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기도하며 깨어있으십시오 /눅 21:29-38
- Hoon Park
- 4월 14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4월 16일
2025년 4월 12일(토)
1.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하늘과 땅 안에 있는 만물은 유한합니다. 언젠가는 없어집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33절입니다. “천지는 없어져도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말씀으로 만들어진 천지는 유한하지만, 천지를 만드신 주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주님의 말씀에는 두 가지 속성이 있습니다.
‘영원성’과 ‘성취성’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영원하며, 동시에 주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우리가 어제 살펴본 말씀은,
구원 받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찰 때까지 예루살렘은 이방인에게 짓밟힐 것이요,
그때가 되면 예수님이 다시 오시고,
이곳에 하나님의 나라 곧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이 주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성취될 것입니다.
성도는 바로 영원하신 주님의 말씀을 믿고 사는 자들이요,
그 말씀대로 성취될 것을 믿음으로 기다리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길 기다립니다.
그런 우리에게 오늘 주님이 하신 말씀이 34절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우리가 무엇을 조심해야 될지를 말씀합니다.
“마음이 둔하여지고”(34절)
영적으로 잠들거나 무디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둔하여지게 만드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마음을 둔하여지게 만드는 것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34절)입니다.
“방탕함”이란,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인 되지 못하고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서, 내 욕심과 정욕, 탐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술취함”이란, 세상에 중독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술, 마약, 음란, 도박 등...’ 내 육체의 쾌락과 만족을 위해서 이런 것들에 중독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생활의 염려”란, 감사하지 못하고 신뢰하지 못하는 삶입니다.
내 삶에 감사와 믿음이 없을 때, 마음에는 늘 염려와 근심이 있고, 입술로는 불평과 원망을 쏟아 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방탕함, 술취함, 생활의 염려’는 우리 마음을 둔하게 만드는, 우리 영혼을 잠들게 만드는 죄악이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방탕함과 술취함’이 죄라는 것은 압니다.
그러나 ‘생활의 염려’도 죄라는 것은 알지 못합니다.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처럼(약 1:15),
생활의 염려가 잉태하면 불평과 원망이라는 죄를 낳고, 그 불평과 원망이 장성하여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요단강을 건너지 못하고 40년간 광야에서 죽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과 홍해바다는 건너는 큰 기적과 은혜를 경험했지만,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신뢰를 잃어버리고,
염려와 불안함속에서 입술로 불평과 원망을 습관적으로 쏟아내다가 결국 광야에서 생을 마치는 자들이 됩니다.
그래서 34절 하반절에서 말씀합니다.
“...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여기서 ‘뜻밖에’라는 단어를 주목해보십시오.
이는 ‘생각하지 못했는데’라는 뜻입니다.
“방탕함, 술취함, 생활의 염려”가 우리 마음을 우둔하게 만드는 죄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삽니다.
그런데 ‘뜻밖에’ 마지막 날이 오면, “방탕함, 술취함, 생활의 염려”로 인해 덫과 같이 심판이 우리에게 임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2.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조심할 수 있을까요?
35-36절입니다.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그날에 ‘인자 앞에 서는’ 자가 있습니다.
그는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는” 자입니다.
‘항상 기도하라’는 것은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습관은 없습니다.
습관적으로 하는 기도는 중언부언이요, 믿음 없이 드리는 형식적인 기도입니다.
그래서 습관적인 기도는 버려야 합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기도할 때 습관적인 기도를 하지만, 기도하는 습관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하는 습관을 가진 분이십니다.
많은 믿음의 선조들 역시 기도하는 습관을 가진 분들이십니다.
기도하는 습관은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습니다.
습관이라는 것은 ‘반복성’과 ‘지속성’에 의해 형성됩니다.
기도하는 습관도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훈련을 통해서 형성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습관을 가진 자가 영적으로 깨어 있습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다는 말은 영적으로 민감하다는 뜻입니다.
앞서 예수님은 ‘방탕함, 술취함, 생활의 염려’는 우리의 마음을 둔하여지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반면, ‘기도하는 습관’은 우리의 마음과 영을 민감하게 만듭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성령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깨어 있는 자는 깨닫게 됩니다.
‘내가 지금 이런 방탕함에 빠져 있구나, 내가 지금 이런 중독에 빠져 있구나, 내가 지금 이런 생활의 염려에 빠져 있구나. 그래서 지금 내 마음이 둔하여지고, 영적으로 잠들어 있구나.’
그래서 예수님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는 것을 조심하라’는 말씀에 이어서,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3.
우리는 습관대로 살아갑니다.
습관은 행위의 지속적인 반복을 통해서 형성됩니다.
그 습관이 나의 life-style이 됩니다.
그것이 고착화되면 나의 인격이 되고, 내 인생을 결정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습관을 가지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거룩한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말씀을 가까이 하거나, 기도하는 것을 꺼려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읽고 가까이 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에 습관이 필요합니다.
말씀과 기도의 거룩한 습관을 가진 자가 영적으로 깨어 있는 자입니다.
성령님께서 영적으로 민감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분별하게 하십니다.
이를 통해 신앙의 인격을 갖게 되고, 신앙인으로서의 바른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에서도 말씀하십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예수님은 말씀하신 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아니, 지금 오고 계십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는 종말이 가까워지는 때요, 종말의 징조가 가득한 때입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게 되면 예수님은 말씀하신 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날에 우리가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는” 자들이 됩시다.
4.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첫 번째, 기도하는 습관을 가집시다.
습관적인 기도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습관이 없는 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기도하는 습관을 따라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는 자가 깨어 있는 자입니다.
성령께서 영적으로 민감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민감함과 영적인 분별력은 기도하는 습관을 가진 자에게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입니다.
이 마지막 때에 우리에게 너무나 절실하게 요구되는 거룩한 습관은, ‘기도하는 습관’입니다.
두 번째, 조심하는 자가 됩시다.
영적으로 민감한 자는 당연히 조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민감하지 않으면 조심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요?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조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해주신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방탕함, 술취함, 생활의 염려’는 방치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우리가 조심해야 할 죄악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같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34절)
기도하는 습관이 있고, 그래서 영적인 민감함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와 같은 것을 조심하는 것이 쉽습니다.
그러나 아직 기도하는 습관이 없고, 그래서 영적인 민감함이 없는 자라면,
‘방탕함, 술취함, 생활의 염려’에 빠져 마음이 우둔해지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해야” 합니다.
세 번째,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됩시다.
내일은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러 가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할까요?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오늘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됩시다.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행하는 자들이 됩시다.
Comentarios