍사게가 앗수르 군대를 이끌고 와서는 예루살렘을 에워 쌓습니다.
그리고 랍사게가 앗수르 왕 산헤립의 말이라고 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모욕하고 비방을 합니다.
그 내용이 10-15절까지의 내용입니다.
랍사게는 유다 말을 할 줄 아는 자였습니다(왕하 18:28).
18절에서 유다 방언으로 큰 소리로 하나님을 비방한 산헤립의 신하가 바로 ‘랍사게’를 의미합니다.
그는 모든 유다 백성들이 들을 수 있도록 유다 방언으로 큰 소리로 여호와 하나님을 모욕하고 비방했습니다.
‘앗수르 왕이 여호와 하나님 보다 더 힘과 능력이 세다.
여호와는 너희를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할 수 없다.
그러니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히스기야의 말을 믿지 마라.’
히스기야 왕이 그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히스기야가 이사야 선지자와 함께 하늘을 향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역대기에는 히스기야가 어떤 내용으로 기도했는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열왕기하 19장에는 그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열왕기하 19장 15-19절까지가 히스기야가 부르짖어 기도한 내용입니다.
히스기야가 기도한 내용의 처음(15절)과 마지막(19절)만 읽어 드리겠습니다.
“15 ...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19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랍사게는 큰 소리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했습니다.
그는 큰 소리로 여호와 하나님은 앗수르의 산헤립 왕보다 무능한 신이라고 비방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큰 소리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 드렸습니다.
히스기야는 큰 소리로 여호와 하나님께 구원해 주시길 간구했습니다.
히스기야가 기도를 마치자 하나님께서 기다리셨다는 듯 바로 응답하십니다.
열왕기하 19장 20절입니다.
“...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 때문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하나님은 무능한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모욕과 비방을 받으실 만한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찬양과 경배, 존귀와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앗수르의 랍사게가 하나님을 모욕하고 비방하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또한 히스기야 왕이 부르짖어 기도하는 소리도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소리를 다 들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한 천사를 보내십니다.
그는 심판의 천사입니다. 그가 앗수르 진영에 가서 앗수르 군대를 진멸합니다.
열왕기하 19장 35절을 보면, 이날 진멸당한 앗수르 군대의 수가 무려 18만 5천 명이나 됩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모욕하고 비방했던 장군 랍사게도 죽음을 당합니다.
뿐만 아니라, 앗수르로 도망간 산헤립 왕도 고국에서 자기 자녀들의 반란으로 인해 칼에 맞아 죽게 됩니다.
살아 계신 참 하나님이 누구신지,
참 구원의 능력을 가진 하나님이 누구신지,
여호와 하나님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를 확실하게 보여주신 겁니다.
하나님은 모든 소리를 다 들으십니다.
하나님을 모욕하고 비방하는 소리도 들으시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소리도 들으십니다.
모욕하고 비방하는 소리에 대해서는 심판의 칼로 응답하시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소리에 대해서는 승리로 응답하십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서 하나님은 귀에 들린 대로 행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계시하셨습니다.
“...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시행하리니”
하나님은 귀가 어두워서 듣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작은 신음소리까지 들으시는 분입니다. 내 마음의 소리까지 들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귀에 들린 대로 행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불평, 원망의 말을 하기 보다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감사하는 자에게는 마음과 생각을 평강으로 지켜주십니다(빌 4:6-7).
부르짖어 기도하는 자에게는 응답하실 뿐만 아니라, 크고 은밀한 일을 보여주십니다(렘 33:3).
4.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첫 번째, ‘말’에 은혜가 있는 자가 되길 기도합시다.
누구나 입도 하나요, 혀도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 입과 혀에서 나오는 ‘말’은 다릅니다.
히스기야는 ‘말’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백성들에게 신앙적으로 격려를 했습니다.
또한 그는 ‘말’로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어 기도를 했습니다.
반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로 불평과 원망을 쏟아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앗수르의 랍사게는 ‘말’로 하나님을 모욕하고 비방했습니다.
‘말’에 은혜가 있는 자는 말로 사람을 격려하는 자입니다.
또한 말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고 찬양하는 자입니다.
‘말’에 은혜가 없는 자는 불평과 원망을 말을 쏟아내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모욕하고 비방하는 말을 하는 자입니다.
잠언서 4장 24절에서 말씀하시길,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구부러진 말’, ‘비뚤어진 말,’ 곧 은혜 없는 말을 멀리하는 자가 되고,
‘말’에 은혜가 있는 자가 되길 기도합시다.
두 번째, 오늘 말로 격려하는 자가 되길 기도합시다.
오늘 누구를 만날지 알 수 없습니다.
히스기야가 두려움에 떨고 있는 백성들에게 신앙적인 말로 격려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만나는 사람들에게 신앙적인 말로 격려하는 자들이 됩시다.
주일에 나눈 말씀처럼,
내 마음의 칼(언어의 칼, 감정의 칼, 자기 의의 칼)을 내려놓고,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마시기 위하여 말로 사람을 격려하고 세우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세 번째, 오늘 어렵고 힘든 지체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우리가 말로 격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말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가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한 것처럼,
우리도 위기나 어려움 속에 있는 지체들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신 것처럼,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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